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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골프, 지금 꼭 쳐야 할까요"…전기료 못올리는 정부의 해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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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서울 시내 주택가의 가스 계량기와 전기 계량기 모습. 연합뉴스

19일 서울 시내 주택가의 가스 계량기와 전기 계량기 모습. 연합뉴스

에너지 비상 상황에 접어들면서 정부가 수요 자체를 줄이자는 '절약' 카드를 잇달아 꺼내 들었다. 최근 에너지발(發) 수입이 계속 늘어나는 데다 국제 가격 상승세가 쉽게 꺾이지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오면서다.

당장 겨울이면 난방 수요가 늘어난다.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은 "높은 에너지 가격 추이를 감안하면 4분기에도 에너지 수입 증가가 국내 무역수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밝혔다. 이는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다음 달에는 도시가스 요금의 정산단가와 전기 요금의 기준연료비 인상이 계획돼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한전 등의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예정분보다 전기·가스 요금을 더 올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러시아의 LNG 시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의 LNG 시설.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정부는 요금을 추가로 올리는 것엔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고물가 추세가 꺾이지 않는 상황에서 서민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21일로 예정됐던 한전의 4분기 전기요금 연료비 조정단가 발표가 미뤄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뾰족한 대책이 없는 정부는 프랑스·독일처럼 '에너지 절약' 카드를 꺼내들 분위기다. 실제 최근 정부 당국자들은 에너지 절약과 수요 관리를 전면에 내세우고 나섰다.

박일준 산업부 2차관은 21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저녁에 라이트 켜고 골프 치는 게 스트레스도 풀 수 있겠지만, 현재 에너지 상황에서 적절한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며 "에너지 공급도 중요하지만, 에너지를 많이 쓰는 다소비 구조에 어떤 형태로든지 변화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에너지 대용량 사업자에 대한 한시적인 전기요금 차등 적용, 연료비 조정단가 상한 확대(㎾h당 5→10원)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수출입 동향 점검회의를 주재한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에너지 절약, 이용 효율화를 위한 방안을 조만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공기업도 거들었다. 가스공사는 천연가스 소비를 줄이기 위해 도시가스 수요절감 프로그램을 조기 시행하겠다고 22일 밝혔다. 도시가스 사용량을 전년 동기 대비 일정 수준 이상 줄이면 캐시백을 지급하는 식이다. 다음 달부터 에너지 다소비 산업체 1800곳 대상으로 진행한 뒤, 난방 수요가 늘어나는 12월엔 전국 가정용 도시가스 사용자 1600만 가구로 확대 적용할 예정이다.

에너지 위기가 심각한 나라들은 특단의 조치까지 꺼낸 곳이 많다. 독일은 수영장 온도를 낮추고, 공공시설 온수 사용금지 등에 나섰다. 스페인은 냉난방 시설이 갖춰진 모든 건물에 자동 문닫힘 장치 설치를 의무화했다. 프랑스에서는 에펠탑 야간 조명을 소등하고 유통 매장의 조도를 조절하는 한편, 문을 열어놓고 냉방을 하는 행위에 범칙금을 부과하고 있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은 에너지 수급 위기를 맞아 가능한 정책 수단과 에너지 소비 절약 등을 모두 동원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여기에는 국민의 호응이 필수적이다. 공공기관이 아무리 노력을 기울여도 민간 부문 동참 없이는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어서다.

꾸준히 에너지 절약의 중요성을 알리는 한편, 전기·가스 요금 인상 등으로 강력한 수요 조절 '시그널'도 줘야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창의융합대학장은 "지금은 예외적인 에너지 비상 상황이라 국민·기업과 고통 분담을 할 수밖에 없다. 다만 에너지 절약이 곧바로 잘 될 순 없으니 천연가스 등 에너지 확보 노력을 강화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 수요 조절도 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면서 "전기요금도 유럽처럼 몇배씩 올릴 순 없지만 조금이라도 더 인상해야 집 전등을 끄는 등 전력 소비를 줄이게 유도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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