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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여변호사에 "운명이다"…15년전 살인범의 살벌 스토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남 진주에서 40대 남성이 자신의 ‘살인미수죄’ 사건을 변호한 여성 변호사를 스토킹·방화 협박한 사건이 발생했다. 스토킹·방화 혐의로 구속된 이 남성은 15년 전 친인척을 살해한 혐의로 치료감호 처분까지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8일 오전 경남 진주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 40대 남성이 기름통을 들고 출입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 독자

지난 18일 오전 경남 진주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 40대 남성이 기름통을 들고 출입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 독자

과거사건 재심 요구하더니…“운명이다 청혼한다” 편지 보내

21일 경찰 등에 따르면 A씨(40대)는 지난 18일 오전 9시30분쯤 진주 시내 한 변호사 사무실에 경유 10ℓ가 든 기름통과 라이터를 들고 들어가 불을 지르겠다며 변호사를 협박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건 당시 A씨는 “12시까지 오지 않으면 사무실이 불 탈 것”이라며 “마지막 경고”라는 취지의 문자 메시지를 변호사에게 보냈다. 기름통과 라이터를 촬영한 사진도 함께 전달했다.

A씨는 2014년 본인 ‘살인미수죄’ 재판 당시 국선변호인을 맡았던 40대 여성 변호사를 상대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범죄로 복역하다 지난해 3월 출소한 A씨는 지난 8월과 9월 약 한 달 동안 변호사 사무실을 찾고, 수시로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내는 등 스토킹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A씨는 8월 초 처음 피해자와 만났을 때 과거 살인미수 사건 재심 신청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검사가 간첩”이었다며 “법조계, 의료계가 공산주의 세력에 침투돼 국가보안법으로 처단해야 하니 도와 달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변호사가 사건 수임을 거부하자 A씨는 집요하게 연락하는 등 스토킹을 시작했다. A씨는 변호사 사무실에 “운명이다. 청혼한다”는 취지의 편지를 남기거나 “죽고 싶어요! 전화받아요!”라는 메시지를 피해자에게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A씨는 스토킹 범죄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스토킹처벌법), 특수협박, 건조물 침입, 일반건조물 방화 예비 혐의로 지난 20일 구속됐다.

지난 18일 오전 경남 진주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 놓여 있는 기름통과 라이터. 사진 독자

지난 18일 오전 경남 진주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 놓여 있는 기름통과 라이터. 사진 독자

스토킹범 살인, 살인미수 등으로 재판받아

A씨는 2014년 살인미수 사건을 일으키기 전인 2007년 친인척을 살해한 혐의로 치료감호 처분을 받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06년 11월 친인척이 운영하는 경남의 한 가게에서 일하던 중 해당 친인척인 30대 여성을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했다.

A씨는 이날 “휴대폰에 너무 집착하는 것이 아니냐, 친구들을 너무 자주 만나는 것 같다, 교회를 열심히 다녀라, 자주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쫓아내겠다”라는 피해자의 말을 듣고 격분,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법원은 2007년 2월 정신질환 등 심신미약을 이유로 A씨에게 치료감호를 선고했다.

하지만 A씨의 범행은 계속됐다. 공주 치료감호소에서 나온 뒤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14년 2월 살인미수 혐의로 다시 재판에 넘겨졌다. 이번 스토킹·방화 협박 사건의 피해자가 국선 변호를 맡은 ‘2014년 살인미수 사건’이었다. 이 사건에서도 A씨가 실형을 선고받을 때 심신미약이 감경사유로 적용됐다.

이 사건 1심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경남의 한 사무소 앞에서 40대 남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A씨는 이 남성이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방식에 참견하며 시비를 건 것에 앙심을 품고,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지난 18일 경남 진주의 한 변호사 사무실 건물 인근에 주차된 차량. 이날 스토킹, 방화 협박 혐의로 긴급 체포된 40대 남성이 범행 당시 타고 온 차량이다. 사진 독자

지난 18일 경남 진주의 한 변호사 사무실 건물 인근에 주차된 차량. 이날 스토킹, 방화 협박 혐의로 긴급 체포된 40대 남성이 범행 당시 타고 온 차량이다. 사진 독자

2007년 살해도구…스토킹 당시 차량서 같은 흉기 나와

경찰 조사에서 지난 18일 스토킹·방화 협박 범행 당시 A씨가 타고 온 차량에서 2007년 살인 사건 때와 같은 종류의 흉기와 쇠사슬 등이 발견됐다. A씨 차량은 범행 장소인 변호사 사무실이 있는 건물 앞에 주차돼 있었다.

경찰은 A씨 과거 범행 전력을 토대로 살인예비죄 등 추가 혐의가 적용 가능한지 살펴보고 있다. 살인예비죄는 살해 범행을 실행에 옮기진 않았지만, 그럴 의도로 준비한 행위에 대해 처벌하는 범죄다. 현재 A씨는 살해 의도에 대해서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남지방변호사회는 21일 성명을 내고 “이번 사건은 ‘여성’에 대한 스토킹 범죄가 방화 시도까지 이어진 중대한 사건”이라며 “스토킹 범죄 특수성을 고려해 범죄 징후 발생 시 사전적이고 즉각적인 피해자 보호조치 시행과 보완책을 마련할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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