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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통신문 보냈을 뿐인데…‘백신 2억 소송 피고’된 교장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7월 19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고3 수험생과 교직원을 대상으로한 백신 접종이 전국에서 동시에 시작됐다. 이날 충남 논산시 예방접종센터를 찾은 고등학교 교직원들이 의료진에게 화이자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해 7월 19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고3 수험생과 교직원을 대상으로한 백신 접종이 전국에서 동시에 시작됐다. 이날 충남 논산시 예방접종센터를 찾은 고등학교 교직원들이 의료진에게 화이자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가정 통신문을 보냈을 뿐…송사에 휘말릴 일 없을 줄 알았는데….”
수도권의 한 중학교 교장인 A씨는 최근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두 달 전 2억 100만원을 배상하라는 민사소송의 피고가 됐다. 지난 7월 1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보내온 A4용지 40장 분량의 소장엔 그의 이름이 피고 부분에 적혀 있었다. A씨는 “예상치 못한 소장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며 “곧 법정에 서게 될 거란 걱정에 잠도 잘 못 자고 있다”라고 말했다.

A씨에게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낸 이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부작용 피해를 본 학생의 가족들이다. 피해 학생 가족들은 지난 6월 법률대리인을 통해 질병관리청, 교육부, 5개(경기·경남·대구·부산·인천) 시도교육감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금 청구소송을 냈다. “백신 부작용 증상에 대한 자세한 고지 없이 청소년에게 사실상 백신 접종을 강제해 백신 부작용으로 추정되는 증상에 이르게 한데 책임이 있다”는 게 이유였다. 이들은 “가정통신문을 통해 백신 접종을 사실상 강제하고 중증 부작용 설명 고지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교장 6명도 피고에 포함했다. 원고 측 피해 학생 6명 중 사망한 학생은 1명, 의식불명 또는 사지 마비 상태인 학생은 2명이다.

이중엔 A씨가 교장으로 재직했던 중학교에 다닌 B군도 있었다. B군은 지난해 가을 학교에서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 안내문을 받았다. 한 달 뒤 두 차례에 걸쳐 백신을 맞았는데 이후 부작용이 왔다. B군의 법률대리인은 “백신 부작용을 학부모에게 충분히 알리라고 일선 학교에 당부했다는 게 교육부와 교육청의 주장”이라며 “상급 기관은 부작용을 알리라고 했는데 학교가 이를 누락했다면(가정통신문에 적지 않았다면) 교장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19일 오전 학생학부모인권보호연대 관계자들이 백신 부작용 피해를 입은 학생에게 배상하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세종시 교육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학생학부모인권보호연대

지난 8월 19일 오전 학생학부모인권보호연대 관계자들이 백신 부작용 피해를 입은 학생에게 배상하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세종시 교육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학생학부모인권보호연대

법정 서게 돼 당혹스러운 학교장들

피고가 된 학교장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교육 당국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서 학교장이 개별 대응에 나서야 할 상황에 놓이면서다. 사비로 변호사를 구한 학교장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학교장들은 방역 당국과 교육청 지침에 따라 백신 접종 부작용에 대해 충분히 안내했는데 소송에 휘말려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A씨는 “백신을 접종한 학생이 부작용에 시달리는 건 국가가 보상할 사안”이라면서도 “이번 건은 정부를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학교장이 포함된 것이므로 교육 당국이 일괄 대응해야 한다. 안 그러면 학교 운영에 문제가 생기고 추후 감염병에 대한 대응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어진다”라고 말했다. 지난 19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상급 행정기관인 교육청이 피고(학교장 6명)에 대한 소송 일체를 대리해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A씨는 교원배상책임보험이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도 지적했다. 앞서 일부 시도교육청은 교원배상책임보험을 통해 피고인이 된 학교장의 소송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도교육청과 보험계약을 맺은 한 보험사의 약관엔 ‘법원판결에 따른 금액 중 학교안전보험(학교안전공제회) 대상 금액은 학교안전보험에서 처리하고 이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보험사가 부담한다’고 나와 있다. 학교안전공제회가 코로나19는 보상 범위에 포함하지 않는 만큼 보상 주체와 범위를 두고 또 다른 소송으로 번질 우려가 있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교육부는 지원책을 논의 중이란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장 선생님들이 교육 활동 중 소송을 당한 것으로 보고 시도교육청과 함께 법률 지원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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