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신복룡 기고

대통령기록물 감추고 없애는 건 반역사적 ‘증거 인멸’

중앙일보

입력 2022.09.22 00:46

업데이트 2022.09.22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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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5년 마다 반복되는 국정 기록물 논란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전 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전 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

조선왕조의 창업이 이뤄진 뒤 어느 날 시중(侍中) 조준은 창업에 대한 세평이 궁금해 사관에게 사초(史草)를 가져오도록 했다. 사관이 거절했으나 당 태종도 사초를 읽은 전례가 있음을 거론하며 열람을 강요했다. 사관이 할 수 없어 보여주자 읽어보니 태조 이성계가 고려 공민왕·우왕·창왕을 겁박해 왕위를 빼앗은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이를 본 이성계가 사관을 국문하는 옥사(獄事)가 벌어졌다. (태조 2년 정월 12일) 그 뒤 태조는 왕을 비방한 사초가 또 있을까 걱정스러워 사초를 보려고 했더니 대관(臺官)이 거절해 무안하게 돌아갔다.

구중궁궐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숨기고 싶은 일이 많았을 것이고 치부를 기록한 사초를 없애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라 할 수도 있지만, 이 대명천지 현대사에서 열두 명의 대통령이 거쳐 가면서 그들의 문서가 흩어졌다는 것은 역사를 가진 민족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어이없는 것은 단순한 관리 소홀 때문이 아니라, 망명한 이승만 대통령과 급서한 박정희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공식 기록물을 고의로 은닉했다는 사실이다.

사유재산 아닌 공적자산인데 대통령 기록물을 라면박스에 방치도
과도하게 까다로운 대통령 기록물 공개 요건, 비리·실정 은폐에 이용
미국은 학자 연구용으로 신청한 기밀 문서 거의 대부분 열람 허용해
사료와 기록의 존재 사실 알리고, 자료 접근 불편과 금기 제거해줘야

2020년 9월 20일 당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천지로 이동하기 위해 케이블 카에 탑승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왕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빠짐 없이 기록했지만, 대한민국은 대통령 관련 기록이 부실할 뿐 아니라 공개 여부도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오락가락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진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020년 9월 20일 당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천지로 이동하기 위해 케이블 카에 탑승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왕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빠짐 없이 기록했지만, 대한민국은 대통령 관련 기록이 부실할 뿐 아니라 공개 여부도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오락가락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진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사초는 공물(公物)이다. 우리는 평소에 역사의 국유화를 늘 걱정했지만, 이제는 역사의 사유화를 걱정할 때다. 대통령 기록물의 산실(散失)은 역사의 함몰을 가져오기 때문에 위험하다. 대부분의 대통령이 떳떳하게 퇴임해 대통령기념관 하나 번듯하게 세우지 못하고 재임 중 기록물이 라면 박스에 담겨 지하실 어디에 쌓여 있다면 이는 참으로 공의롭지 못하고 국가적으로도 손실이다.

지금껏 퇴임한 대통령 열두 명 모두가 적법하고 명예롭게 물러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든 처자식이 저지른 죄 탓이든 치욕스러운 퇴진이 많았기에 사료가 잘 보존되지 못했지만, 이를 막지 못한 것은 본질적으로 제도 문제다. 국가 기록이나, 좁게는 대통령 기록이 잘 보존되지 못할 뿐 아니라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열람조차 할 수 없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첫째, 국가 기록에 대한 잘못된 관념과 인습 때문이다. 대통령의 기록을 그의 소유물로 여겨 퇴임과 함께 집으로 가져갔다는 데에서부터 반(反)역사적이다. 그 기록은 직무상 얻은 재산이며 기록이기 때문에 사유 재산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아무런 법적 제지나 양심의 가책도 없이 퇴임과 함께 반출해 왔다. 대통령의 기록은 공물이자 국가 재산이다. 미국의 경우라면 대통령이 퇴임하며 백악관을 나올 때 자신의 사물(私物)만 갖고 나올 수 있다. 대통령이 받은 모든 선물은 연방재산관리청에 반납해야 한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국가기록물을 자기 집으로 가져갔다는 혐의로 지난 9월 연방수사국(FBI)이 자택을 압수 수색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당사자와 지지자들은 차기 대선을 위한 음모라고 강변했지만, 미국의 국법으로 보면 수사는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미국은 대통령뿐 아니라 고위공직자가 재직 중에 취득한 것도 퇴직과 함께 국가에 반납해야 한다. 존 F. 케네디와 린든 B 존슨 행정부에서 장장 9년간 국무부 장관을 역임한 딘 러스크는 1969년 퇴임하면서 친지의 주소록과 전화번호를 적은 수첩 하나와 세금 관련 서류만 들고나왔다. 퇴임한 다음에는 고향에 내려가 옆집 아주머니들과 25센트짜리 동전을 들고 공중 세탁소에 줄을 섰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는 주한 미군정청 시절 문서는 물론이고 존 리드 하지 미점령군사령관의 문서와 낙서를 포함해 담뱃갑과 성냥까지 보관하고 있다. 그의 문서는 국방부 전사편찬실(OCMH)과 미육군군사연구소에 보존돼 있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서거하자 버지니아주 노퍽 시 정부는 청사 건물을 기증해 맥아더기념관을 설립했다. 이곳에서 자료 열람과 추모를 겸하고 있다.

