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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 침실 창가 아침마다 백파이프 불던 그, 마지막 배웅하다[영상]

중앙일보

입력

엘리자베스 2세의 백파이프 연주자였던 폴 번즈 소령이 19일(현지시간) 웨스트민스터 사원 장례식 마지막에 연주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엘리자베스 2세의 백파이프 연주자였던 폴 번즈 소령이 19일(현지시간) 웨스트민스터 사원 장례식 마지막에 연주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대여, 이젠 고이 잠들게나. 이제는 그만, 꿈을 꿔도 될지니.”  

19일(현지시간) 엄수된 영국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식이 끝나는 순간, 2층에 마련된 특별한 공간에 스코틀랜드 전통악기인 백파이프 연주자가 등장했다.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그는 여왕이 생전 직접 선정한 곡을 연주했다. 위는 그 원곡, 스코틀랜드의 민요 ‘잠들게나, 고운 이여, 잠들게나(Sleep Dearie, Sleep)’의 가사 일부다. 연주자인 폴 번즈 소령은 영국 왕실 근위대에서 백파이프 연주를 담당하는 인물이다. '군주의 파이프 연주자(Piper to the Sovereign)'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다.

여왕은 매일 아침 9시면 자신의 침실 창가 아래에서 백파이프 연주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의 생을 마감하는 순간도 백파이프 연주와 함께한 셈이다. 이제 더 이상 아침마다 백파이프를 불지 않아도 되는 번즈 소령은 이날, 여왕의 관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떠나는 순간 홀로 일어나 이 곡을 연주하며 여왕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백파이프 연주에 각별한 애정을 가졌다고 한다. 스코틀랜드에 대한 애정도 깊었지만, 백파이프 특유의 강인한 소리에 매력을 느꼈을 법하다. 번즈 소령은 베테랑 군인이지만 이 임무를 맡은 것은 지난해부터다. 백파이프 연주는 폐활량이 커야하고 특히 독주의 경우 체력 소모가 많은 일이다.

그의 선임인 스캇 메스벤은 2015~2019년간 여왕의 백파이프 연주자로 근무했는데, 그는 지난주 BBC에 출연해 “여왕께서 아침마다 내 연주를 듣기 위해 창가에 서계시는 모습을 보는 것은 크나큰 행복이었다”며 “여왕께선 ‘누가 행여 백파이프 소리가 거슬린다고 하면 내가 연주하도록 한 거라고 말해주게나’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매일 백파이프 연주하는 것도 어깨가 무거운 일이지만, 메스벤의 경우는 가족 사정으로 일을 그만뒀다고 한다. 부인과 양친을 차례로 갑자기 연달아 잃으면서다. 당시 일에 대해 메스벤은 BBC에 이렇게 회고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창가에 서서 연주를 했는데, 여왕이 다가오셔서 내 팔을 살짝 잡으며 말씀하셨어요. ‘내일 아침에 이곳에서 연주를 하지 못하게 되어도 괜찮네.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아도 되니, 아픈 가족을 돌보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게나. 언제나 가족이 먼저일세.”

찰스 3세 영국 국왕과 커밀라 왕비, 앤 공주, 앤 공주의 남편 팀 로런스 부제독, 앤드루 왕자, 에드워드 왕자, 에드워드 왕자의 부인 소피(앞줄 왼쪽부터) 등 왕실 가족들의 모습이 보인다. AP=연합뉴스

찰스 3세 영국 국왕과 커밀라 왕비, 앤 공주, 앤 공주의 남편 팀 로런스 부제독, 앤드루 왕자, 에드워드 왕자, 에드워드 왕자의 부인 소피(앞줄 왼쪽부터) 등 왕실 가족들의 모습이 보인다. AP=연합뉴스

영국 왕실의 백파이프 사랑은 엘리자베스 2세 훨씬 이전부터 시작됐다. 처음 그 전통을 시작한 것은 빅토리아 여왕으로, 1843년 부군 앨버트 공과 함께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에 갔다가 백파이프 연주에 빠졌다고 한다. 이후 빅토리아 여왕은 '군주의 파이프 연주자'라는 자리를 만들었고, 이번 폴 번즈가 17대라고 BBC는 전했다. 엘리자베스 2세와 빅토리아 여왕은 각각 70년과 63년에 달하는 치세와, 남편과의 돈독한 관계 등 공통점이 많다. 백파이프에 대한 사랑도 공통점 중 하나인 셈이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결혼식 사진_아이비브라이드 홈페이지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결혼식 사진_아이비브라이드 홈페이지

엘리자베스 2세는 장례식에서 연주될 곡들도 생전에 미리 다 정해놓았는데, 찰스 3세가 치른 두 번의 결혼식에 모두 울려퍼졌던 찬송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Love Divine All Loves Excelling)‘ 등이 있다. CNN은 “각각 의미를 담아 곡을 선정해놓은 점이 역시 엘리자베스 2세다웠다”고 전했다.

엘리자베스 2세가 자신이 관 속에서 마지막으로 듣게 될 곡으로 선택한 백파이프 연주의 원곡 가사는 다음과 같다.

“병사여, 자네의 작은 자리에 이제는 눕게나. 넓지도 아주 멋지지도 않지만, 그렇지만 병사여, 아무 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이젠 편히 잠들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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