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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구한 541억 차수벽, 19년 전 ‘매미 참사’ 되풀이 막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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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면

태풍 ‘힌남노’ 내습에 앞서 지난 5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구항 방재언덕에서 높이 2m 차수벽(기립식 방조벽)이 가동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태풍 ‘힌남노’ 내습에 앞서 지난 5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구항 방재언덕에서 높이 2m 차수벽(기립식 방조벽)이 가동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5일 오전 11시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구항 방재언덕. 태풍 ‘힌남노’가 마산만에 상륙하기 약 하루 전, “삐뽀~ 삐뽀~” 경보음이 울리자 200m 구간 길이 서서히 일어섰다. 이 구간은 곧바로 높이 2m의 차수벽(기립식 방조벽)으로 바뀌었다. 이 길은 평소 산책로로 쓰인다. 차수벽이 양옆에 고정식으로 세워져 있던 같은 높이(2m)의 투명강화벽(1㎞)과 연결되니, 1.2㎞의 거대한 성벽과 같았다.

차수벽은 19년 전 마산에서만 18명이 사망한 태풍 ‘매미’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만들었다. 2018년 준공 이후 이날 2번째로 가동됐다. 2003년 9월 매미가 일으킨 최대 4.39m 높이 폭풍해일이 덮치면서 마산어시장과 경남대 앞 댓거리 등 마산만 인근 해안가 저지대가 쑥대밭이 된 아픈 경험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차수벽 덕분에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차수벽은 방재언덕 자체 높이인 3~4m까지 더해, 매미 때 해수위보다 더 강력한 최대 6m의 해일도 견디게 설계됐다. 심지어 향후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까지 고려해 만들었다. 차수벽 포함 방재언덕에는 예산만 541억원이 투입됐다.

같은 시간 마산합포구 일대 해안가 저지대 주민들은 구청에서 나눠주거나 직접 만든 물막이용 모래주머니 8만7000여개를 가게와 상가 출입구에 쌓느라 분주했다. 마산어시장 상인들은 창고에 있던 물품을 고지대 창고로 옮기기도 했다.

지하주차장에서 댔던 차를 공용주차장이나 다른 높은 지역으로 옮기는 주민도 있었다. 매미 때 경남대 앞 한 건물 지하가 해일 때문에 침수, 8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악몽을 다시 경험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창원시는 지난 5일 오후 9시40분부터 마산 구항과 서항에 설치된 배수펌프장을 8시간 넘게 탄력적으로 가동했다. 각각 분당 476t, 2174t의 빗물을 배수할 수 있다. 심명섭 마산어시장 상인회장은 “매미 때 침수되면서 생긴 얼룩이 아직도 남은 가게가 있다”며 “매미 때 피해가 워낙 컸다 보니 사람들이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말했다.

철저한 준비를 한 다음 날인 지난 6일 오전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만. 기상청·국립해양조사원에 따르면 이날 새벽 한반도 상륙한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창원에는 오전에만 123.7㎜의 폭우가 쏟아졌다. 만조까지 겹치면서 오전 5시16분쯤 마산만 바닷물 높이는 최대 2.40m까지 치솟았다. 당초 만조시각 예측치인 1.36m보다 1m가량 더 높아진 셈이다.

2003년 9월 13일, 전날(12일) 밤 태풍 ‘매미’가 휩쓸고 지나간 당시 경남 마산시(현 창원시) 마산어시장에서 차와 집기들이 뒤엉켜 도로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뉴시스]

2003년 9월 13일, 전날(12일) 밤 태풍 ‘매미’가 휩쓸고 지나간 당시 경남 마산시(현 창원시) 마산어시장에서 차와 집기들이 뒤엉켜 도로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뉴시스]

하지만 걱정했던 것보다 창원 마산 지역에 큰 피해가 없었단 평가가 나온다. 간판이 떨어져 부서지거나 나무가 쓰러지고, 일부 도로가 침수되는 정도에 그쳤다. 큰 인명·침수 피해는 없었다.

안병오 마산합포구청장은 “우리 지역이 힌남노 영향권에 있었음에도 큰 피해를 보지 않은 것은 마산구항과 마산서항의 배수펌프장 운영과 마산만 방재언덕 조성 덕분”이라며 “태풍 발생 며칠 전부터 밤낮으로 만반의 준비를 다 한 시민과 공무원 여러분들 덕분도 크다”고 말했다.

반면, 힌남노가 지나간 지난 6일 경북 포항에서는 10명이 숨지는 큰 피해가 났다. 특히 포항 남구에서는 침수된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7명이 변을 당했다. 시간당 최대 104.5㎜의 비가 쏟아지면서 크게 불어난 강물이 곧장 지하주차장으로 흘러가면서 인명피해로 이어졌다.

매미 때 마산은 해일이 덮쳤다면, 포항은 아파트 인근 하천인 냉천이 범람하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특히 매미 참사를 경험한 창원 마산과 달리, 물난리 경험이 적은 이 아파트 주민들은 순식간에 침수되는 상황에서 미리 빼놓지 않은 자동차를 옮기려다 이 같은 참사를 겪었다.

게다가 냉천 인근에는 마산만의 차수벽 같은 방재시설도 없었다. 물난리를 경험한 지역민은 지난 7일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 사고 현장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냉천 둑 높이를 높여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지난 12일 열린 ‘태풍 매미 19주기 추모제’에서 태풍 매미 유족들은 과거 희생을 교훈 삼아 이번 재해를 막았다고 평가했다. 희생자 18명 이름이 새겨진 ‘태풍 매미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서의호 전 포항공과대학 교수는 “이번에 마산에서 차수벽 덕분에 희생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뉴스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매미 때 딸과 예비사위를 잃은 서 교수는 “매미 때 희생자가 오늘 마산 젊은이들의 재난을 막았다”고 강조하며 “아직도 안전사고는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19년 전 마산에서 침수된 지하에서 발생했던 것과 유사한 참사가 포항에서 재발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포항 참사가 발생한 데에는 경험 부족도 한몫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기훈 창신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큰 재해를 경험한 사람들은 행동요령이 자기도 모르게 생각에 박혀 있다”며 “포항 주민들은 이런 물난리를 거의 겪어보지 못하다 보니, 침수 위험이 큰 지하주차장에 들어가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이어 “마산은 태풍 소식에 8만 개가 넘는 모래주머니를 쌓고 대비했다. 이처럼 재해는 과도하게 대비해야 한다”며 “결과적으로 피해가 없어 ‘헛고생했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조금 더 준비하고 안 하고 작은 차이가 큰 사고 여부를 가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많은 국민이 배우게 될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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