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흐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코롤리오프. 작곡가 리게티는 그의 바흐 음반을 ″무인도에 가져갈 음반″이라고 극찬했다. 사진 서울시립교향악단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는 ‘음악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피아노의 구약성서’라고들 한다.
에트빈 피셔, 로잘린 투렉, 글렌 굴드, 안드라스 쉬프 등은 ‘바흐 스페셜리스트’로 불린다. 구 소련시절부터 내려오는 러시아의 바흐 대가들도 빼놓을 수 없다. 에트빈 피셔의 뒤를 이어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전곡을 녹음하고 연주한 사무엘 파인베르크부터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 마리아 유디나, 비탈리 마르굴리스, 타티아나 니콜라예바, 예브게니 코롤리오프 등이 제각기 바흐 연주로 찬사를 받았다.
23일 롯데콘서트홀 공연 앞둔 바흐 스페셜리스트 #15세 때 만난 아내 룹카, 안나 빈니츠카야도 함께 #3대의 피아노와 서울시향이 펼치는 바흐 건반 협주곡 #리게티 “코롤리오프의 바흐는 무인도에 가져갈 음반”
이 중 예브게니 코롤리오프(73)는 조용하고 꾸준하게 음반 애호가들의 지지를 받아왔다.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겐리흐 네이가우스와 마리아 유디나에게 배웠다. 1977년 클라라 하스킬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1978년부터 2015년까지 함부르크 음대 교수로 재임하며 “각광받는 것보다 음악으로 행복을 나누는 게 중요하다”는 연주 철학을 제자들에게 전했다.
코롤리오프는 15세 때 한 살 연상인 룹카 하지게오르지에바를 처음 만났다. 모스크바 음악원에 국비장학생으로 온 당시 유고, 현재 북마케도니아 출신 음악도는 이후 그의 아내가 됐다. 룹카와 1976년 ‘듀오 코롤리오프’를 결성해 40년 넘는 세월을 함께 연주했다.

'바흐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코롤리오프. 작곡가 리게티는 그의 바흐 음반을 ″무인도에 가져갈 음반″이라고 극찬했다. 사진 서울시립교향악단
2017년 룹카와 첫 내한, 서울과 대전에서 바흐와 슈베르트의 작품들을 선보였던 코롤리오프가 5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23일 롯데콘서트홀, 24일 아트센터인천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과 바흐 협주곡을, 27일에는 아트센터인천에서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한다.
협주곡 연주는 룹카, 그리고 코롤리오프의 제자이자 2007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인 안나 빈니츠카야도 함께한다. 포츠담 체임버 아카데미의 악장인 강수연이 객원악장 및 리더로 참가한다. 이들 네 사람은 2019년 알파 레이블에서 발매된 포츠담 체임버 아카데미의 바흐 음반 주인공들이다.
“룹카와 안나는 뛰어난 음악성을 지닌 피아니스트들이고 멋진 실내악 동료들입니다. 저는 무대에 동료가 함께 있을 때 더 편안한 것 같습니다.”
바흐의 작은 전주곡 C단조 BWV999에 매료됐던 일곱살 꼬마 코롤리오프는 평생을 바흐의 수많은 작품들에 천착하게 됐다. 내한 공연을 앞두고 서면 인터뷰로 만난 그는 “바흐를 연주할 때마다 세상과 삶이 의미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코롤리오프(오른쪽)와 그의 아내 룹카 하지게오르지에바. 부부는 1976년 ‘듀오 코롤리오프’를 결성해 40년 넘는 세월을 함께 연주했다. 사진 서울시립교향악단
작곡가 죄르지 리게티는 영국 그라모폰지 2000년 1월호에서 1990년 발매된 코롤리오프의 바흐 ‘푸가의 기법’ 음반을 가리켜 “무인도에 한 장의 음반만 허락된다면 코롤리오프의 바흐를 갖고 가겠다. 허기와 갈증을 잊을 수 있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듣고 있겠다”고 말했다.
리게티가 말한 코롤리오프의 ‘푸가의 기법’ 음반을 들어보면 연주가 중용적이고 담백하다. 아고기크(템포나 리듬에 미묘한 변화를 가해 다양한 색채감을 나타내는 법)를 절제하는 그의 접근법 때문이다.
“하프시코드 연주에서는 아고기크가 중요하겠지만 피아노 연주에서는 아고기크를 과하게 넣지 않으면서 음색을 통해 프레이징(연속되는 선율을 악구 단위로 분절해 연주하는 기법)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페달도 과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23일 롯데콘서트홀 객석의 청중들은 공연 시작 전 무대 위에 포진한 석 대의 피아노를 볼 수 있다. 첫 곡이 3대의 하프시코드 협주곡 BWV1063으로 제1피아니스트의 비중이 커서 코롤리오프의 기교를 맛볼 수 있다. 안나 빈니츠카야가 독주자로 나서는 BWV1056과 코롤리오프 부부가 협연하는 2대의 하프시코드를 위한 협주곡 BWV1060으로 1부를 마친다. 룹카와 안나가 협연하는 BWV1062로 2부를 시작하고 코롤리오프가 협연하는 BWV1058에 이어 바흐 전기 작가 필리프 슈피타가 “가장 인상적인 바흐 기악곡 중 하나”로 꼽은 3대의 하프시코드를 위한 협주곡 BWV1064로 공연을 마무리한다.
이제 두 번째 내한이고 두 번 모두 바흐가 중심이었지만 코롤리오프는 본인이 ‘바흐 스페셜리스트’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 애호가들이 바흐를 특히 좋아하는 것 같다”는 코롤리오프는 “베토벤이나 슈베르트, 쇼팽, 드뷔시, 프로코피예프도 좋아하는 레퍼토리”라고 말했다.
차이콥스키, 스트라빈스키, 쇼스타코비치 등 러시아 작곡가들의 곡들도 녹음했던 코롤리오프는 스크랴빈, 메트네르, 프로코피예프를 수록한 새 음반을 내년 초 발매한다.
작곡가 리게티를 비롯해 수많은 애호가들을 감동시킨 코롤리오프는 연주의 원동력을 “음악에 대한 끝없는 사랑”이라고 했다. 관객이 많든 적든, 아니, 있든 없든 한결같은 태도의 연원이 거기 있었다. “언젠가는 연주활동을 지속하기 힘든 때가 오겠죠. 그날이 오더라도 집에서 나를 위해 늘 음악을 연주할 겁니다.”
류태형 객원기자・음악칼럼니스트 ryu.taeh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