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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 사이, 포천지 500대 기업 목록서 사라진 중국 기업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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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 전문지 포천(Fortune)은 해마다 매출액을 기준으로 글로벌 상위 500대 기업을 발표한다. 미국 최장수 경제지에서 선정하는 만큼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은 세계적 권위의 기업 평가 순위로 인정받는다.

포천이 글로벌 500대 기업 목록을 발표한 이후, 이 리스트에는 미국 기업의 지분이 높았다. 중국 기업의 이름이 많아진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불과 10여 년 전인 2010년만 해도 포천지 500대 기업에 오른 중국 기업은 61곳에 불과했다. 그러나 2020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으로 500대 기업에 선정된 중국 기업의 수가 미국을 제쳤다. 중국 기업(홍콩 포함)은 총 136개사, 뒤를 이어 미국이 124개사, 일본이 47개사로 집계됐다. 총매출 규모**에서도 중국이 31%로 미국(30%)을 앞질렀다. 10여 년 사이에 중국 기업이 얼마나 몸집을 키워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상위 10위권에서 4곳은 중국 기업이었다. 1, 2위는 미국 기업인 월마트와 아마존이 석권했고 3위부터 5위는 국가전력망공사(스테이트그리드),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 시노펙으로 중국 에너지 기업들이 차례로 이름을 올렸다.

2022년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 표지 [출처 fortune.com]

2022년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 표지 [출처 fortune.com]

*2022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 상위 기업 10곳
1위 월마트(미국), 2위 아마존(미국), 3위 국가전력망공사(스테이트그리드), 4위 중국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 5위 시노펙(중국), 6위 아람코(사우디아라비아), 7위 애플(미국), 8위 폭스바겐(독일), 9위 중국건축정공사(CSCE), 10위 CVS헬스(미국)
**포천 500대 기업의 총매출은 37조 8000억 달러(약 5경 1956조 원)로 집계됐다.

지난 9일, 중국 유력 경제지 경제관찰보(經濟觀察報, The Economic Observer)는 지난 10년간 어떤 기업이 포천지 5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리고, 또 목록서 사라졌는지 분석했다. 2012년부터 2022년 사이 포천 글로벌 500 목록에서는 중국 기업 57곳이 사라졌다. 일부 기업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도태됐고, 일부는 혼란을 겪은 뒤 사라졌다.

2013년부터 2022년까지 매년 포천 글로벌 500에서 사라진 중국 기업의 수

2013년부터 2022년까지 매년 포천 글로벌 500에서 사라진 중국 기업의 수

먼저, 지난 10년 사이 중국 산업 및 기업 변화의 첫 번째 분수령은 '전자상거래'의 등장이다.

2013년, 중국의 오프라인 유통 대기업 바이렌그룹(百联集团)이 처음으로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에 올랐다. 그러나 같은 해, 알리바바그룹 산하 이커머스 플랫폼 톈마오(天猫·T-mall)가 세계 최대 규모 온라인 쇼핑 페스티벌 솽스이(雙十一)에서 350억 위안(약 6조 9496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승승장구했고 오프라인 판매는 새로운 도전과 위기에 직면했다. 이듬해인 2014년 9월, 알리바바그룹은 나스닥 상장에 성공했고 바이렌그룹은 2014년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 목록에서 사라졌다.

두 번째 분수령은 2016년을 전후해 일어났다. 이 시기에는 거대 기업 간'인수합병(M&A)' 바람이 불었다. 중국 정부는 국유 기업을 합병해 초대형 기업으로 해외 시장 경쟁력을 높이고자 했다.

먼저, 국유 기업이다. 금속·광산개발 국유기업인 우광집단(五鑛集團)과 예진커궁집단(冶金科工集團)은 각각 몸집이 거대한 기업이었으나 구리, 아연 등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실적 악화를 면치 못했다. 두 기업은 합병 후 자산 7000억 위안의 공룡 금속 기업으로 거듭났다.

2014년 12월 31일에는 중국의 양대 고속철 제조사인 중궈난처(CSR)와 중궈베이처(CNR)가 합병해 세계 철도 차량 시장 점유율 50%를 차지하는 중궈중처(中國中車·CRRC)가 됐으며 당시 중국 2위 철강사인 바오산철강과 6위였던 우한철강이 합병해 세계 최대 철강사인 바오우(宝武)철강그룹이 됐다.

중국 5대 원자력 발전업체 가운데 하나인 중국전력투자집단(CPI·중국전력)과 국가핵전기술공사(SNPTC·국가핵전)도 2015년 6월에 합병해 국가전력투자집단(SPI)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원전의 수출을 활성화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인수합병이었다.

