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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고르바초프와 함께하는 기후정의 행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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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고르바초프와 함께? 이미 이번 달 초 우리는 그의 장례식을 치르지 않았는가? 하지만 아직 그를 보낼 수 없다. 왜냐하면 제대로 추모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냉전 종식의 산파로서, 자유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추구한 개혁가로서 전 세계는 그를 추억했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 고르바초프의 진정한 탁월성은 거기에 있지 않다.

나는 평소 4가지 등급의 리더 유형이 있다고 믿는다. 가장 낮은 급은 정치를 핑계로 자신의 경쟁자를 파괴하려고 하거나 혹은 사적 이익을 방어하려는 유형이다. 그 다음은 거래적 리더이다. 정치를 그저 이익의 교환으로만 한정하는 이들이다. 더 높은 급은 가치와 이익의 균형자이다. 즉 공감과 같은 가치와 현실 이익의 조화를 추구하는 유형이다. 최상급은 문명과 의식 차원의 변혁을 선도하는 리더이다. 단지 일부 가치 아젠다를 넘어 포괄적 사유의 틀과 삶의 문법 전반을 바꾸어가려는 리더이다. 고르바초프가 바로 그 유형에 속한다.

우리가 간과한 그의 탁월성은
생명 공동체에 대한 예언과 비전
고르바초프·기후정의행동의 만남
신냉전 시대 새로운 의식혁명

고르바초프는 자연과 인간의 이분법적 세계관이 아니라 진화하는 역동적 우주 속에서 지구와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와 겸손한 위치를 고민했던 생태 우주론자였다. 그는 이러한 문명 전환의 세계관에 기초해 1992년 리우 회의에서 지구헌장 제정을 촉구했다(종교와 생태에 관한 예일 포럼 9월 뉴스레터). 몇 년 후 모습을 드러낸 이 헌장에서 생태와 정의, 그리고 평화의 가치는 대안적 세계관으로 통합되었다.

비전가이자 예언자로 활약해온 그는 이미 2008년에 기후 위기가 모든 이슈에 앞서 인류 실존의 가장 긴급한 과제이며 불평등과 지구 안보도 그 관점에서 풀어나가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우리가 코로나와 태풍 힌남노 및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이제야 어렴풋하게 깨닫기 시작하고 있는 진실을 말이다.

물론 그는 현실 정치의 기준으로는 실패했다. 소련은 더 인간적인 사회주의로 이행하기보다는 또 다른 기득권의 국가자본주의나 전체주의로 귀결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닌과 마오쩌둥의 사회주의 혁명이 목표의 성공을 통해 실패했다면 고르바초프는 목표의 실패를 통해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고르바초프를 조롱하는 푸틴과 시진핑을 결코 진정한 성공이라 부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비록 때로는 권력 게임에 순진했지만 고르바초프의 신사고는 향후 수십 년간 인류의 평화와 공존을 향한 물결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가 어빈 라슬로, 파울로 코엘로, 바츨라프 하벨 등과 함께 결성한 부다페스트 클럽은 현재에도 새로운 정치 비전의 울림을 주고 있다.

고르바초프와 부다페스트 클럽의 화두는 어쩌면 평화로의 새로운 틈새를 만들어 갈 전환 정치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오늘날 미·중 간의 악화되는 갈등은 결코 바이든이나 시진핑이 각각 희망하듯이 자유주의나 권위주의의 이분법적 진영 대결로만 해결되지 않는다. 한반도 남과 북 간의 고조되는 위기도 마찬가지이다. 기존 수평적인 진영 갈등 차원을 넘어 지구와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비인간의 상호 연결성과 상호의존성, 그리고 공존공영의 보편적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갈등은 창조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마치 핵전쟁 직전의 절체절명의 위기를 거친 후 케네디와 후르시초프가 인류의 공통 호흡 공동체 운명(우리는 모두 같은 공기를 마신다)을 깨닫고 새로이 한 발을 내디뎠듯이 말이다.

고르바초프의 의도하지 않았던 촉진자 역할로 인해 우리가 누렸던 냉전 이후의 ‘긴 평화’와 ‘평평한 세계’의 좋았던 시절은 이제 끝났다. 향후 혼돈의 이행기인 최소 10년은 냉전 시기를 오히려 그리워해야 할 정도로 백배는 더 위험한 기후재난과 핵 전쟁의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고르바초프가 냉전과 탈냉전 시절 미완성으로 남긴 비전 지도의 작업을 신냉전 시대에 이어가야 한다. 이는 생태와 정의, 그리고 평화의 신사고이다.

9월 24일(토요일)은 전 지구적인 기후정의 행동의 날이다. 고르바초프가 지구헌장에서 그토록 꿈꾸었던 생태, 정의, 평화의 목소리는 며칠 후 전 지구에 울려 퍼질 것이다. 비록 역사 뒤안길의 고르바초프 할아버지와 미래로의 툰베리 소녀는 함께 걸을 수 없지만, 그들은 시공간을 넘어 생명 공동체의 비전으로 공명하리라 믿는다.

젊은 시절 나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고르바초프와 그의 지적이고 품위 있는 동지인 라이사(퍼스트 레이디)가 그립다. 그들은 인간적 고뇌와 모순, 그리고 오류 속에서도 더 인간다운 미래에 대한 낙관을 버리지 않았다. 라이사 여사는 인간이 진정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걸음을 멈출 때라고 유언을 남겼다(월간중앙 2014년 6월 호). 그들을 제대로 추억하는 길은 그들이 걸었던 위험한 길, 실패가 예정될 지도 모를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거라고 믿는다.

‘평정심을 가지면서도 치열하게(Be calm and strong).’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