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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맞선 영국에 '위대한 고립'은 사치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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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마지막 유산’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으로 온 지구가 떠들썩하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 서방 주요국 정상 대부분이 장례식에 참석한 가운데 시진핑 중국 주석과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불참했다. 대신 두 사람은 15~16일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리는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의에서 뭉쳤다.

지난 9일 리즈 트러스 신임 내각이 구성됐을 때는 더 노골적이었다. 각국 정상이 영국에 축전을 보냈지만 시진핑 주석은 침묵했다. 리커창 총리가 대신 축하했다. 중국 외교부는 축전 대신 “영국과의 관계가 올바른 궤도를 유지하기를 바란다”는 성명을 발표했고 자오리젠(趙立堅) 대변인은 트러스 취임에 대해 질문받자 “언급하지 않겠다”고 했다.

영국은 2015년 3월 유럽 국가 중 가장 먼저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했다. 필자가 2014년 영국 출장을 갔을 땐 정부 각 부처 공무원들이 원어민 강사와 일대일 중국어 교습을 받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그런 두 나라 관계가 몇 년 사이 급랭한 것이다.

중국 맞선 영국에 '위대한 고립'은 사치일까

중국 맞선 영국에 '위대한 고립'은 사치일까

이런 현상은 영국의 국가 대전략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섬나라인 영국은 형식상 유럽에 속해 있지만 유럽 대륙 국가들과는 항상 거리를 둬 왔다. 그러면서 대륙에서 팽창하는 강대국이 영국의 안보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그때그때 반대 세력과 손을 잡고 견제와 봉쇄를 했다. 무적함대의 스페인,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 1·2차 세계대전 때의 독일에 대해 그러했다. 윈스턴 처칠은 “지난 400년 동안 영국의 외교정책은 대륙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공격적이고 가장 지배적인 세력과 겨루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영국이 특정 세력과 불가분의 동맹을 맺지 않는 외교 원칙을 그들은 ‘위대한 고립(splendid isolation)’이란 수사로 포장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라는 군사동맹의 일원이 됐지만, 고립적 성향은 냉전 이후에도 종종 나타났다. 미국 등 서방 주요국 대부분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비난하며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을 선언했을 때 영국은 참가했다. 유럽연합(EU) 성립으로 유럽이 하나의 유로존을 형성할 때도 영국은 파운드화를 고집했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도 그런 성향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랬던 영국이 미국이 추진하는 대(對)중국 봉쇄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유럽에서 러시아의 서진을 막고 있는 나토에서의 역할에 그치지 않고 인도·태평양 전선에까지 적극적으로 참여 중이다. 지난해 호주·영국·미국 간 3국 안전협정(AUKUS)을 구성했고 인도·태평양 해역에 전함 2척을 상주 배치했다. 올해 2월엔 인도·태평양 안보 강화를 위해 2500만 파운드(약 400억원)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영국이 대륙을 제패하는 강대국의 출현을 막는다는 국가 대전략의 일환일 것이다. 대상은 물론 중국이다.

시진핑 집권기 들어서 중국은 그간 ‘G2’로 성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미국과 체제 경쟁을 본격화하며 신냉전의 서막을 열고 있다. 게다가 유럽 국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러시아와 손을 잡았다. 영국으로선 유럽 전선의 나토에 주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인도·태평양 영역에서 ‘또 다른 나토’를 결성해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영국 입장에선 더 이상 과거의 ‘위대한 고립’을 추구할 형편이 아니라 맹주국인 미국과 적극적으로 발을 맞춰야 한다. ‘대륙의 패권국 출현 저지’라는 지상 전략목표를 위한 것이다.

‘제2의 대처’로 불리는 트러스 총리 취임에 대한 중국의 싸늘함도 이런 영국의 안보 전략에 대한 반응이다. 트러스 내각은 소위 ‘크로(Crowe) 학파’로 불리는 대(對)중 강경파가 주류다. 트러스는 앞서 외무장관 시절 위에서 언급한 ‘글로벌 나토’ 개념을 직접 제안했다. “중국으로부터의 악한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다”는 표현도 썼다. 톰 투겐트하트 안보부 장관은 중공 정권의 신장 위구르족 탄압을 비난해 중국의 제재 대상에 등록돼 있다. 보수당 의원들과 ‘중국연구그룹(CRG)’을 결성하고 중국 유학생의 영국 대학 입학을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1년 9월 15일, 엘리자베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부 장관이 워싱턴 D.C.의 미 국무부에서 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2021년 9월 15일, 엘리자베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부 장관이 워싱턴 D.C.의 미 국무부에서 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중국 관영매체들은 정부보다 더욱 격한 반응을 보였다. 환구시보는 트러스 총리를 ‘급진적 포퓰리스트’라 부르며 “구시대적인 제국주의 정신을 버려야 한다”고 비판했다. “최단임 총리가 될 것”이란 저주도 퍼부었다. 후시진(胡錫進) 전 환구시보 편집장은 “중국은 영국의 가장 중요한 무역 파트너 중 하나”라고 강조하며 “간단히 말해 영국은 중국과 결별할 자본도 용기도 없다”고 비아냥댔다.

역사적으로 영국과 중국은 애증의 관계였다.

2021년 12월 21일, 유럽에서 가장 거대한 중국인 거리 중 하나인 런던 차이나타운의 풍경 [사진 셔터스톡]

2021년 12월 21일, 유럽에서 가장 거대한 중국인 거리 중 하나인 런던 차이나타운의 풍경 [사진 셔터스톡]

1840년 이후 두 차례의 아편전쟁을 일으키며 서구 국가 중 가장 먼저 중국을 침략한 나라가 영국이었다. 중국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백 년의 치욕’으로 여기고 있다. 영국은 1997년까지 홍콩을 점령 통치했다. 대영제국이 쇠락하고 중국이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한 20세기엔 두 나라가 협력 관계로 돌아섰다. 제2차 세계대전에선 연합국 동지로 일본에 맞서 싸웠다. 1949년 공산당이 본토를 장악하자 영국은 1950년 주요국 중 가장 발 빠르게 대만에 대한 국가 승인을 취소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인정했다. 개혁개방으로 중국이 국제 시장에 등장한 이후론 꾸준히 경제 교류를 늘려갔다. 현재 영국엔 50만 명의 화교가 살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함으로써 한 시대가 매듭지어지듯 중국과 영국 두 나라 관계도 몇 년 사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분위기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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