만간 기업의 경우 중국 최대 가전업체인 하이얼이 2016년 1월,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인 GE의 가전사업 부문을 54억 달러(6조5000억원)에 인수했다. 하이얼은 합병으로 북미 가전 시장을 공략할 교두보를 마련했다. 중국 최대 자동차 유리기판 업체인 푸야오글래스는 미국 마운트자이언을 인수했으며, 칭화유니는 낸드플래시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 업체 샌디스크를 190억 달러에 사들이며 세계 시장에서 중국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했다.

세 번째 분수령은'코로나19'다. 2021년, 2022년 각각 10곳의 기업이 포천 500대 기업 목록에서 사라졌다. 특히 2021년에 목록에서 빠진 10개 기업 중 화샤보험(华夏保险)을 제외한 나머지 9개 기업은 에너지 관련 기업이었고, 이 가운데 7개 기업은 석탄 관련 기업이었다.

특히, 2020년 허난성 석탄 채굴 기업 융청석탄전기가 10억 위안(약 1989억 원) 규모의 채권을 갚지 못하는 디폴트(default·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지며 채권 시장에 일대 충격을 가했다. 중국 국영기업은 그동안 부채비율이 높고 생산성이 낮았음에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차원에서 디폴트만큼은 막아줬다. 그러나 코로나 시기 자금 공급을 확대했다가 상당수의 돈이 주식, 채권, 부동산으로 흘러 들어가며 거품이 우려되는 상황이 닥치자 정부가 돈줄을 조이기 시작했고 국영기업의 자금 조달 여건은 빡빡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석탄 가격도 하락했다. 2020년 융청석탄전기의 상반기 이익은 전년 대비 24% 감소했고, 여기에 탄소 중립 등 환경 보호 이슈가 더해지며 다수의 석탄 회사는 큰 위기에 봉착했다.

2021년의 주요 키워드는 '부동산'이었다. 중국의 부동산 기업인 헝다(恒大·에버그란데), 룽촹중궈(融創中國·Sunac China), 화룬즈디(華潤置地·China Resources Land)가 포천 500대 기업 명단에서 제외됐다. 헝다의 경우 6년 연속으로 리스트에 올랐으나, 정부 정책에 반하는 무리한 개발과 사업 확장으로 2021년 12월 디폴트 상태에 빠졌다.

중국 정부는 2016년 '팡주부차오(房住不炒, 주택은 거주용이지 투기용이 아니다)' 정책을 내놓으며 부동산 투기 규제를 시작했다. 2020년에는 부동산 기업들에 절대 넘지 말아야 할 '3개의 레드라인(三道红线)'을 설정하며, 부동산 기업들의 부채 규제를 통해 부동산 과열을 막겠다는 정책을 펼쳤다. 부동산 기업에 대한 감독이 점점 더 강화됐고, 그동안 회전율과 스피드로 성공 가도를 달린 헝다는 정부 정책에 역행하다 달러 채권 이자 8249만 달러(약 976억 원)를 지급하지 못하며 파산 위기에 몰렸다. 그 여파는 부동산 업계 전체로 번졌다.

그 어떤 잘나가는 사업과 유망한 산업도 역사의 흐름에 따라 흥망을 달리한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와 흐름을 빠르게 읽고 체질을 바꿔 명맥을 이어가는 기업도 존재한다. 미국 신용카드사 아메리칸 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가 좋은 사례다. 1850년 개업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운송 및 택배 회사로 교통이 불편하던 시기 정확한 배송과 배송 오류 시 배상하는 시스템으로 명성을 얻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그러나 1918년 정부에 급행편 사업을 몰수당한다. 그러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운송업 시기 확보한 지점망을 활용해 여행업 및 국제금융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신뢰가 두터웠던 브랜드라 사업은 술술 풀렸다.

그러나 이내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전쟁 직후 유럽 대륙에서 다시 사업을 시작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미국 정부와 제휴를 맺어 해외 거주 중인 미군 및 가족들을 위한 군용 은행 사업을 시작해 대성공을 거뒀다. 1958년에는 현재 핵심 사업이 된 신용카드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만 해도 결제 시스템이 완비되지 않아 손실만 봤으나 인프라가 서서히 구축되고 사람들이 신용카드의 편리성을 깨닫게 되자 5년 만에 흑자 전환을 달성했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발 빠르게 대응한 결과였다.

예상치 못한 위기나 불경기가 닥쳤을 때 주도적으로 효율성을 높일 방법을 찾고, 유전적 제약을 극복하는 것은 진화고 진보다. 예상치 못한 변화와 난관을 뛰어넘는 기업은 더욱 강해져 종의 진화를 주도할 수 있게 된다.

포천 5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리는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 사이에서, 중국 기업이 명멸하는 현상은 더 큰 생태계에서의 종의 경쟁과 같으며 중국 경제가 그만큼 활력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향후 10년 사이, 세계 5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릴 중국 기업과 새로운 산업은, 지난 10년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과연 어떤 기업이 새로운 종(種)을 주도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차이나랩 임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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