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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이 돼줘서 고마워“ 안내견 ‘여울이’가 새 가족 만나던 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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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만 해도 안내견과 버스를 타려면 매번 간청을 하거나 실랑을 해야 했지요. 그간 사회적으로 많은 인식의 변화가 있었던 게 느껴집니다. 안내견은 사람의 감정과 마음을 어루만지고, 한편으론 인식도 바꿔줬어요.”

훈련기간 2년…현재 70여 마리 활동 중  

20일 세 번째 안내견 ‘여울이’와 새로운 동행을 시작한 시각장애인 허경호(42·대구 동촌중 교사)씨는 이렇게 말했다. 삼성은 이날 경기 용인에 있는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서 시각장애인에 파트너 안내견을 전달하는 ‘2022년 안내견 분양식-함께 내일로 걷다’ 행사를 열었다. 여울이를 포함한 정규 훈련을 마친 안내견 8마리가 새 파트너의 품에 안겼다.

대구 동촌중 교사로 일하는 시각장애인 허경호씨가 20일 열린 경기 용인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서 열린 '2022년 안내견 분양식'에서 21년 전 첫 안내견 한올이와의 추억을 소개하고 있다. 허 교사는 이날 세번째 반려견 여울이를 품에 안았다. 용인=고석현 기자

대구 동촌중 교사로 일하는 시각장애인 허경호씨가 20일 열린 경기 용인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서 열린 '2022년 안내견 분양식'에서 21년 전 첫 안내견 한올이와의 추억을 소개하고 있다. 허 교사는 이날 세번째 반려견 여울이를 품에 안았다. 용인=고석현 기자

허씨는 “대학 3학년 때 만난 ‘한올이’는 교사 취업이라는 기쁜 순간을 함께했다. 둘째 ‘해냄이’는 좀처럼 짖지 않는 순둥이였다”며 “이제 여울이와 함께 사회 구성원으로 역할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생후 8주부터 1년여간 여울이의 사회성 향상 훈련을 맡았던 ‘퍼피워커’(자원봉사자) 김남위(여·49)씨도 자리했다. 김씨는 “10개월의 훈련 과정을 이겨내고 든든한 안내견이 된 여울이가 자랑스럽다. 여울이와 파트너 가정의 행복을 바란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20일 용인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서 훈련사가 안내견 보행 체험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20일 용인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서 훈련사가 안내견 보행 체험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20일 용인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서 시각장애인 파트너와 이들과 함께 새롭게 안내견 활동을 시작하는 안내견, 퍼피워커(자원봉사자), 삼성화재안내견학교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20일 용인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서 시각장애인 파트너와 이들과 함께 새롭게 안내견 활동을 시작하는 안내견, 퍼피워커(자원봉사자), 삼성화재안내견학교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20일 용인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6년에서 8년간의 안내견 활동을 마친 은퇴견들을 축하하며 꽃 목걸이를 걸어주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20일 용인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6년에서 8년간의 안내견 활동을 마친 은퇴견들을 축하하며 꽃 목걸이를 걸어주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처럼 후보견들은 2년간 기본 훈련과 복종·위험대비 훈련 등을 거치고 자체 평가를 통과한 다음 안내견으로 선발된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시각장애인 안내견은 70여 마리다. 활동 기간은 통상 6~8년이며 건강 상태가 악화하거나 감각이 떨어지면 은퇴하게 된다.

이렇게 임무를 다하고 ‘현역’에서 물러나면 강아지 시절 돌봐줬던 자원봉사자 등에 맡겨져 반려견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날 안내견 6마리의 은퇴식도 열렸는데, 이 중 3마리가 자원봉사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고(故) 이건희 회장은 생전 재계에서 소문난 애견가였다. 사진 삼성전자

고(故) 이건희 회장은 생전 재계에서 소문난 애견가였다. 사진 삼성전자

이건희 결단…‘韓=식견국’ 이미지 바꿨다   

삼성화재안내견학교는 국내 유일의 세계안내견협회 인증 기관이다. 삼성은 고(故)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 선언’ 직후인 1993년 9월 국내 첫 안내견학교를 설립했다. 이 회장은 평소 임직원에게 “진정한 복지사회가 되려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배려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삼성은 94년 ‘바다’를 시작으로 매년 12~15마리씩 지금까지 267마리의 안내견을 시각장애인에게 인도했다. 삼성 관계자는 “이전까지 해외에서 한국은 ‘개를 잡아먹는 나라’ 이미지가 있었다”며 “이건희 회장의 노력 덕분에 이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바뀔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재계에서 소문난 애견가였다. 포메라니안·요크셔테리어·치와와 등을 키웠는데 직접 목욕시키고 빗질해주며 한방에서 같이 잘 정도였다고 한다. 일본에서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여러 개를 키우며 연구해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얻게 됐다고 알려져 있다.

명맥이 끊겼던 진돗개를 복원해 한국을 대표하는 견종으로 키워낸 것도 이 회장이다. 그는 진돗개 혈통 보존을 위해 수십 마리를 직접 키우며 연구한 끝에 얻어낸 순종을 세계견종협회에 등록시키기도 했다. 2002년엔 ‘동물을 통한 사회공헌’을 인정받아 세계안내견협회로부터 공로상을 받았다.

20일 용인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서 열린 안내견 분양식 행사에서 홍원학 삼성화재 대표이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20일 용인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서 열린 안내견 분양식 행사에서 홍원학 삼성화재 대표이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국내 시각장애인·안내견 인식 개선도 

삼성은 29년간 안내견 양성 사업을 통해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에 대한 인식 개선’을 해왔다. 덕분에 이제 안내견은 ‘사회적 공공재’로 인식되고 있으며, 사회 각 분야에서도 안내견 문화가 정착됐다는 평가다.

내년엔 안내견학교 30주년을 맞아 사업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안내견학교 관계자는 “현재는 시각장애인이 안내견을 신청하면 2년가량 기다려야 한다. 이 기간을 1년 안팎으로 줄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안내견을 지원받는 장애인도 기존 직장인에서 일반인으로 넓혀나가겠다는 구상이다.

홍원학 삼성화재 대표는 “안내견 사업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관심과 노력으로 29년간 시각장애인의 더 나은 삶을 지원하고 안내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켜 왔다”며 “앞으로도 안내견과 파트너가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사회적 환경과 인식 개선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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