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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정치풍향 | ‘이재명의 민주당’ 앞에 놓인 위기와 기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여권의 자중지란은 민생 주도권 잡을 절호의 기회
사정당국의 수사 압박과 당내 세대교체는 정치 생명 위협하는 요인
정부여당 내홍에 과반의석으로 민생 주력하면 국민 신뢰 얻을 수도

이재명 대표가 8월 28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제5차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민주당 당대표로 선출된 뒤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당대표에 선출된 뒤 변화와 민생을 키워드로 내세웠다.

이재명 대표가 8월 28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제5차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민주당 당대표로 선출된 뒤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당대표에 선출된 뒤 변화와 민생을 키워드로 내세웠다.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친정 체제로 항해를 시작했다. 77.77% 득표율을 기록한 당대표 선거 결과는 이 대표의 압승이었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에게 쏟아진 온갖 의혹과 견제가 시시때때로 발목을 잡았다. 여의도 시각에서는 이제 초선에 불과한 이 대표의 리더십에는 늘 물음표가 달렸다. 결과적으로 이재명을 택한 민심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였다.

당 지도부도 친명(친이재명)계로 채워졌다.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정청래, 고민정, 박찬대, 서영교, 장경태 의원 중 고 의원을 제외하면 친명계로 분류된다. 말 그대로 ‘이재명의 민주당’이 완성된 셈이다. 이 대표는 8월 28일 수락연설에서 “서생적 문제의식은 놓치지 않되 상인의 현실감각과 조화돼야 한다”며 “실사구시의 대원칙 아래 확고한 민생 개혁에 나서겠다”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확립한 민주당의 정체성을 계승 발전하겠다는 메시지다.

“국민의 삶이 반 발자국이라도 전진할 수 있다면 제가 먼저 정부야당에 협력하겠다”며 윤석열 대통령과 영수회담도 요청했다. 정치적 대립보다 민생 회복에 방점을 찍었다. 과반을 차지한 의회 권력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하지만 현실은 이 대표의 바람과 달리 녹록지 않다. 의회의 카운터파트인 국민의힘은 내분에 휩싸여 있다. 윤석열 정부는 여당과 민심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출범한 지 넉 달이 지났지만 끊이지 않는 논란과 의혹에 파묻혀 국정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8·28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최근까지 이 대표가 요청한 다섯 번의 영수회담 제안에 윤 대통령은 답을 주지 않고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제기됐다가 미풍에 그쳤던 ‘정치권 세대교체’는 차기 총선을 2년 앞둔 이 대표에게 주어진 과제다. 언제나 그랬듯 주류의 양보를 얻어내 신진 정치인의 등용문을 마련하는 데는 진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재명의 민주당 앞에 놓인 기회와 위기를 정리해보면 ‘2C(chance) 2R(risk)’로 요약할 수 있다.

Risk 1 | 이 대표 겨냥한 사정당국의 칼날

이재명 대표 취임 직후 검경은 이 대표와 관련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등을 연이어 기소하거나 수사를 확대했다. 9월 1일 이 대표가 김현지 보좌관에게 받은 검찰의 출석통보 관련 보고 메시지를 읽고 있다. 김 보좌관은 “전쟁입니다”라고 표현했다.

이재명 대표 취임 직후 검경은 이 대표와 관련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등을 연이어 기소하거나 수사를 확대했다. 9월 1일 이 대표가 김현지 보좌관에게 받은 검찰의 출석통보 관련 보고 메시지를 읽고 있다. 김 보좌관은 “전쟁입니다”라고 표현했다.

당대표 취임 축하 난의 물기가 마르기도 전에 이 대표에게 날아든 건 검찰의 기소장이었다. 경찰은 이 대표가 취임하자마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지난해 10월 20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백현동 특혜 의혹’과 관련해 “국토교통부 협박으로 용도변경한 것”이란 취지로 발언한 것을 허위사실 공표로 판단했다. 국민의힘 고발로 시작해 10개월의 수사 끝에 혐의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한 달 뒤인 9월에는 검찰이 이 대표를 또 다른 허위사실 공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재판에 넘겼다. 민주당 대선 후보이던 지난해 12월 언론 인터뷰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목숨을 끊은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1처장에 대해 “시장 재직 때는 몰랐다”고 한 발언을 허위사실 공표로 본 것이다. 검찰은 이 대표가 대선 당시 가장 뜨거운 이슈였던 성남 대장동 개발 특혜·로비 사건 연루 의혹을 벗기 위해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수원지검 성남지청 형사3부)은 이 두 가지 혐의를 일괄해 서울중앙지법에 불구속기소했다.

