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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 먼 부패척결, 권익위 기능 재정립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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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연구교수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연구교수

이정희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이 최근 ‘신상털기식 감사’를 당했다고 주장하며 사퇴하였다. 전현희 위원장에 대한 자진 사퇴 압박에 이어 감사원의 ‘표적 감사’ 논란까지 불거진 상황에서다. 국무총리 소속인 권익위 위원장은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 임기 3년을 보장한다. 2020년 6월 임기를 시작한 전 위원장은 내년 5월까지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 임기가 남은 위원장에 대한 사퇴 압박은 적절치 않다. 전 위원장 주장처럼 불법 표적 감사가 이루어졌다면 ‘공정’을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정부의 지향과도 맞지 않는다. 전 위원장은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21대 총선 낙선 후 한 달 만에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이 전 부위원장도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예비후보였으며, 지난해 1월 임명됐다. 정치적 중립을 위해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는 전 위원장의 주장을 신뢰하기 힘든 만큼 사퇴하는 게 권익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중요한 것은 위원장의 임기 논란이 아니라 권익위를 국가 반부패 청렴 기관으로 기능과 위상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지난 3월 월간중앙 여론조사에서 ‘부패 척결 및 공정 확립’은 최우선 정부 정책 순위로 꼽혔다. 윤석열 정부는 권익위 위원장 자리에 연연할 게 아니라 권익위를 어떻게 자리매김해 국민 요청에 답할지부터 내놓아야 한다. 지난 5월 새 정부 출범 이후 그런 움직임을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몇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한국 부패지수 62점, 여전히 낮아
권익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고
부패·공익신고 조사권 부여해야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첫째,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직속 국가청렴위원회와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를 통합하면서 국무총리 소속으로 격하한 권익위를 독립적 반부패 청렴 총괄기구로 개편하고,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다시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 기능과 성격이 다른 세 기관의 통합으로 반부패 기구라는 권익위의 위상과 의미는 약화하였다. 독립적 부패방지기구 설치를 규정한 유엔 반부패협약 의무를 위배한 것이기도 하다.

또 공직자 재산 등록·공개, 직무 관련 주식 매각 및 백지신탁제도, 퇴직 공직자의 취업 제한 등 인사혁신처가 가진 공직 윤리 기능을 개편하는 기관으로 이관하여 공직 윤리를 포함한 반부패청렴 국가기구로서 기능하도록 해야 한다. 국무총리 소속으로는 행정부를 넘어 지방의회와 국회, 사법부, 공직 유관 단체 및 공기업, 청탁금지법상 공직자 등에 해당하는 사립학교 및 사학재단, 언론사까지 다 포괄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따라서 국가수반 직속 독립기관인 싱가포르의 탐오조사국처럼, 대통령 소속으로 위상을 강화하면서 감사원이나 국가인권위원회처럼 보다 철저한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권익위에 부패·공익신고 조사권을 부여해야 한다. 신고 및 보호 주무 기관이긴 하지만 접수받은 신고는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고 관련 기관에 이첩하게 되어 있어 사건 처리 지연이나 신고자 인적사항 노출 등의 불이익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국세청 등 기관은 조사권이 있다. 홍콩 염정공서, 싱가포르 탐오조사국, 말레이시아 반부패청 등 동남아 국가들의 반부패 기구도 수사 권한을 갖고 있다. 접수된 비리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제한적 계좌추적권과 부정이 발생한 국가기관 등에 대한 문서제출요구권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셋째, 공공기관의 자체 연수원에도 못 미치는 권익위 산하 청렴연수원을 국가 최고 청렴 연수기관으로 개편해 홍콩 염정공서처럼 공직자뿐 아니라 일반인·학생 대상 청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이와 함께 국회의원 낙선 후 바로 위원장으로 임명됨으로써 정치적 중립성 시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이번 자발적 사퇴 논란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선출직 공직자의 경우 일정 기간 임명 제한도 검토해볼 수 있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지난 1월 발표한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서 우리나라는 100점 만점에 62점으로 180개 조사 대상국 중 32위를 기록했다. 역대 최고 성적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부끄러운 수치다. 20위권 도약과 사회가 전반적으로 투명한 상태인 70점대 진입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반부패 청렴 주무 기관의 위상과 기능을 재정립하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