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커피믹스 뜯자 흰가루…태국 넘어가 392만명분 마약밀수 막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5월 태국 수완나품 공항에서 마약류인 야바를 비닐랩으로 감싼 뒤 초콜릿에 숨긴 국제우편물을 적발하는 모습. 사진 관세청

지난 5월 태국 수완나품 공항에서 마약류인 야바를 비닐랩으로 감싼 뒤 초콜릿에 숨긴 국제우편물을 적발하는 모습. 사진 관세청

한국의 마약 청정국 위상이 흔들리는 가운데 대대적인 국제 합동 단속이 이뤄졌다. 관세청 직원들이 '마약 유통 허브'로 꼽히는 태국으로 넘어가 국내 밀수를 미리 막은 것이다. 392만명이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이다.

관세청은 올 5~8월 태국 관세총국과 합동 마약밀수단속 작전(작전명 사이렌)을 진행해 국내로 밀반입하려던 필로폰 22㎏, 야바 29만정 등 불법 마약류 35건을 적발했다고 20일 밝혔다. '사이렌'은 국내서 처음 진행된 마약 공급지·소비지 관세 당국 간의 합동 단속 작전이다.

이번 작전은 최근 태국 등 동남아 지역 발(發) 마약 밀수가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로 불리는 태국ㆍ미얀마ㆍ라오스 3개국 접경지역에서만 필로폰 등 전 세계 마약의 25%가 생산된다. 지난해 국내 필로폰 밀수 적발 건수의 64%(79건)는 동남아 지역에서 들어온 것이었다. 특히 태국발 밀수가 60건(41㎏)으로 절대다수였다. 지난해 검거된 외국인 마약사범 중에서도 태국인(888명)이 가장 많았다.

지난 6월 태국 수완나품 공항에서 여행 가방 등받이 부분에 마약류인 필로폰을 은닉해 한국에 밀반출하려다가 적발된 모습. 사진 관세청

지난 6월 태국 수완나품 공항에서 여행 가방 등받이 부분에 마약류인 필로폰을 은닉해 한국에 밀반출하려다가 적발된 모습. 사진 관세청

이처럼 태국이 최대 마약 유통·공급 거점으로 떠오르면서 관세청은 지난해 11월 태국 관세 당국에 합동 단속을 제안했다. 그리고 태국 측이 이를 수락하면서 사이렌 작전이 이뤄졌다. 두 나라는 직원 교육 등을 거쳐 5월 2일 태국 관세총국, 방콕 수완나품 국제공항 두 곳에 합동 본부를 설치했다. 한국에서 보낸 정보 요원과 태국 현지 정보 요원이 함께 근무를 시작했다. 이들은 마약 밀수 동향 정보를 실시간 분석·공유하면서 한국으로 나가는 태국발 마약 은닉 의심 화물을 추적했다. 관세청에서 4차례에 걸쳐 7명이 파견 나간 이 작전은 8월 말까지 이어졌다.

4개월간의 작전을 통해 태국에서 국내로 향하던 불법 마약류 35건이 드러났다. 적발 건수는 합동 단속에 나서기 전인 올 1~4월(11건)과 비교하면 3배 이상으로 늘었다. 적발 중량도 같은 기간 22㎏에서 117㎏으로 많아졌다. 이번에 적발된 마약을 다 합치면 392만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고, 23만명이 중독될 수 있는 양이다.

한국-태국 합동 마약 단속 기간 밀수 경로별 실적 통계. 자료 관세청

한국-태국 합동 마약 단속 기간 밀수 경로별 실적 통계. 자료 관세청

사이렌 작전 기간 마약 밀수 경로(적발 건수 기준)는 국제우편(83%)-특송화물(11%)-항공 여행자 휴대품(6%) 순이었다. 국제우편은 특송화물보다 운송비가 저렴한 데다 송·수하인 정보가 불명확해 추적이 어렵기 때문에 주로 이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들 마약 적발과 밀수범 검거는 태국뿐 아니라 정보를 빠르게 공유 받은 인천공항 등 국내서도 이뤄졌다.

관세청에 따르면 과자 상자와 초콜릿, 커피믹스, 의자처럼 다양한 곳에 마약을 숨겼다가 들통이 났다. 5월 23일 수완나품 공항에서 한국산 커피 믹스에 커피·프림 등과 함께 포장한 필로폰 53g을 적발한 게 대표적이다. 봉지 커피에 마약을 숨기는 한국 내 적발 사례를 고려해 정밀검사하던 중, 칼로 예리하게 자르고 테이프로 붙인 자국을 발견해 필로폰을 찾아냈다. 이런 방식으로 태국서 필로폰 밀수를 시도한 사례는 합동 단속 기간 중 두 차례 더 적발됐다. 그 밖엔 한국행 여행자가 가방 등받이에 필로폰을 은닉해 태국서 출국하려다 붙잡히기도 했다.

지난 5월 태국 수완나품 공항에서 마약류인 필로폰을 커피믹스 봉지에 은닉한 뒤 국제우편으로 보내려던 시도가 적발된 모습. 사진 관세청

지난 5월 태국 수완나품 공항에서 마약류인 필로폰을 커피믹스 봉지에 은닉한 뒤 국제우편으로 보내려던 시도가 적발된 모습. 사진 관세청

관세청은 양자 합동 단속이 글로벌 마약 공급망을 차단하기 위한 효과적 방법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직원의 현지 파견으로 범죄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한편, 현지 관세 당국과 선별·검사를 같이하면서 마약 은닉 수법이나 적발 기법 같은 노하우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관세청과 태국 관세총국은 20일 서울에서 상호협력 강화 의향서를 체결하고 합동단속 연례화, 마약류 밀수 정보 실시간 교환 등에 나서기로 했다. 윤태식 관세청장은 "앞으로 마약류 주요 공급 지역에 있는 국가들과 양자 합동 단속을 확대하고, 국내·외 유관기관과의 공조 체계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