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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 200명도 각국 정상과 나란히…여왕 장례식으로 하나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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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이 엄수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문을 열고 들어선 첫 조문객은 '이름 없는 영웅(Unsung Hero)'이었다. 19일 오전 11시(현지시간·한국시간 오후 7시) 시작되는 장례식에 3시간 일찍 도착한 이들은 간호사 오닐과 변호사 프라나브 바노트(34). 이들은 영국에서 코로나19 대유행이 한창이던 때, 남을 돕고자 앞장섰던 공로를 인정 받아 여왕의 장례식에 초청됐다고 뉴욕타임스(NYT)와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영국 시민들이 19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으로 모여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영국 시민들이 19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으로 모여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바노트는 코로나19로 인해 생활고에 시달리는 1200명을 대상으로 무료 급식 봉사에 나선 노고를 인정 받았다. 그는 NYT에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라며 "나는 매우 평범한 시민인데, 미국 대통령과 같은 공간에 있는 걸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왕의 장례식에 국빈과 일반 대중이 모두 초청받은 건, 평범한 일반인과의 소통에도 소홀하지 않았던 여왕의 훌륭한 성품을 반영한 것"이라고 애도를 표했다.

영국 왕실은 다양한 형태의 공익적 활동을 펼친 영국 '의인(義人)' 200여명을 여왕의 국장에 특별 초청했다고 발표했다. 초청자 명단에는 지난 수년간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해 이바지한 이들 다수가 포함됐다.

영국·아일랜드의 성소수자(LGBTQ+) 합창단 네트워크 '프라우드 보이스'를 만든 셴 츄(49)도 여왕의 국장에 초대받았다. 츄는 "여왕의 통치 기간 동안 영국이란 나라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나를 통해 드러날 수 있다"면서 "여왕은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영국 사회를 보다 더 많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평등한 공동체로 변화시켰다"고 말했다.

일부 초청 시민은 엄격한 장례식 복장 규정에 격식을 차린 의복을 급하게 마련하기도 했다. 흉기 범죄 반대 운동가인 나탈리 케이로스(46)는 "영광스러운 기회에 너무 기뻤지만, 입고 갈 검정색 정장과 모자가 없었다"면서 "급하게 아마존을 통해 구입한 모자를 쓰고 장례식장을 방문할 것"이라고 했다.

이 밖에 시각장애인을 위해 여왕의 장례식을 오디오북으로 기록할 88세 런던 시민도 초청자 명단에 올랐다.

1760년 서거한 조지 2세 이후 262년 만에 처음으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리는 영국 군주의 장례식에는 사전에 초청된 국내외 주요 인사 2000여명이 참석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나루히토(德仁) 일왕을 비롯해 세계 200여개 국가·지역 정상과 왕족 500여명이 런던으로 대거 모여들면서 '조문 외교의 장'이 열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을 하루 앞두고 런던 랭커스터하우스에 마련된 여왕의 조문록에 서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을 하루 앞두고 런던 랭커스터하우스에 마련된 여왕의 조문록에 서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이 18일 부인 질 바이든 여사와 함께 여왕의 관이 안치된 웨스트민스터 홀을 찾아 가슴에 손을 댄 채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이 18일 부인 질 바이든 여사와 함께 여왕의 관이 안치된 웨스트민스터 홀을 찾아 가슴에 손을 댄 채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은 장례식을 하루 앞둔 18일 부인 질 바이든 여사와 함께 여왕의 관이 안치된 웨스트민스터 홀을 찾아 성호를 긋고 손을 가슴에 댄 채 고인을 추모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조문록에 "엘리자베스 여왕은 직무를 위한 변함없는 헌신으로 전 세계의 존경을 받았다"라고 쓰고 서명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이날 부인 브리짓트 여사와 함께 웨스트민스터 홀까지 도보로 이동해 조문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우크라이나에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대신해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가 웨스트민스터 홀을 찾아 참배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8일 부인 브리지트 여사와 함께 여왕을 조문하기 위해 웨스트민스터 홀까지 도보로 이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8일 부인 브리지트 여사와 함께 여왕을 조문하기 위해 웨스트민스터 홀까지 도보로 이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세계 각국의 왕족도 장례식에 참석한다. 2019년 즉위 이후 첫 외국 순방에 나선 나루히토 일왕은 18일 마사코 왕비(雅子)와 웨스트민스터 홀을 찾아 조의를 표했다. 일왕의 외국 왕실 장례식 참석은 1993년 아키히토 당시 일왕이 벨기에 국왕 국장에 참석한 데 이어 사상 두 번째다.

여왕의 서거 후 유럽의 최장수 군주가 된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2세(82) 여왕도 런던을 직접 찾아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필립 벨기에 국왕·하랄드 5세 노르웨이 국왕·알베르 2세 모나코 국왕·펠리페 6세 스페인 왕 등도 참석자 명단에 포함됐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등 영연방 지도자들도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런던에 속속 도착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중국에선 왕치산(王岐山) 국가 부주석이 대표단을 이끌고 조문했다. 대만은 장례식에는 공식 초청받지 못했으나, 영국 정부의 특별 초청을 받아 영국 외교부가 운영하는 런던 랭커스터하우스에 마련된 여왕의 조문록에 서명했다.

대만 외교부는 "이러한 특별 초청은 대만 대표가 영국으로 조문을 간 왕족이나 국가수반, 다른 나라 대표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는 의미"라면서 "조문록 서명에 초대한 것은 대만-영국 관계의 중요성과 양국 국민 간 소중한 우정에 기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정부는 외교적 마찰을 빚은 북한·이란·니카라과 등에는 정상이 아닌 대사를 초청했다. 러시아·벨라루스·미얀마·시리아·아프가니스탄·베네수엘라 등은 초청 대상국에서 제외됐다.

버킹엄궁이 18일 최초 공개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사진. AP=연합뉴스

버킹엄궁이 18일 최초 공개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사진.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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