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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살겠다'는 미국…전세계 긴축전쟁, 'R의 공포' 커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Fed는 2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정책금리를 3~3.25%로 0.75%포인트 인상했다. 연합뉴스

Fed는 2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정책금리를 3~3.25%로 0.75%포인트 인상했다. 연합뉴스

전 세계에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엄습했다. 갈수록 짙어지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매파(통화긴축 선호) 본색이 R공포를 키우는 불씨다. 미국의 ‘인플레 수출’을 방어하기 위해 세계 각국도 앞다퉈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전 세계가 금융위기 수준의 경기 침체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Fed의 고강도 긴축에 미국 달러는 로켓을 달았다. 주요 6개국 통화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1973=100)는 22일 오후 3시 30분 기준 111.72를 기록했다. 2002년 5월 이후 20년 4개월 만에 가장 높다.

거세진 수퍼달러(달러 강세)에 주요국 통화가치는 일제히 하락했다. 원화가치는 22일 외환시장 문이 열리자마자 단숨에 달러당 1400원 선을 돌파했다. 세계 금융위기인 2009년 3월 이후 13년 6개월여 만이다. 이날 원화값은 연초(달러당 1191.8원) 이후 18.3% 하락한 1409.7원에 거래를 마쳤다. 22일 오전 5시40분(현지시간) 유로화는 1유로당 0.9870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이날 일본 외환시장에서 엔화값은 장중 달러당 145.9엔까지 밀리며 급박하게 돌아갔다. 1999년 8월 이후 최저치로 폭락하자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BOJ)이 환율 개입에 나섰다. 일본 정부가 엔화를 사고 달러를 매도하는 환율 개입은 1998년 6월 이래 약 24년 만이다.

앞서 BOJ는 이날 통화정책 결정 회의에서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결정했다. 22일 니혼게이자신문에 따르면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는 “필요한 시점까지 금융완화를 계속한다“면서 “(급격한 엔화약세 관련해선) 투기적 요인의 영향이 있다”고 말했다.

주요국 통화에 비바람이 몰아친 건 Fed 발 ‘긴축쇼크’ 영향이다. 세 차례 연속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은 Fed가 물가를 잡을 때까지 고강도 긴축을 이어가겠다고 예고했기 때문이다. Fed는 2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정책금리를 3~3.25%로 0.75%포인트 인상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FOMC 위원들의 금리 인상 전망을 보여주는 점도표에서 올해 말 금리 수준을 기존 3.4%에서 4.4%로 상향했다. 내년까지 금리는 4.6% 인상될 것으로 예측했다. 적어도 내년까지 Fed는 긴축 고삐를 놓지 않겠다는 의미다.

미국의 거듭된 큰 폭의 기준금리 인상에 세계 각국도 긴축으로 맞서고 있다. 미국의 긴축이 수퍼달러를 부추기면서 각국 통화가치가 하락하며 수입 물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몸살을 앓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은 경쟁적으로 금리 인상에 나서는 것이다. ‘역(逆)환율전쟁’이다.

세계 중앙은행의 긴축 경쟁은 불붙고 있다. 20일(현지시간) 스웨덴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기존 0.75%에서 1.75%로 인상했다. 스웨덴이 기준금리를 한 번에 1.0%포인트(울트라스텝) 올린 것은 1993년 이후 처음이다. 지난 7월 캐나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1%포인트 인상한 이후 주요 중앙은행 가운데 두 번째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지난 7월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에 이어 이달 자이언트 스텝을 밟았다. 기준금리가 석 달 사이 1.25%포인트 뛰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문제는 세계적인 ‘금리인상 쓰나미’가 경기 침체란 역풍으로 돌아올 가능성이다. 금리가 뛰면 소비자는 지갑을 닫고, 기업은 투자를 줄이면서 실물경제가 가라앉을 수 있다. 경기침체의 신호로 여겨지는 장단기금리 역전 현상은 미국에서 심화하고 있다.

2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통화정책에 민감한 미국 2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 4.04%를 기록했다. 2년물 금리가 4% 선을 넘어선 것은 2007년 10월 이후 15년 만이다. 장기 시장금리 벤치마크인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전날보다 0.033%포인트 내린 연 3.531%를 기록했다.

지난 7월 5일(-0.024%포인트) 역전된 장단기 금리가 격차를 키워가더니 이날 0.5%포인트 넘게 벌어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장기 금리는 미래의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단기금리보다 금리가 높다(채권가격 하락). 하지만 미래에 대한 전망이 나빠지면 10년물에 대한 수요가 높아진다(채권가격 상승). 시장에서 장단기 금리 역전을 경기침체 신호로 해석하는 이유다.

Fed의 강도 높은 긴축이 글로벌 경기 침체를 불러올 것이란 경고는 이어지고 있다. 월가의 ‘신 채권왕’으로 불리는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캐피털 최고경영자는 21일(현지시간) CNBC에서 “Fed가 꽤 오랫동안 긴축조치를 이어오고 있다”며 “강도 높은 긴축이 지속하면 (미국을 중심으로) 경기침체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은행(WB)도 지난 15일 보고서에서 “전 세계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동시다발적으로 금리를 인상하고 있다”며 “고강도 긴축에 금융시장 불확실성은 커지고, 세계 경제는 경기침체로 향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도 경기침체 파고에 휩쓸릴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은행도 원화가치를 방어하고, 뛰는 물가를 잡기 위해서 미국을 쫓아갈 수밖에 없어서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의 고강도 긴축은 달러 강세를 부추겨 다른 나라에 인플레이션을 수출한다”며 “이를 막기 위한 각국의 금리 인상이 경기침체로 이어져 기초체력이 약한 신흥국과 한국도 위기에 놓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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