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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동해안 지형 반영한 홍수 대비책 세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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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삼희 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삼희 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14호 태풍 난마돌에 앞서 지난 6일 동해안을 덮쳤던 11호 태풍 힌남노가 남긴 상처가 깊다. 당시 경북 포항 냉천이 일순간 범람하면서 주변 저지대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침수돼 7명이 숨졌고, 대표적인 국가기간산업인 포항제철공장이 일부 멈추면서 막대한 재산 피해도 발생했다.

앞서 2019년 태풍 미탁 때는 영덕·울진·삼척에서, 2016년 태풍 차바 때는 울산에서, 2002년 태풍 루사 때는 속초·강릉·동해에서 큰 홍수가 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홍수 피해 예방 노력과 투자로 안전성이 높아진 내륙의 큰 하천과 달리 동해안 하천은 태풍이 올 때마다 홍수 피해가 반복되고 있어 안타깝다.

악순환을 끊으려면 무엇보다 동해안 하천에서 발생하는 홍수 피해의 내재적 원인에 대한 과학적 진단이 시급하다. 즉, 동해안으로 접근하는 태풍의 기상 특성과 연계한 동해안 유역 및 하천의 구조적 특이성에 주목해 대비해 재해를 줄여야 한다.

태풍 올 때마다 동해안 홍수 반복
백두대간 일대 국지적 폭우 잦아
지역 특성에 맞게 하천 정비해야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첫째, 가을 태풍이 동해안으로 접근하면 다른 곳보다 더 강한 폭우가 쏟아진다. 북반구 특성상 태풍은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면서 한가운데로 수렴한 후 수직으로 상승한다. 이때 먼바다에서 연안 쪽으로 다습한 바람이 강하게 불어 백두대간을 향해 급상승하면서 많은 비를 뿌린다. 이맘때가 되면 동해안 상공에서 북풍의 찬 공기와 남풍이 몰고 온 따뜻한 공기가 충돌해 강우량이 국지적으로 폭증한다.

바다 상황을 보면 만조 상태에서 태풍 기압이 낮을수록, 먼바다에서 내륙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강할수록 해수면이 더 높아지면서 결국 바닷물은 하천을 거슬러 역류한다. 이때 상류로부터 흘러내린 큰 강물과 충돌하며 솟구치면 폭포수와 같은 엄청난 물이 순간적으로 강 밖으로 넘친다. 대홍수 발생 시 서서히 넘치는 일반 하천의 범람 형태와는 양상이 전혀 다르다. 바로 이런 현상이 포항 냉천 범람 당시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동해안에는 하천에 영향을 주는 지진해일 우려도 있다.

둘째, 동해안 지역의 물길은 지형적으로 홍수 피해에 유난히 취약하다. 폭이 좁고 급한 계곡을 빠져나오자마자 토사가 쌓여 만들어진 넓은 선상지(扇狀地)에 취락과 경작지가 많이 형성돼 있다. 그런데 여기는 홍수 때마다 빠른 물살과 함께 떠내려오는 다량의 토사가 꾸준히 쌓여 물길을 자주 바꾸기 때문에 강둑을 쌓아 물길을 고정해도 재해에 취약하다.

선상지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은 밀물 때 바닷물이 밀려오기 때문에 하천 경사가 갑작스레 완만해져 국지적으로 토사가 쌓이는 감조(感潮) 구역이 많다. 연안 조류에 따른 모래톱으로 하구가 막혀 있어 큰물이 빠져나가지 못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동해안 하천에서는 강바닥에 큰 자갈과 모래가 지속해서 쌓여 큰물이 범람하기 쉬운 하천 형태가 짧은 구간에 연이어 형성돼 있다.

셋째, 동해안은 산불이나 강추위에 따라 발생하는 토석류(土石流) 영향도 지대하다. 봄철에 양양과 고성(간성) 사이에서 부는 양간지풍(襄杆之風) 현상에 따라 산불이 나면 빽빽한 소나무 숲 탓에 산불이 훨씬 더 크게 번진다. 동절기에 강추위가 지속하는 해에는 토양이 깊이 얼었다 봄에 녹아 지반이 약해진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 후 여름철 홍수가 나면 보통 때보다 강물이 더 불어나면서 대규모 토석류가 발생하면 불탄 나뭇가지도 함께 떠내려온다. 이들이 선상지와 완만해지는 강바닥에 한꺼번에 쌓이면서 홍수가 범람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실제로 2000년 동해안에서 대형 산불이 난 2년 후 태풍 루사 때 여러 하천에서 교량을 뒤덮을 정도로 토석류가 쏟아져 내려 홍수 재앙을 겪은 사례가 있다.

이처럼 홍수에 유달리 취약한 동해안의 지역 특성을 고려한 방재 종합대책을 강구해 하천을 세심하게 정비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대형 홍수 피해를 막을 길이 없다. 지역 특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제반 법·제도를 서둘러 손질해야 한다. 동해안 지역 특성을 기초로 지자체가 주도해 대홍수에 대비할 ‘지역 단위 하천 설계기준’도 필요하다. 홍수 피해 취약 지역 주민이 비상시 자발적으로 수방 활동에 나설 방재 매뉴얼도 만들어야 한다. 유비무환(有備無患) 자세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삼희 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