또 검찰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이자 성남FC 구단주이던 2014~2016년에 두산그룹이 소유한 분당구의 병원 부지의 용도를 변경해주는 대가로 후원금 50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당초 이 사건을 처음 수사한 경찰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사건을 불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의 요청으로 보완수사에 착수한 뒤 혐의가 있는 것으로 입장을 바꿨다. 검찰과 경찰은 두산건설 본사와 성남FC 구단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의혹에 관련된 이 대표 측근의 자택 등으로 압수수색 범위를 넓히며 수사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 대표의 아내 김혜경씨에 대한 선거법 위반 혐의 수사도 진행 중이다. 김씨는 이 대표가 당내 대선 경선 출마를 선언한 뒤인 지난해 8월 당 인사 등에게 10만원 상당의 식사를 제공하면서 경기도청 비서실 직원에게 지시해 법인카드로 음식값 일부를 지불하도록 한 혐의(기부행위 제한)를 받고 있다. 검찰은 공범으로 지목한 경기도청 전 사무관 배모씨만 우선 기소해 김씨에 대한 공소시효를 중지시켰다. 향후 언제든지 기소할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당대표 취임 직후 연이은 사법 리스크는 일찍이 예고돼 있었다. 당대표 선거 과정에서 경쟁 후보 진영에서는 이 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민주당 전당대회준비위원회가 당헌 80조 개정을 추진하자 당 안팎에서 ‘이재명 방탄용’이란 비판이 나왔다. 당헌 80조는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은 직무정지 조건을 현행대로 유지하되, 정치탄압 등의 상황에 대비해 당무위원회 의결로 달리 정할 수 있도록 구제 절차를 두는 내용으로 당헌을 개정했다.

민주당은 이 대표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야당 탄압으로 규정했지만, 여론의 시각은 차이를 보인다. MBC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9월 7~8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이 대표 관련 수사를 표적수사라고 본 응답은 42.4%였다. 반면 ‘법적 절차에 따른 것으로 표적수사는 아니라고 본다’는 응답은 52.3%로 더 많았다.

Chance 1 | 169석 의회 권력은 든든한 방패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와 기소가 확대되자 민주당은 이를 ‘야당 탄압’으로 규정하고 ‘김건희 여사 특검법’으로 대응했다.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가 9월 7일 김건희 특검법 발의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와 기소가 확대되자 민주당은 이를 ‘야당 탄압’으로 규정하고 ‘김건희 여사 특검법’으로 대응했다.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가 9월 7일 김건희 특검법 발의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법원이 이 대표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확정할 경우 대선 행보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 공직선거법상 선거범으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5년간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국회법은 의원이 법률에 규정된 피선거권이 없게 되면 퇴직하도록 정하고 있다. 향후 재판 결과에 따라 정치 생명이 좌우되는 만큼 법정 싸움에 사활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재판 결과가 확정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다. 임기 2년인 당대표직을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없다. 최근 당헌 개정을 통해 정부의 사정 칼날을 방어할 준비도 마쳤다. ‘이재명 방탄용’이란 비판을 받은 ‘당헌 80조’ 개정 작업이 그것이다.

민주당 당헌 제80조는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당초 민주당 전당대회준비위원회는 이 내용을 ‘기소 시’에서 ‘하급심에서 금고 이상의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로 개정하려 했다. 하지만 당내 반발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8월 26일에서야 현행 규정은 그대로 유지하되, 정치탄압 등의 상황에 대비해 당무위원회 의결로 달리 정할 수 있도록 한 구제절차를 첨가해 개정을 마쳤다.

개정된 당헌에 따르면 만에 하나 이 대표가 1심에서 금고 이상의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이를 정치탄압으로 규정하면 직무정지를 피할 수 있게 된다. 민주당은 이미 검경의 연이은 기소와 수사 확대를 ‘이재명 죽이기’, ‘야당 탄압’으로 규정하고 총력 대응에 나선 상태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9월 14일 최고위원회에서 “살아 있는 권력은 연일 무혐의 불송치 처분을 내리고, 야당에는 없는 죄도 다시 만들어서 탄압한다”며 “정치검찰이 기획하고 경찰이 움직인 정권 하명수사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정청래 최고위원도 “윤석열 정권에서는 있는 죄도 없는 죄가 되고, 없는 죄도 있는 죄가 된다”며 “무리한 정치탄압 수사”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공세에 공세로 맞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9월 7일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주가 조작, 허위 경력, 뇌물성 후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김건희 특검법)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여론도 우호적이다. [뉴스토마토]가 미디어토마토에 의뢰해 지난 9월 13~14일 만 18세 이상 전국 남녀 107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선거 및 사회현안 52차 정기 여론조사 결과 ‘김건희 특검’ 도입을 찬성한다는 의견이 56.7%, 반대 의견 36.2%로 나타났다.

특검을 성사하지 못해도 국회 동의를 필요로 하는 국정 현안 결정권은 과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쥐고 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 없는 환경이어서 민주당을 아예 무시하기는 어렵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이 가진 과반의석은 이 대표가 물려받은 최고의 유산이자 최고의 무기”라고 말했다.

