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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재련이 고발한다

신변보호도 못막은 스토킹 살해…법에 '전문가 조기 개입' 넣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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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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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역 살인 사건 피의자(가운데). 배경은 시민들이 신당역에 붙인 포스트잇. 그래픽=김경진 기자

신당역 살인 사건 피의자(가운데). 배경은 시민들이 신당역에 붙인 포스트잇. 그래픽=김경진 기자

지난 15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내 화장실에서 역무원이 목숨을 잃었다. 스토킹 범죄로 재판을 받던 가해자가 선고 전날 피해자를 살해했다. 피해자 신변보호 조치가 없었음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보호조치를 취하고 피해자가 스마트워치를 착용하고 있었다면 피해자의 안전을 지킬 수 있었을까? 접근금지 명령을 위반한 가해자의 공격이 스마트워치 신호를 받고 출동한 경찰보다 앞서게 되면 결국 피해자의 안전은 지킬 수 없게 된다.

지난해 신변보호 중이던 피해자의 가족을 살해해 가해자가 구속된 사건이 일어났다. 피해자에 대한 신변보호 조치가 작동 중이었지만 가해자의 보복 범죄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청년하다' 등의 청년 단체 회원들이 19일 서울 중구 신당역 앞에서 스토킹 피해자 보호 강화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뉴스1

'청년하다' 등의 청년 단체 회원들이 19일 서울 중구 신당역 앞에서 스토킹 피해자 보호 강화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뉴스1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되고 있으나 스토킹 범죄로 인한 살인 등의 피해가 잇따른다. 법이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행 스토킹처벌법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스토킹처벌법 제1조는 ‘피해자보호 및 건강한 사회질서 확립에 이바지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피해자 보호는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건강한 사회질서 확립’이라는 말은 생뚱맞다. 가정폭력처벌법과 아동학대처벌법의 목적 조항을 보면 ‘행위자의 성행(성향과 행동)교정을 위한 보호처분’을 통해 피해자 보호를 그 목적으로 한다고 돼 있다.

스토킹처벌법에서도 행위자의 성행교정을 위한 보호처분 등을 통해 행위자의 위험성을 제거하고 피해자의 일상의 안전을 확보함을 그 목적으로 천명해야 했다. 스토킹 범죄 피해자의 안전을 지키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위자의 위험성을 약화하는 효과적 조치이다.

내가 법률적 지원을 한 피해자 중에는 접근금지 조치가 내려졌지만 가해자가 찾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집안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언제 가해자가 찾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밤에 조명도 켜지 못한다고 했다. 경찰이 준 스마트워치를 착용하고 있지만 24시간 피해자 집 앞에 경찰이 서 있지 않은 한 가해자가 찾아와 공격하면 당할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스토킹처벌법의 피해자 보호 조치에는 행위자와 피해자 분리, 보호시설로 피해자 인도, 서면 경고, 100m 이내 접근금지, 유치장 또는 구치소에 유치가 있다. 밤낮없이 피해자에게 문자를 보내고, 피해자 집 앞을 서성이는 가해자에게 ‘접근하지 말라, 연락하지 말라’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까?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공격하기 위해 인화성 물질을 준비할 정도의 위험한 행위자, 피해자의 가족까지 살해할 생각으로 흉기를 준비하는 행위자에게 접근금지 정도의 보호조치는 심리적 억지력이 없다. ‘유치장 혹은 구치소에의 유치’가 그나마 억지력이 있을 것이나 전체 보호조치 중 차지하는 비율이 그다지 높지 않다.

접근금지 조치만으로는 행위자의 위험성을 낮출 수 없다. 유치장에 유치한다고 해서 행위자의 잠재적 위험성이 줄어든다는 보장도 없다. 피해자에 대한 집착, 피해자의 신고에 대한 분노, 악감정을 강화하는 역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가정폭력을 피해 쉼터에 있는 피해자들은 언제 배우자가 찾아와 행패를 부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생활한다. 그러나 배우자가 전문가 상담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훨씬 덜 불안해한다.

폭력적 성향을 표출하는 가해자에게 폭력성을 낮추기 위한 자발적 노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전문가의 조기 개입이 중요하다. 현행 스토킹처벌법에서는 법원이 가해자에게 유죄를 선고할 때 비로소 재범 예방에 필요한 수강 명령, 스토킹 치료 프로그램 이수 명령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문가 개입 시점이 너무 늦다.

스토킹 범죄가 발생하면 행위의 위험성 정도를 식별해야 한다. 행위의 심각성 정도, 행위자의 심리적 불안의 정도를 알기 위해서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폭력 전문 상담사가 행위자와 상담하고 위험성의 정도에 따라 단순한 접근금지만으로 충분한 사례인지, 지속적 상담이 필요한 사례인지 구분해 효과적인 잠정조치를 취하도록 해야 한다.

유치장 혹은 구치소에 유치될 경우 직장 생활을 할 수 없게 되는 점을 우려해 법원은 유치 조치에 소극적인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감호위탁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은 보호처분으로 감호위탁 처분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감호위탁 처분이 집행된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감호위탁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가정법원에서 감호위탁 처분을 내려도 감호위탁시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감호위탁처분 집행은 하지 못한다. 이참에 감호위탁 제도가 제대로 운용될 수 있도록 정비해야 한다.

감호위탁시설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일정 기간 생활해야 하는 곳이다. 감호위탁처분이 적극적으로 활용된다면 행위자들이 주간에는 일을 하고 저녁에는 감호위탁시설에서 생활하면서 교육도 받고 상담도 받으며 자신의 폭력적 성향을 교정받을 수 있다. 범죄로 인한 불편함은 피해자 몫이 아닌 가해자 몫이어야 한다는 면에서도 감호위탁 처분 활성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해당 감호위탁으로 발생하는 비용은 행위자 부담 원칙을 적용해야 할 것이다.

이원석 검찰총장(오른쪽)이 16일 서울 대검찰청에서 긴급 화상회의를 주재하며 스토킹 범죄 방지 대책을 의논했다. 뉴시스

이원석 검찰총장(오른쪽)이 16일 서울 대검찰청에서 긴급 화상회의를 주재하며 스토킹 범죄 방지 대책을 의논했다. 뉴시스

스토킹 범죄는 반복적, 지속적 괴롭힘으로 인해 피해자 일상의 안전이 크게 위협한다. 가정폭력처벌법은 법원이 가정보호사건을 다른 사건보다 우선하여 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스토킹 범죄도 최대한 신속히 처리되는 것이 마땅하다. 싱가포르의 경우 가정보호사건은 피해자가 신고한 때로부터 24시간 이내에 소환장을 행위자에게 발부하고 1주일 이내에 심문기일을 지정하여 피해자의 일상의 안전을 확보해준다. 스토킹 범죄가 피해자의 생명과 일상을 위협하는 점을 고려하여 수사 및 처리 기간을 단기간으로 명문화해야 한다.

스토킹 범죄 수사에 필요한 전문 지식, 피해자 보호를 위한 수사 방법 등을 익히고 행위자의 위험성 정도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잘 아는 수사관이 필요하다. 그리고 현행법은 잠정조치를 위반할 경우 법원이 벌금형을 선고할 수도 있게 돼 있다. 법에 징역형 규정만을 둬 잠정조치를 위반하면 구금을 면하지 못한다는 경각심을 갖게 해야 한다. 결국 가해자의 위험성을 낮추는 효과적 접근이 곧 피해자의 안전한 일상을 확보하는 지름길이다. 스토킹 범죄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부터 그 답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