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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외화송금 규모 10조원 넘어…은행 지점장 개입 정황도

중앙일보

입력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연합뉴스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연합뉴스

금융당국이 조사 중인 이상 외화송금 자금 규모가 총 10조원을 넘었다. 추가 의심사례가 파악되면서다. 이상 외화송금의 대부분이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와 은행을 거쳐 이뤄진 만큼 국내·외 암호화폐의 시세 차익,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을 노린 것으로 추정되는 거래다.

금융감독원(금감원)은 22일 “기존에 발표한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에 더해 10개 은행에서 추가로 이상 외화송금 의심 사례가 파악돼 현장검사에 착수했다”며 “총 송금액 규모가 당초 발표했던 65억4000억 달러(9조1560억원, 1달러=1400원 기준)에서 72억2000만 달러(10조1080억원)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상 외화송금 혐의를 받는 업체는 기존 65개에서 82개로 늘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지난 6월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에서 거액의 이상 외화송금 의심거래를 보고받은 뒤 전체 은행에 유사한 사례가 있는지 자체 점검을 해 보고하라고 요청했다. 이를 통해 KB국민·하나·SC·농협·기업·수협·부산·대구·광주·경남은행에서도 의심 사례를 보고받고 지난달 22일 검사에 착수했다.

이번에 추가로 파악한 이상 외화송금은 앞서 발견된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의 사례와 구조가 비슷했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암호화폐를 원화로 바꿔 유령업체의 국내 은행 계좌로 이체한 뒤 무역대금으로 위장해 외화를 해외 계좌로 송금하는 방식이다.

혐의 업체 82개의 업종은 상품종합 중개·도매업 18개, 여행 관련업 16개, 화장품 도매업 10개 등이다. 40개 업체는 1개 은행을 통해 송금했고, 30개 업체는 2개 은행을, 12개 업체는 3~4개의 은행을 돌려가며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5개 업체는 송금 규모가 총 3억 달러(4220억원)를 넘었다.

송금에 활용한 외화는 주로 미국 달러(81.8%)였고, 일본 엔화(15.1%)와 홍콩 달러(3.1%) 등으로도 돈을 보냈다. 송금한 외화 대다수는 홍콩(71.8%)의 은행 계좌로 보냈고 일본(15.3%), 중국(5%) 등으로도 송금했다.

국내 은행별 송금 규모는 신한은행이 23억6000만 달러(3조3200억원)로 가장 많았다. 이어 우리은행(16억2000만 달러), 하나은행(10억8000만 달러), 국민은행(7억5000만 달러) 등 순이다.

우리은행 직원이 외화송금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정황도 포착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우리은행 한 지점장이 고객의 서류를 수정해주고 수사가 시작되자 업체에 이를 유출한 정황이 있어서 검찰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구지검 반부패수사부는 지난 21일 우리은행 본점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고 이 은행 직원을 조사하고 있다.

그동안 시중은행은 혐의 업체가 무역대금으로 신고하고 증빙자료를 위조해 속았다는 취지로 항변했지만 은행 직원의 개입이 입증되면 무거운 제재를 피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 직원 개인의 형사처벌 외에 금감원의 검사 결과에 따른 제재도 엄정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이상 외화송금 검사를 다음 달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라며 “검사 결과 외환 거래에서 지켜야 하는 사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 은행에 대해선 법률에 따라 엄중히 조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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