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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세상](48) 감동없는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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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얘기다.

기대가 컸던 걸까, 실망도 크다. 많은 이들이 돌아앉는다. 민심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집권 초기인데 돌아가는 꼴은 말기 증상'이라는 말이 나온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김신영이래…

누구?

코미디언 김신영…

정말?

그가 고(故) 송해 선생의 뒤를 이어 전국 노래자랑 MC로 선택됐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와, 멋지다~'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의 말대로 '전국 어디에 갖다 놓아도 있을 법한 사람'이다. 어쩌면 저렇게 잘 골랐을까… 최적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상벽, 이상용, 임백천, 이택림… 많은 사람이 후보로 거론됐었다. 모두 마이크 잡기에 손색이 없는 최고 MC다. 김신영에게는 그들과 다른 게 하나 있다. 바로 '감동'이다.

이상벽 선생이 맡았다면, '아 그랬구나' 정도였을 것이다. 임백천이 됐다면, '잘하겠네~'정도이지 싶다. 그러나 김신영에게는 '와~!' 라는 감탄이 터진다. 파격적이다. 그러면서도 기가 막히게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감동한다.

우리 정치에는 바로 그 감동이 없다.

그냥 빈말뿐, 국민을 감동하게 할만한 구체적인 통합의 정책은 없다. 사람 선택도, 정책 쓰는 것도 그냥 뻔한 수준이다. '김신영 감동'은 없다. 그러니 여론조사 지지율이 바닥이다.

예능인 김신영이 고(故) 송해 선생의 뒤를 이어 전국 노래자랑 MC로 선택됐다. 그의 말대로 '전국 어디에 갖다 놓아도 있을 법한 사람'이다. 어쩌면 저렇게 잘 골랐을까... 감동을 준다.

예능인 김신영이 고(故) 송해 선생의 뒤를 이어 전국 노래자랑 MC로 선택됐다. 그의 말대로 '전국 어디에 갖다 놓아도 있을 법한 사람'이다. 어쩌면 저렇게 잘 골랐을까... 감동을 준다.

도대체 뭐가 문젠가. 오늘 '감동의 리더십' 얘기해보자.

주역 19번째 '지택림(地澤臨)'괘를 뽑았다. 땅으로 상징되는 곤(坤,☷)이 위에, 연못으로 대표되는 태(兌, ☱)가 아래에 있다. 언덕 아래에 호수가 펼쳐진 형상이다.

언덕 위에 올라 연못을 바라보듯,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게 바로 림(臨)이다. 임금이 백성들을 통치한다는 뜻의 '군림(君臨)'에 의미가 고스란히 살아있다.

"그럼 상하관계 아냐? 요즘 민주사회와 어울리지 않는 리더십이네.." 이런 말 나오기 쉽다. 군림이라는 말에도 '위에서 억누른다'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가 담겼다. 그러나 괘 내용을 보면 다르다. 오히려 민주적이다. 오늘날의 정치, 경영에 적용해도 하등 무리가 없다.

'림(臨)' 괘가 제시하는 리더십의 요건은 첫 번째도, 두 번째도 감동이다. 첫 효사(爻辭)는 이렇다.

咸臨, 貞吉
감동으로 다가가니, 곧음을 견지하면 길하다.

리더십 초기, 백성들은 새 리더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한다. 그런 국민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주역이 답으로 제시한 게 바로 '감동'이다(여기 '咸'은 '感'과 같이 쓰인 말이다). 권위에 기대지 않고 감화(感化)로 백성을 이끌어야 한다는 얘기다.

두 번째 효사는 더 깊다.

咸臨, 吉無不利
감동으로 다가가니,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

효사 그대로다. 마음으로 백성에 다가가면 풀리지 않을 일이 없다. 논리로 설득하는 것도 중요하다.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거기서 한 발 더 나가야 한다. 감정을 보살펴야 리더십은 탄탄해진다.

국민은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하는 말, 몸짓이 모두 거슬린다. 권위주의적이고, 군림하려 든다는 인상을 풍긴다. 자기들끼리만 뭉친다. 그러니 '김신영'에게서 느끼는 감동이 없다. 기대는 실망으로 바뀐다.

폭우가 쏟아졌다. 지도층 인사들도 수해 현장을 찾았다. 그 와중에 '비가 더 쏟아져야 사진발이 잘 먹힐텐데….'라고쉰소리를 한다. 장화나 운동화가 아닌 구두를 신고 나타났다. 그러니 감동이 전달되지 않는다. '프로를 쓰라'는 충고만 듣는다.

주역 19번째 '지택림(地澤臨)'괘는 언덕 아래에 호수가 펼쳐진 형상이다. 언덕 위에 올라 연못을 바라보듯,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게 바로 림(臨)이다. 출처 바이두

주역 19번째 '지택림(地澤臨)'괘는 언덕 아래에 호수가 펼쳐진 형상이다. 언덕 위에 올라 연못을 바라보듯,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게 바로 림(臨)이다. 출처 바이두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하면 감동을 끌어낼 수 있을까.

