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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유턴기업" 文 찬사한 모비스, 지원 퇴짜맞힌 '이상한 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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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기업들은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을 꺼리는 것에 대해 우선 까다로운 유턴 인정 요건과 행정절차를 원인으로 꼽는다. 문재인 전 대통령으로부터 “최고의 유턴기업”이라는 찬사를 받은 현대모비스는 2019년 울산에 공장을 짓기로 하면서 최대 100억원의 보조금과 법인세 감면 등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상시고용 20명 이상’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탈락했다. 당시 정부가 신규 채용만을 상시고용으로 봐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효성도 2020년 베트남에 아라미드 공장을 신설하려다 기존 울산공장의 생산라인을 증설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하지만 유턴기업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기업의 해외 생산시설을 감축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서다. 미국은 해외투자계획을 취소해도 유턴으로 인정해주고, 일본은 해외사업장 양도ㆍ축소 규정이 없다.

높은 규제장벽도 국내 투자의 걸림돌이다. 21일 아산나눔재단에 따르면 글로벌 100대 유니콘(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국내 사업 가능 여부를 검토한 결과에 55개사는 한국에서 제대로 사업을 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사업을 접은 '타다'와 같은 승차 공유, 원격의료, 공유 숙박 등이 대표적이다. 2017년 같은 조사에선 56개가 국내 규제에 저촉된다고 했는데, 5년간 사실상 개선된 게 없는 셈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양준석 규제학회장(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은 “어렵게 국내 유턴을 결심하더라도 각종 인허가 문제, 중복 규제 등 때문에 계획을 철회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기존 산업 영역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융복합 산업을 만들어 내는 4차산업 업종은 이런 규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라고 짚었다.

국내 산업의 고비용 구조와 상대적으로 높은 세율, 노사 갈등과 정치권의 반(反)기업 정서 등은 예전부터 지적되온 고질적인 문제다. 베트남에서 섬유 생산시설을 운영하는 한 중견기업 대표는 “동남아도 숙련화 과정을 오랫동안 거치면서 이젠 국내 노동자의 숙련도와 눈에 띄는 차이가 없다”며 “하지만 인건비나 유지비용은 한국보다 훨씬 싸다. 현재 지원책은 한국의 높은 비용 부담을 상쇄하기엔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국내 복귀 기업이 가져오는 신규 일자리 창출 효과.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국내 복귀 기업이 가져오는 신규 일자리 창출 효과.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산업계에서는 현실과 유리된 지방 우대 조건도 유턴 ‘장애물’로 꼽는다. 정부는 국내 복귀 기업이 지방으로 갈 경우 7년간 법인세를 최대 100% 감면하고 있지만, 수도권에 공장을 지을 경우 세금 혜택이 전혀 없다. 2014년 이후 유턴기업으로 선정된 121개 사 가운데 서울로 돌아온 기업이 한 곳도 없는 이유다. 양준석 학회장은 “기업들은 인력을 구하기 쉽고, 물류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으며, 시장도 큰 수도권으로의 복귀를 선호하지만, 수도권 규제 때문에 혜택이 제한돼 있다”라고 설명했다.

리쇼어링의 경제효과를 고려하면 이같은 지원 조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게 업계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한국수출입은행이 지난해 발간한 ‘해외직접투자 경영분석’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해외에서 철수를 계획하는 국내 제조기업이 복귀하면 8만5785개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지난해 말 기준 강원도 속초시 인구보다 더 많은 수다. 생산액은 36조1770억원 증가하고, 부가가치도 11조4000억원이 늘어난다.

국내 복귀 기업이 가져오는 생산액·부가가치 증가 효과.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국내 복귀 기업이 가져오는 생산액·부가가치 증가 효과.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전문가들은 또 비단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해외 유수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시장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가장 효과적인 리쇼어링 정책은 기업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며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합리적인 규제 개편, 자유로운 시장 활동, 혁신이 장려되는 경제 여건 마련 등이 핵심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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