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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사업, 갑자기 떼낸다…개미의 비명, 물적분할 이대로? [Law談-김영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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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분할제도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상법 개정으로 도입됐다. 신속한 구조조정을 통해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취지였다. 회사 분할은 인적 분할과 물적 분할로 나뉜다. 인적 분할은 신설 회사의 주식을 기존 회사의 주주들이 보유 주식 비율대로 나눠 갖는 방식인 반면 물적 분할은 신설 회사의 주식을 기존 회사가 갖는다. 인적 분할은 소액주주에게, 물적 분할은 대주주에게 유리한 면이 있다. 이 중 현행 법령상 원칙은 인적 분할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국내 상장사들은 물적 분할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거래소의 공시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회사 분할 50건 중 47건이 물적 분할이었다고 한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회원들이 지난 1월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열린 대기업 물적분할 반대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회원들이 지난 1월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열린 대기업 물적분할 반대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그런데 일부 기업이 고성장 사업 부분을 물적 분할해 상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가 하락 등 기존 소액주주에게 피해가 발생해 문제가 되고 있다. 그간 학계, 일부 정치권을 중심으로 물적 분할시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동시상장 금지 법제의 도입, 특정 사업 부분의 실적에 연동하는 트래킹(tracking) 주식 발행의 허용, 모회사 주주에 대한 자회사 신주인수권의 부여 내지 자회사 신주의 우선 배정 등 보완책이 주장됐다.

경청할만한 것들이나 넘어야 할 과제들이 있어 당장 도입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우선, 법률로 동시 상장을 금지하는 것은 상장을 통한 자금 조달의 기회를 없애버리는 것이어서 과도하다. 해당 기업이 한국의 규제를 피해 외국에 상장을 시도할 경우 국내 자본시장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인적분할과 물적분할 개념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인적분할과 물적분할 개념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트래킹 주식은 무엇보다 실효성에 의문이 있다. 트래킹 주식 발행만으로 신설 사업회사의 상장 욕구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트래킹 주식과 관련한 특정 사업 부분의 회계와 비용을 독립적으로 어떻게 획정할 것인지도 쉬운 문제는 아니다.

모회사 주주에 대한 자회사 신주인수권의 부여 내지 자회사 신주의 우선 배정은 신주 주주배정의 원칙과 관계에서 검토가 필요하다. 상법 제418조는 주주의 신주 배정(제1항)과 신기술 도입, 재무구조의 개선 등 회사 경영상 목적 달성을 위한 주주 외 제3자 신주 배정(제2항)을 규정하고 있는데 위 조항이 법인격이 다른 자회사의 공모주를 모회사 주주에게 우선 배정하는 것 등에 대한 근거로 충분한지, 신주의 제3자 배정을 정관자치의 대상으로 정한 취지에 반하지는 않는지 논란이 될 수 있다.

물적 분할 자회사의 상장과 관련해 모회사 소액 주주의 피해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는 당위는 분할 당시 모회사 소액주주의 신뢰 보호에 기반한다. 얼마 전 금융위원회가 물적 분할 상장에 따른 일반 주주의 권익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① 물적 분할을 추진하는 기업의 공시 의무 강화 ② 물적 분할에 반대하는 상장기업 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인정 ③ 물적 분할 이후 5년 내 자회사를 상장하는 경우 모회사 일반 주주에 대한 보호 노력 심사 세 가지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우후죽순처럼 거론되는 여러 방안 중 그나마 현실적으로 이행 가능한 것들이어서 필자도 동의한다. 여기서 핵심은 ‘물적 분할 반대 주주에 대한 주식매수 청구권의 인정’이다. 이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제176조의7) 개정이 필요한 사항이기도 하다.

다만 주식매수 청구를 인정하더라도 물적 분할 예정 사실이 알려질 경우 과거에는 주가가 하락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주식매수 청구권이 도입된다면 도리어 주가가 상승할 수도 있으므로 매수 가격 결정 시 위와 같은 주가 변동분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이와 관련한 소송이 빈발할 우려는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또 주식매수 청구를 한 뒤 주가 상승에 따라 주식을 시장에 매각하는 등 주식매수 청구권을 투기적으로 남용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물적 분할 이후 자회사 상장 계획이 없는 경우에도 주식매수 청구를 인정할 것인지, 주식매수 청구로 물적 분할 자회사의 신규 상장이 침체되고 그로 인해 국내 투자자의 투자 시장이 위축될 소지는 없는지 등의 쟁점도 있다. 소액주주는 충분히 보호하되 부작용이 없도록 치밀한 후속 검토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로담(Law談) 칼럼 : 김영기의 자본시장 法이야기

주식인구 800만, 주린이 2000만 시대. 아는 것이 힘입니다. 알아두면 도움되는 자본 시장의 현안을 법과 제도의 관점에서 쉽게 풀어 공유하고자 합니다. 시장의 미래 발전 방향에 대한 제안도 모색합니다. 암호화폐 시장 이야기도 놓칠 수 없겠죠?

김영기 변호사가 중앙일보 로담(Law談)에서 디지털 칼럼 '김영기의 자본시장 法이야기'를 새로 연재한다. 본인 제공

김영기 변호사가 중앙일보 로담(Law談)에서 디지털 칼럼 '김영기의 자본시장 法이야기'를 새로 연재한다. 본인 제공

※김영기 법무법인 화우 파트너 변호사. 연세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자본시장법)/서울서부지검 부장검사/대검찰청 공안3과장/전주지검 남원지청장/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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