Chance 2 | 정부여당의 내홍은 민심 주도할 기회

2021년 2월 7일 김종민 민주당 2020더혁신위원회장이 ‘청년 민주당 재창당’ 등을 골자로 한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서울·부산 시장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내놓은 정치권 세대교체론은 대선 과정에서 ‘586 용퇴론’으로 이어졌지만, 대선이 끝난 뒤 무위에 그쳤다.

2021년 2월 7일 김종민 민주당 2020더혁신위원회장이 ‘청년 민주당 재창당’ 등을 골자로 한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서울·부산 시장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내놓은 정치권 세대교체론은 대선 과정에서 ‘586 용퇴론’으로 이어졌지만, 대선이 끝난 뒤 무위에 그쳤다.

민주당의 기회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들어졌다. 당권을 두고 벌어진 국민의힘 분열과 대통령실에서 나오는 잡음 때문이다. 이준석 전 대표와 권성동 원내대표를 비롯한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 관계자를 일컫는 말) 사이의 갈등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두 번째 비대위가 꾸려졌지만, 이 전 대표가 제기한 가처분신청 결과에 따라 또다시 지도부 공백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대통령실도 어수선한 분위기다. 대통령실 내부 문서 유출과 일부 대통령실 직원의 정부 부처 인사 개입 의혹, 대통령 일정 외부 공개 등 기강 해이로 보이는 악재가 연이어 터졌다. 강도 높은 감찰과 인적 쇄신을 통해 논란을 잠재우기는 했지만, 이미 국민의 신뢰는 추락한 뒤다.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5주째 30% 초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출범 초기 정권 지지율로는 역대 최저 수준이다.

민주당은 반사이익을 얻었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가 9월 12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 정당 지지율은 48.4%, 국민의힘은 35.2%였다. 이 대표 선출 후 민주당은 오름세를, 국민의힘은 하락세를 보였다. 응답자들은 여권 지지율 위기의 책임이 윤 대통령(25.8%)과 권성동 원내대표 등 ‘윤핵관’(20.9%), 이준석 전 대표(16.4%) 순으로 있다고 꼽았다. 김건희 여사를 꼽은 응답자도 14.6%였다.

여권의 자중지란은 민주당이 민심 주도권을 가질 기회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민생 돌볼 틈이 없는 국민의힘 대신 민주당이 민생을 확실히 챙긴다면 국민은 누가 진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지 똑똑히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민주당과 이 대표의 수권능력을 일찌감치 입증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 대표에게 씌워진 ‘중앙정치 경험 부족’ 꼬리표를 단숨에 떼어낼 호기인 셈이다.

Risk 2 | 민주당의 세대교체, 양날의 칼일 수도

변방 장수 이재명을 169석인 제1야당 당수로 택한 민심에는 정치 개혁에 대한 갈망이 복선으로 깔렸기도 하다. 외적으로는 구태의연한 정치 풍토에 대한 환멸이고, 안으로는 민주당 주류인 586에 대한 피로감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정치 교체’, ‘세대교체’를 약속했던 이 대표가 피할 수 없는 사명이기도 하다. 세대교체는 곧 586의 퇴진을 의미한다. 정계 은퇴가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민주당의 한 97세대(90년대 학번, 70년 대생) 당직자는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586 선배들이 정치 개혁의 주역으로 등장했듯이 이제 후배들이 시대에 걸맞은 개혁을 이끌 기회를 마련해주는 게 선배의 역할이다”라고 말했다.

이 대표도 대선 과정에서 97세대를 캠프에 적극적으로 등용함으로써 개혁 동력을 모아가는 중이다. 또 1990년대 중후반과 2000년대 초 학생운동을 했던 97세대 중 이 대표를 지지하는 이들이 민주당 외부에서 정치 개혁을 이끌 조직을 준비하는 등 점차 논의가 구체화하고 있다. 민주당의 한 원외 인사는 “손발이 되어줄 조직 기반이 충분치 않은 이 대표가 97세대를 육성해 세대교체에 성공한다면 향후 정치권에 상당한 파급력을 일으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우려도 있다. 개혁 대상으로 지목된 당내 기득권 세력이 거세게 저항할 가능성이다. 이 대표가 세대교체를 단행한다면 그 시기는 2년 뒤 총선 시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늘 개혁에는 저항이 뒤따랐고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다. 일각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분당 가능성도 꼽는다. “과거 386세대의 정치권 진출로 주류와 비주류의 싸움이 결국에는 탄핵과 분당으로 이어질 거라고 누구도 예상치 못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물론 아직 성급하고 과장된 시나리오일 뿐이지만, 정치의 앞날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법이다. ‘정치는 생물’이란 말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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