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스센스급 반전"…14년전 신민아가 먼저 반한 신인의 데뷔작

중앙일보

입력 2022.09.20 15:30

업데이트 2022.09.21 16:09

데뷔작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복원판을 재개봉하는 부지영 감독을 19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 영화관에서 만났다. 주연 배우 신민아, 공효진(왼쪽부터)의 영화 속 장면을 담은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 엣나인필름]

데뷔작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복원판을 재개봉하는 부지영 감독을 19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 영화관에서 만났다. 주연 배우 신민아, 공효진(왼쪽부터)의 영화 속 장면을 담은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 엣나인필름]

배우 신민아가 우연히 본 시나리오에 반해 출연시켜달라며 찾아간 신인 감독 데뷔작이 있다. 마트 비정규직 노동자 복직 투쟁을 그린 영화 ‘카트’(2014), 다큐멘터리 ‘나나나: 여배우 민낯 프로젝트’(2012) 등을 만든 부지영(51) 감독의 2009년 첫 장편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다. 이 영화의 디지털 복원판이 22일 개봉한다.
영화는 아버지가 다른 자매 명주(공효진), 명은(신민아)이 어머니의 장례식 후 오래전 자취를 감춘 명은의 아버지를 함께 찾아 나서는 로드무비다. 자매가 알게 된 가족의 비밀은 상상 이상이다. 싱글맘, 성전환, 대안 가족 등 묵직한 소재를 영화 제목처럼 담담하게 녹여냈다.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해 “‘식스센스’ 이후 최고 반전”이란 평과 함께 시대를 앞서간 영화로 호평받았다. 이듬해 개봉 관객은 2만명에 그쳤지만, 나홍진의 ‘추격자’(2008), 이경미의 ‘미쓰 홍당무’(2008) 등과 함께 당시 주목할 만한 신인 감독 데뷔작에 꼽혔다.
19일 만난 부지영 감독은 “어렸을 때 공익광고를 보면 아빠‧엄마‧아들‧딸의 4인 가족이 아니면 가족이 아닌 것 같은, 선을 긋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더 많은 가족 형태가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면서 “14년이 됐지만, 여전히 유효한 주제”라고 말했다.

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14년만의 복원판 22일 재개봉 #부지영 감독 각본‧연출 데뷔작 #공효진‧신민아 아빠 다른 자매 역 #“먼저 찾아와준 신민아 재발견 #공효진은 현실의 옷 입히는 배우“

'식스센스'급 반전? 이런 가족도 있죠

엄마의 친구 현아(김상현) 이모, 명주의 어린 딸 등 여자만으로 구성된 자매의 가족은 부 감독 자신의 가족에서 따왔다. 제주 출신인 그는 일찍 홀로 된 친‧외할머니, 홀어머니 아래서 언니와 함께 컸다. 그는 “우리 집은 여자만 다섯인 모계가족인데 살아오며 부족함을 느낀 적이 없다”면서 “가족의 형태보단 관계의 질과 내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성전환 캐릭터 설정은 ‘인생영화’로 꼽는 네덜란드 작품 ‘안토니아스 라인’(1995)에서 영감을 얻었다. “부산국제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등에서 재미난 영화를 많이 접했다. 2001년에 하리수씨가 데뷔하기도 했고, 트랜스젠더는 서사 속에서는 가깝게 느껴지는 존재였다”는 그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의 결론이 내게는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식스센스’급이란 반응에 놀랐다”고 했다.

"신민아 연기 톤 짠해, 공효진은 현실적"

당시로선 낯설던 시나리오는, 신민아를 매료시켰다. 부 감독은 “나는 아무것도 보여줄 게 없는 신인 감독이고 영화학교(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한 지도 5년이나 지났는데 신민아 배우가 시나리오를 봤다며 연락을 했다. 진짜 이런 일이 있구나, 싶었다”면서 “만났을 때 가능성을 봤다. 재미난 명은이 나올 수 있겠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고 했다. ‘화산고’(2001) ‘달콤한 인생’(2005) ‘키친’(2009) 등 남성 배우와 주로 호흡 맞춰온 신민아의 새로운 시도였다.

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사진 엣나인필름]

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사진 엣나인필름]

신민아는 최근 패션지 보그 인터뷰에서 “당시 여성 배우가 함께 주연으로 나오는 여성 감독의 영화가 드물었다”면서 “글(시나리오)이 정말 좋았다”고 돌이켰다. 이어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1999) ‘가족의 탄생’(2006) ‘미쓰 홍당무’(2008) 등 폭넓은 연기로 주목받던 공효진이 캐스팅됐다. 부 감독은 “명은은 자기 아픈 구석을 더 세게 말하고 밉살스럽게 구는 성격인데 신민아 배우의 연기 톤이 명은을 짠하게 만들어줬다”고 했다. 공효진에 대해선 “캐릭터에 현실의 옷을 입히는 배우”라 설명했다. “자매가 싸우는 장면은 두 배우가 진짜 소리를 질렀어요. 둘이 연기 톤을 맞춘 거라는데, 고상하지 않게, 솔직하게 싸워서 좋았죠.”

불법 말곤 볼 방법 없어 감독이 직접 복원 추진

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사진 엣나인필름]

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사진 엣나인필름]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의 디지털 복원판은 지난달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처음 베일을 벗었다. 지난해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2001)에 이어서다.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의 경우 부 감독이 직접 복원을 추진했다. 5년 전 한 영화제 상영 제안을 받고 필름 상태로만 남아있는 이 영화를 틀기 위해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영사기까지 공수했던 터다. “감독한테 첫 영화는 자식 같은데, 지인들이 어디서 보냐고 물어도 그동안 불법 다운로드 외에 볼 방법이 없더라”며 “디지털 복원을 하려면 저작권이 필요한데 한국에선 저작권을 대개 제작사가 갖고 있어서 이번에 자비를 들여 영화 저작권을 구매했다. 이 영화를 생각하면 아이를 맡겨두고 안 찾아온 느낌이었는데 마음의 짐을 풀었다”고 했다.
“2008년 찍은 영화인데도 폴더폰을 보면 세월 빠르다는 생각을 하죠. 복원이라면 오래된 고전 영화를 떠올리지만, 고전 영화가 아니더라도 예전 영화를 본다는 건 그때의 풍경, 생활양식을 본다는 의미도 있을 것 같아요. 유의미한 영화들은 지금도 볼 수 있어야죠. 박찬옥 감독님의 ‘질투는 나의 힘’(2002) 같은 2000년대 한국영화들도 극장에서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볼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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