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러시아, 2차대전 이후 첫 군 동원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 대국민 연설에서 예비군 30여만 명을 소집하는 ‘부분적 군 동원령’을 발표하고 있다. 군 동원령은 소련 시절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이 발표로 러 증시의 주가와 루블화 가치가 급락했으며, 국제유가는 치솟았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 대국민 연설에서 예비군 30여만 명을 소집하는 ‘부분적 군 동원령’을 발표하고 있다. 군 동원령은 소련 시절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이 발표로 러 증시의 주가와 루블화 가치가 급락했으며, 국제유가는 치솟았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으로 예비군 30여만 명을 소집하는 ‘부분적 군 동원령’을 내렸다. 러시아의 군 동원령은 소련 시절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7개월째 접어든 우크라이나 침공(러시아에선 ‘특수군사작전’으로 부름)의 확전 및 장기화 우려에 이날 러시아 증시의 주가와 루블화 가치가 급락하고 국제유가는 치솟았다.

푸틴 대통령은 21일 대국민 TV 연설에서 “러시아와 러시아의 주권, (영토적) 통합성 보호를 위해 부분적 동원을 추진하자는 국방부와 총참모부의 제안을 지지한다”며 “이미 해당 대통령령에 서명했으며 소집은 오늘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러시아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30여만 명이 소집 대상이다. 서방과 우크라이나 측은 개전 당시 러시아군 투입 규모를 19만 명으로 추산했으며, 현재까지 사망·부상·탈영 등에 따른 병력 손실을 8만~9만 명가량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 측이 30여만 명을 훈련시켜 전선에 투입할 수 있는 무기·탄약·차량·숙소·보급품 공급 능력이 있는지는 미지수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초기 총동원령을 내려 현재 약 70만 병력을 가동하고 있다.

소집자들은 훈련 뒤 전선에 투입되며 계약제 군인 신분으로 급여를 받게 된다. 복무 기간은 군 복무 상한 연령에 도달한 경우, 건강상의 이유로 복무 불가 판정을 받은 경우, 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경우 등을 제외하면 동원령 종료까지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은 “대학생 동원은 어떤 상황에서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핵 재앙’ 위협…러 증시·루블화 급락, 유가는 치솟아

지난 20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세워진 ‘러시아군 복무는 진짜 직업’이라고 적힌 모병 광고판. 푸틴 대통령은 예비군 30여만 명을 소집하는 군 동원령을 발동했다. [AFP=연합뉴스]

지난 20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세워진 ‘러시아군 복무는 진짜 직업’이라고 적힌 모병 광고판. 푸틴 대통령은 예비군 30여만 명을 소집하는 군 동원령을 발동했다. [AFP=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은 부분적 동원령임을 강조했지만, 파장은 컸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대표 주가지수인 MOEX 지수는 이날 모스크바 증시 개장 직후 한때 9.6% 급락해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가 그 뒤 마이너스 3%대를 유지했다. 러시아 루블화 가치도 장중 한때 달러당 63.1029루블로 전날보다 4.91% 떨어졌다. 반면에 에너지 위기가 심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유가는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기준 장중 한때 전날보다 3.2% 오른 배럴당 87달러에 육박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서방을 겨냥해 “서방의 반러 정책이 모든 선을 넘었다”며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푸틴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주요국 고위 인사들이 러시아에 핵 위협을 한다고 주장하며 이에 대해선 모든 무기를 동원해 방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발언을 하는 사람들에게 러시아도 다양한 파괴 수단을 보유하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싶다”며 “위협받으면 우리는 분명히 러시아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가용한 모든 수단을 쓸 것이며, 이는 엄포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핵무기로 우리를 협박하려는 사람들은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사시 핵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는 위협으로 해석된다. 또 우크라이나군이 현재 러시아 통제하에 있는 자포리자 원전을 공격하는 걸 용납함으로써 서방이 ‘핵 재앙’을 부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20일엔 러시아 하원인 두마가 총동원령과 계엄령을 강화하는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군 복무 의무 이행을 거부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등 상관 명령에 불복종하면 최대 15년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내용이다. 개정안은 21일 상원 격인 연방평의회에 상정됐으며 이를 통과하면 푸틴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발효된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 2월 24일 개전 이후 동원령 발령은 없을 것이라고 말해 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저항과 반격이 거세지면서 개전 뒤 점령했던 동부 루한스크주의 북쪽와 서남부 헤르손주의 일부까지 위협받자 동원령을 내릴 수 있다는 관측이 러시아에서 흘러나왔다.

벤 월리스 영국 국방장관은 21일 성명에서 “푸틴 대통령이 동원령을 내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긴 것은 우크라이나 침공이 실패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CNN이 전했다. 중국 외교부는 푸틴 대통령의 동원령 발동과 관련, “각 측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정전을 실현하기를 호소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전쟁 7개월째 자국군 손실이 5937명인 반면, 우크라이나 측 사망자와 부상자는 약 10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미 국방부는 개전 이후 7만~8만 명의 러시아 군인이 숨지거나 부상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날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 행정부들은 오는 23~27일 러시아 합병을 위한 주민투표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동부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 등 친러 세력이 독립을 선포한 지역 외에 점령지인 남부 자포리자·헤르손주 등 모두 4곳에서 실시된다.

한편 로이터통신은 지난 19일 익명을 요구한 미 국방부 관리를 인용해 “러시아 민간군사기업(PMC) 와그너(바그네르) 그룹이 유죄 판결을 받은 죄수 1500명을 대상으로 자원자를 모집해 우크라이나 전선에 보내려고 했지만 응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보도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