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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시스템 엿본 '직위해제' 전주환…이제야 막는다는 교통공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신당역 살인 사건’ 피의자인 전주환(31)이 서울교통공사(공사) 내부 전산망의 회계 시스템을 이용해 피해자 과거 주소를 찾아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전씨가 지난달 18일 서울 지하철 6호선 증산역 역무실을 방문했을 때 주소를 확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신당역 살인사건 가해자 전주환이 지난 15일 오후 서울 광진구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마치고 호송되고 있다. 뉴스1

신당역 살인사건 가해자 전주환이 지난 15일 오후 서울 광진구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마치고 호송되고 있다. 뉴스1

회계 시스템에서 피해자 옛 주소 파악 

20일 공사는 전씨가 회사 내부망인 메트로넷의 전사자원관리(ERP) 내 회계 시스템을 통해 피해자의 원천징수 관련 정보를 조회해 피해자의 과거 주소를 알아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해당 시스템은 특별한 권한 없이도 공사 직원이라면 누구나 접속할 수 있었다는 게 공사 측 설명이다. 피해자가 지난해 10월 전씨를 고소한 이후 경찰이 공사에 수사개시를 통보하면서 전씨는 지난해 10월 13일 직위 해제됐다. 그런데도 전씨는 내부망을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이 살아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공사 관계자는 “지하철 역무실에 있는 컴퓨터로 접속하면 해당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다”며 “전날 문제를 확인하고 접속 가능성을 모두 차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부분 직원은 회계 시스템 접속 경로를 모르는데, 전씨가 회계 관련 경력이 있어 알아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씨는 2016년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이후 1년간 진행되는 실무수습을 마치지 못해 정식 자격증은 받지 못했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전씨는 지난달 18일 6호선 증산역을 방문한 때 자신의 아이디로 내부망에 접속해 피해자의 옛 주소지와 근무지, 근무일정을 파악했다. 전씨는 이날 오전 서울서부지법에서 스토킹처벌법 위반, 성폭력처벌법(카메라 등 이용촬영, 촬영물 등 이용협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로부터 징역 9년을 구형받았다.

전씨는 당시 확인한 피해자의 과거 거주지로 수차례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했고, 이후 근무지를 찾아가 범행을 저질렀다. 전씨는 범행 당일인 지난 14일에도 피해자의 옛 거주지에 찾아갔다. 피해자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구산역 역무실에 들러 자신을 공사 직원이라고 속인 뒤 다시 내부망에 접속해 피해자의 근무 일정을 알아냈다. 피해자가 당일 신당역 야간근무라는 것을 알게 된 전씨는 구산역에서 신당역으로 이동해 범행했다.

공사 “직위해제 직원, 내부망 차단하겠다”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이 20일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이 20일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미흡한 개인정보 관리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공사는 20일 직위 해제된 직원의 내부 전산망 접속을 차단하고 징계 조치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날 피해자의 큰아버지 A씨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난해 10월에 직위 해제라는 징계를 내렸는데, 범죄 행위를 회사에서도 인지했을 거 아닌가”라면서 “그렇다면 거기에 따른 징계 수위를 좀 더 높이든가 해서 기본적인 사원 신분에 제한을 둬야 하지 않았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공사가 이날 권인숙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실에 제출한 ‘지하철 종사자 등 안전강화 대책’엔 직위 해제된 직원의 내부 전산망 접속 차단 내용이 포함됐다. 대상은 징계의결 요구 중이거나 형사사건으로 계류 중인 직위해제자로, 공사 내부전산망 및 휴대폰 앱(애플리케이션) 접속을 차단하는 게 골자다. 또 최종심까지 기다렸다 징계를 했던 성범죄 사건의 경우 1심 판결 후 징계를 할 수 있도록 개선하겠다고도 했다.

애초에 공사가 공무원징계업무편람을 준용해 징계제도를 운용했다면 이런 사태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2022년 공무원징계업무편람엔 ‘수사나 재판 중인 사건에 대해 징계 처분을 할 수 있다’고 나온다. 형 확정까지 장기간 기다려야 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에 대해 한 공기업 관계자는 “공사 직원이 공무원은 아니지만 보통 공무원징계업무편람을 준용해서 징계업무를 만든다”며 “공사가  이를 따랐으면 전씨가 직위 해제된 이후 내부망에 접속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공사 관계자는 "공사 직원이 공무원은 아니다“라면서도 “재발 방지를 위해 폭넓게 고려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전씨가 2018년 12월 공사 입사 때 범죄 전력이 있었으나 공사의 결격사유 조회에서 걸러지지 않은 것도 드러났다. 공사는 전씨를 채용하기에 앞서 11월 수원 장안구청에 결격사유 조회를 요청했고, 구청은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공사에 회신했다. 당시 전씨는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 유포 혐의로 기소돼 벌금형을 받아 1건의 범죄 전력이 있었다.

공사 인사 규정 제17조는 결격사유로 피성년·피한정후견인, 파산 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않은 경우,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않기로 확정된 후 5년이 지나지 않은 경우 등을 두고 있다. 이 기준에 따라 전씨는 음란물을 유포해 처벌된 전력이 있음에도 결격사유 조회를 통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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