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강찬호의 시선

"침대도 들어갔다"…친문 부원장 술판, 전략연 604호실 비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위치한 18층 빌딩. 강남 노른자위 땅에 세워진 이 빌딩은 국가정보원의 지원을 받는 국책연구소 ‘국가안보전략연구원(전략연)’ 건물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10월~지난해 말 이곳에서 입에 담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문재인 캠프 출신 부원장이 이 빌딩 604호 사무실을 사적 공간으로 쓰고, 여성들이 참석한 술판까지 벌였다는 것이다. 국책연구소 건물이 룸살롱처럼 쓰였던 이 1년 2개월의 기간은 코로나로 집합금지 명령이 발동된 기간과 그대로 겹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전략연 예산 수천만 원으로 인테리어를 했다. 바 시설과 침대까지 들어갔다”고 했다. 이 방이 생긴 뒤 등 파진 상의에 짙은 화장을 한 젊은 여성들이 심야에 전략연 건물을 들락거렸다. 이 사실은 문재인 정부 내내 감춰져 있다가 정권교체 뒤 전략원 관계자의 제보를 중앙일보가 보도하며 알려졌다. 제보자가 정부에 제출한 종이 자료 두께가 손 한뼘에 달했다고 한다.

친문 부원장, 비밀방에서 술판
대선 때까지 운영된 배경도 의문
문 정부의 기강 해이, 진상 밝혀야

전략연은 보안이 엄격하다. 업무차 방문한 일반인이 승강기를 타면, 그 승강기의 버튼은 만날 사람이 근무하는 층에만 작동할 정도다. 이런 건물에 술집 여성 차림새의 20대 여성들이 밤 12시~1시에 차를 몰고 들어왔다 새벽 4~5시에 나가곤 했다는 것이다. 관리 직원들은 황당했지만, 여성들의 차가 부원장 이름으로 등록돼있어 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부원장 본인은 차가 없었다고 하니, 여성들 차를 본인의 차로 둔갑시켜 여성들이 언제든지 출입할 수 있게 했을 공산이 크다. 여성들이 한밤중에 여러 번 나타나니 관리 직원들이 “어디 가시나”고 물었고, 여성들은 “604호실”이라고 답해 꼬리가 밟혔다. “어쩌다 전략연이 이렇게까지 됐나”는 자괴감 속에 부원장의 행태가 도를 넘었다고 여긴 관리 직원들은 여성들의 모습이 찍힌 CCTV 영상을 사진으로 뽑아뒀다. 건물 내 CCTV는 촬영 14일 뒤면 삭제되는 것을 고려해서였다. 이는 604호의 비밀을 밝히는 결정적 물증이 됐다. 문재인 정권의 안보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방을 만든 부원장이란 사람은 외교 안보나 정보 계통 근무 경력이 전무하다. 노무현 재단과 문재인 캠프에서 일한 친문 인사다. 전형적인 낙하산이다. 씀씀이가 커 친문 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선지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전략연 행정실장에 발탁됐고 2년 반 만에 기획부원장에 올라 원장 다음가는 2인자로 떴다. 그의 위상은 대단했다. 서훈 국정원장이 전략연에 들러 원장을 만날 때면 이 사람도 옆에 앉곤 했다고 한다. ‘전략연의 황태자’란 별명이 붙은 이유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 집권 뒤 604호에 얽힌 의혹을 부인하며 자리를 지키려 하다 정부 측이 입수한 물증을 제시하자 실토하고 지난 6월 물러났다. 국정원은 기획조정실과 감사팀에서 10명을 투입해 이달 말까지 조사를 한 뒤, 상응하는 조치를 하겠다고 한다. 국민의힘 유상범 정보위 간사도 10월 국정감사에서 A씨와 김기정 당시 전략연 원장을 증인 신청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반대로 출석 여부는 불투명하다. 기가 차다.

전략연은 건물 1층~10층엔 임대를 주고 11층~18층을 업무 공간으로 쓴다. 임대 수익은 빌딩 건립 기금을 낸 국정원 전직 직원들의 모임인 양지회의 운영비에 쓰인다. 양지회가 임대 수입을 올려야 하는 604호를 부원장이 마음대로 쓴 것이다. 당시 원장이었던 김기정 전 연세대 교수는 이 방의 존재에 대해 “몰랐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모를 수가 없다는 말도 나온다.

전직 전략연 원장은 “전략원 원장은 건물 전체를 관리하는 책임이 있다. 건물 모든 방의 현황을 직원들로부터 보고받는다. 부원장이 604호를 쓰는 사실도 당연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당연히 부원장을 불러 이유를 추궁하고, 방을 빼라고 지시하는 것이 정상일텐데 현실은 1년 넘게 부원장이 그 방을 마음대로 쓴 걸로 드러났다. 몰랐다는 건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문제의 방이 술판용으로만 쓰였는지도 의문이다. 이 방이 운영된 기간은 문재인 정권 말기에서 대선 정국으로 이어지는 시기다. 전직 전략연 원장은 “민주당 계열 인사들이 그 방에 모여 선거 전략을 논의하고, 술자리를 갖는 공간으로 쓰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믿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 방이 도대체 무슨 용도로 쓰였는지, 어떤 인물들이 드나들었는지 반드시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 문 정부 시절 자행된 국책 안보연구소의 기강 해이와 낙하산 인사의 폐해를 엄하게 다스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