둘째, 국가 기록 관리에 나타나는 허점은 제도적인 문제다. 그동안 국가기록물의 사사로운 반출을 관례적으로 묵인해 왔다. 신생 국가 건설 과정에서 법령 미비와 6·25전쟁과 4·19혁명, 5·16군사정변 같은 격동의 시대에 그런 문제를 다룰 겨를이 없었다. 초법적인 국가 기관의 그러한 반출을 제어할 장치도 없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출범 이후 70여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나쁜 관행이 방치되고 있는 것은 국가의 직무유기다.

물론 1969년 박정희 정부가 만든 총무처 정부기록보존소가 2004년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NAK)으로 확대 개편됐고, 2007년 7월에 제정·시행된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있어 대통령의 직무 수행과 관련된 기록을 관리하도록 이 법 7조에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기록 수장도 부실하거니와 공개는 사후(事後) 30년으로 규정하고 있고(16조), 이를 공개하려면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나 고등법원장의 판결을 필요(17조)로 하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사실상 공개가 봉쇄된 것과 다름없다.

무슨 정보 공개가 헌법 개정만큼의 국회 정족수를 요구하는가. 전직 대통령은 회고록 등의 저술에 필요한 자기의 기록만을 볼 수 있다.(18조-2) 이상의 규정을 어기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30조) 어지간한 살인죄보다 무겁다. 여기에 2020년 개정된 개인정보보호법의 족쇄까지 채우면 대통령 기록물은 사실상 사후에나 볼 수 있다. 역대 대통령의 비리와 실정을 은폐하기로 작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토록 폐쇄적으로 운영하나 싶다.

퇴임 대통령이 살아 있는 동안에 공개할 수 없는 자료라면 미국의 정보자유법(FOIA)처럼 ‘미공개(classified)’로 분류했다가 사후 35년에 ‘공개(declassified)’로 분류하면 된다. 설령 공개가 어려운 것이라 하더라도 학술적으로 필요할 경우에는 신청자의 신분과 용도를 기준으로 기밀문서심사위원회를 거쳐 열람증(clearance)을 발급해 공개하면 된다. 미국의 경우 학자가 연구용으로 신청한 기밀 문서의 열람을 거부하는 사례는 전체의 5%를 넘지 않는다.

물론 미국에서도 끝까지 공개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공익과 관계없는 개인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문서, 소송 당사자가 아니면서 소송 안건에 이익을 추구하려고 신청하는 문서, 고시(考試) 문서, 유정(油井)을 포함하여 지구물리학이나 천연 자원에 관한 탐사 문서 등이 영구 비밀로 취급된다. 정보자유법에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정보기관 사이에 암묵적으로 합의한 원폭·핵 문제와 세균전, 첩보원·간첩에 관한 문제는 기한이나 요청자의 신분에 관계없이 공개하지 않는다.

셋째, 한국 대통령기록관은 내용물이 아주 빈약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사물로 처리해 퇴임과 함께 반출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초래된 현상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경우처럼 자료를 회수하는 입법 조치가 필요하다. 문서든 옷이든 개인 용품이든 선물이든 재임 중에 받은 물건을 집으로 가져가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 그가 정말로 아끼는 기호품이라면 개인적으로 매입하거나 대통령 기념도서관 또는 박물관을 만들어 기증하면 된다. 그런 점에서 엄밀히 말하면 한국의 경우 북한에서 받은 풍산개도 동물원에 보내거나 합당한 값을 치르고 가져갔어야 맞다.

이럴 경우 공간이 문제될 수 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은 약 30억 건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 그 정도 규모는 아닐 것이다. 공간 문제의 해결 방법으로 기록관이 꼭 서울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으니 지방 특색을 살려 테마 기록관을 만들면 된다. 조건이 있다면 이용자의 접근성이 편리하도록 교통의 중심지인 대도시여야 한다. 그리스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의 말처럼 역사가는 도서관이 훌륭한 대도시에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기록 문화가 정착되고 분업화가 이뤄져 기록관이나 문서관이 제 모습을 갖추려면 아울러 함께 진행해야 할 과제가 있다. 사료나 기록의 존재에 대한 고지와 홍보, 자료에 대한 접근의 불편과 금기의 제거,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분류, 전문 사서(archivist)의 확보, 보존 처리 등에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 한국현대사 자료는 대부분 산성지(酸性紙)이기 때문에 열람이 어렵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의 현판에 쓰여 있듯이 ‘과거는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서막(What Is Past Is Prologue)’이기에 역사는 더욱 소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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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전 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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