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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 비 들으니 사운드 혁명” 록 떼고 돌아온 허클베리핀

중앙일보

입력

22일 정규 7집 '더 라이트 오브 레인'을 발매한 인디밴드 허클베리핀. 사진 샤레이블

22일 정규 7집 '더 라이트 오브 레인'을 발매한 인디밴드 허클베리핀. 사진 샤레이블

“그루브(Groove)! 무브(Move)! 모어 펀(More Fun)! 움찔움찔~.”
1세대 인디밴드 대표주자인 허클베리핀이 새 앨범을 만들며 품은 모토다. 22일 정규 7집 ‘더 라이트 오브 레인(The Light Of Rain)’ 발매를 앞두고 기자들을 초청한 서울 연희동 작업실에는 해당 문구가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1998년 1집 ‘18일의 수요일’로 데뷔한 이후 20년 가까이 지켜온 록의 정체성을 잠시 내려놓고 보다 신나고 재미있게 리듬을 타고 싶다는 포부가 느껴졌다. 2018년 발표한 6집 ‘오로라 피플’ 이후 4년을 꼬박 매달린 새 앨범에는 이런 변화가 담긴 타이틀곡 ‘적도 검은 새’ ‘눈’ ‘템페스트’ 등 10곡이 수록됐다.

4년 만에 7집 '더 라이브 오브 레인' 발매 #팝ㆍ힙합 자극 받아 풍성한 사운드 구현

밴드를 이끌고 있는 이기용은 “록밴드를 25년 동안 하다 보면 한계가 오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고 담담하게 고백했다. 드럼ㆍ베이스ㆍ기타 등 한정된 악기로 음악을 만들다 보면 표현의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록만 열심히 파다가 두아 리파ㆍ빌리 아일리시ㆍ카디 비처럼 요즘 팝과 힙합 음악을 진지하게 들어보니 멜로디는 물론 사운드적으로도 혁명이 일어나고 있더라고요. 예전엔 멜로디 한 소절, 가사 한 줄 만들기가 얼마나 힘든데 힙합은 샘플링하고 말을 하면서 돈을 너무 쉽게 버는 것 아니냐 생각했는데 실제 악기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저음부터 다양한 소리로 채운 풍성한 공간감까지 정말 놀라웠죠. 오래된 밴드가 현재를 버티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밴드 25년 하다 보니 한계 부딪혀”

그동안 악기를 직접 연주하거나 세션을 섭외하는 방식으로 녹음했던 이들은 지난 앨범부터 직접 모든 소리를 만드는 방식으로 선회했다. 세션으로 종종 무대에 서다 6집부터 정식 멤버로 합류한 성장규는 “원래는 기타를 쳤는데 드럼, 키보드, 각종 가상 악기를 담당하고 있다”며 “옛날처럼 악기 연습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 아이디어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된 것 같다”고 밝혔다. 이를테면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희곡에서 제목을 따온 ‘템페스트’에서는 폭풍 같은 드럼과 북소리가 휘몰아치고, 비 오는 날 양손에 우산과 지팡이를 들고 힘겹게 걸어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고 만든 ‘눈’에서는 속삭이듯 작게 들어가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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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제주에 머물려 6집 '오로라 피플'을 만들던 시절의 모습. 사진 허클베리핀

2017년 제주에 머물려 6집 '오로라 피플'을 만들던 시절의 모습. 사진 허클베리핀

2012년부터 악화된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제주에서 생활하며 전작 ‘오로라 피플’을 만들었던 이기용은 “이번 앨범은 내적 갈등을 끝내고 밖으로 나온 자아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를 담았다”고 말했다. “비가 내리는 먹구름 위에도 햇빛이 비치잖아요.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 비를 맞고 있는 것 같지만 거기엔 빛도 섞여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그는 이솝우화 중 ‘해와 바람 이야기’에 빗대 “예전 허클베리핀 음악이 외투를 벗기기 위해 강한 바람을 몰아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햇살 같은 팝의 장점을 받아들여 많이 따뜻해졌다”고 덧붙였다.

“먹구름 위로도 햇빛은 비쳐” 위로 담아

2집 ‘나를 닮은 사내’(2001)부터 보컬을 맡고 있는 이소영의 창법 변화도 눈에 띈다. 그는 “아무래도 록 베이스다 보니 예전에는 샤우팅이나 그로울링을 많이 했는데 6집부터는 힘을 빼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사람이 이 정도로 힘을 빼도 노래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고 있다”며 웃었다. 이기용은 “평소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이소영 덕분에 시작된 노래도 많다”고 말했다. 미세먼지가 일상이 된 현실을 노래한 ‘비처럼’이나 기후 변화 문제에 대한 경고를 담은 ‘금성’ 같은 곡이 그렇다. “매번 밥 먹고 술 먹고 나면 라벨 떼고 분리수거하는 데만 한참이 걸리더라고요. 그동안 저희 안으로만 향했던 시선이 점점 더 바깥세상으로 뻗어 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들은 오는 11월 12일에는 서울 홍대 상상마당에서 ‘옐로우 콘서트’를 연다. 2004년 시작해 올해로 18번째 열리는 브랜드 공연이다. 이기용은 “간간이 팬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에 싱글을 발표하긴 하지만 저희는 결국 앨범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는 팀”이라고 말했다. 2015년 발표한 싱글 ‘사랑하는 친구들아 안녕 나는 너희들이 모르는 사이에 잠시 지옥에 다녀왔어’를 6집이 아닌 이번 앨범에 재편곡해 실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다음 앨범은 비트 위주로 가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껴뒀다. 다양한 사운드를 만나볼 수 있는 공연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음악 시장이 싱글, 영상 위주로 가다 보니 정부나 기업 지원도 그쪽으로 치중돼 있다”며 “꾸준히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는 뮤지션을 위한 지원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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