주로 왕을 주변에서 보좌하는 신하의 길을 말하고 있는 네 번째 효사는 이렇게 말한다.

至臨, 無咎
아래로 임하니, 허물이 없다.

여기 '至(지)'는 아래(下)를 뜻한다. 몸을 낮춰 백성 속으로 가라는 얘기다.

무릇 정치권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국민을 봐야 한다. 서민들의 삶을 살피고, 민간의 활력을 끌어내야 한다. 현장의 목소리를 국정에 반영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은 뿌리를 내리고, 탄력을 받는다. 그게 민주주의 아니던가.

이 나라 정치인들은 자기들만 본다. 여당은 야당을, 야당은 여당만을 바라보며 치고받고 싸운다. 그러면서도 국민에게는 군림(君臨)하려 든다. 그러니 욕먹을수밖에…. 감동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도, 옛날도 크게 다르지 않은 한국 정치 모습이다.

'림(臨)'괘는 이제 최고 지도자의 리더십 덕목을 얘기한다. 왕의 효로 통하는 다섯 번째 효 효사는 이렇게 말한다.

知臨, 大君之宜, 吉
지혜로서 다가가니, 위대한 군주의 마땅함이다. 길하다.

리더는 지혜로와야 한다. 똑똑해야 한다. 그래야 역사가 기억할 훌륭한 리더가 된다.

당연한 얘기다. 문제는 '어떤 지혜인가'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 송대의 주역 전문가 정이천(程伊川)은 이렇게 답한다.

唯能取天下之善, 任天下之聰明, 則無所不周
오직 세상의 선함을 취하고, 세상의 총명함에 기대라. 그래야 모든 일을 두루 해낼 수 있다.

자신의 지식에 의존하지 말라는 얘기다. 왕이라고 해서 전지전능한 건 아니다. 대통령이라고 모든 걸 다 알 수 없다. 국정은 넓고, 개인 지식은 짧다.

그러기에 겸손해야 한다. 백성을 포용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민생을 위한 최선의 정책을 취할 수 있고, 세상 총명을 널리 끌어낼 수 있다. 그게 진정한 리더의 지혜다.

한물간 사람, 아니면 내가 속했던 그룹 사람들만 골라 쓴다. 세상의 지혜가 어찌 그들에게만 있단 말인가. 뭔가 새롭고, 파격적이면서도 최적의 인사를 골랐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정치에서도 '김신영 감동'을 느끼고 싶다.

주역은 포용의 리더십을 강조한다. 그럴 때 비로소 민생을 위한 최선의 정책을 취할 수 있고, 세상 총명을 널리 끌어낼 수 있다는 얘기다. 그게 진정한 리더의 지혜다. 출처 바이두

주역은 포용의 리더십을 강조한다. 그럴 때 비로소 민생을 위한 최선의 정책을 취할 수 있고, 세상 총명을 널리 끌어낼 수 있다는 얘기다. 그게 진정한 리더의 지혜다. 출처 바이두

말만 번지르르 한다고 감동을 주는 건 아니다. 세 번째 효사는 이렇게 기술한다.

甘臨, 無攸利
달콤한 말로 다가가니, 이로울 게 없다.

셋째 효는 원래 양(─)이 와야 할 자리인데 음(--)이 자리 잡고 있다. 바르지도 않다. 게다가 위에서 누가 끌어주지도 않고, 아래 세력에게는 휘둘린다. 달콤한 말로 현혹한다.

'코로나에 지친 전 국민에게 100만원씩 주겠다.' 누군가 이런 감언(甘言)으로 국민에게 다가간다면, 그게 바로 감임(甘臨)이다. 최악의 리더십이다. 주역은 지금 포퓰리즘을 경계하고 있다.

공자는 '교언영색에 인(仁)은 없다(巧言令色, 鮮矣仁)'고 했다. 현실과 괴리된 '퍼주기' 발언은 부메랑처럼 돌아오게 되어 있다. 개인에게도, 국민에게도 이로울 게 없다.

정리해보자. '림(臨)'괘가 제시하는 리더십의 요체는 감동이다. 마음으로 국민에 다가가야 한다. 포용이 바탕이다. 지도자의 넓은 마음, 포용심이 감동을 낳는다. 정치가 외면당한다면, 그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주역은 '임(臨)'괘의 형상을 설명하며 리더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君子以容保民無彊
군자는 이로써 백성을 포용하고, 보호하려는 마음이 한없이 드넓어야 한다.

포용은 힘 있는 자의 몫이다. 포용력 없는 리더에게 감동의 정치는 기대할 수 없다. 감동 없는 정치는 가혹(苛酷)할 뿐이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

한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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