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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 이후 女가수 최초...잠실운동장에 '아이유 붉은달' 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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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진행된 콘서트 '더 골든 아워: 오렌지 태양 아래'에서 관객들과 호흡하고 있는 아이유. 한국 여성 가수 최초로 주경기장에서 콘서트를 진행하며 이틀간 8만 8000여명의 관객과 만났다. 사진 EDAM엔터테인먼트

17~18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진행된 콘서트 '더 골든 아워: 오렌지 태양 아래'에서 관객들과 호흡하고 있는 아이유. 한국 여성 가수 최초로 주경기장에서 콘서트를 진행하며 이틀간 8만 8000여명의 관객과 만났다. 사진 EDAM엔터테인먼트

“여러분이 나중에 저를 추억하실 때 가장 빛났던 순간으로 지금 이 순간을 떠올려주셨으면 좋겠어요.”
18일 저녁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선 아이유가 정규 5집 타이틀곡 ‘라일락’(2021)을 부르기에 앞서 설레는 목소리로 말했다. 비단 한국 여성 가수 최초로 주경기장을 가득 메울 수 있어서는 아닌 듯했다.

한국 여성 가수 최초로 주경기장 입성 #이틀간 8만 8000명 만나 마법같은 무대

“어느 작별이 이보다 완벽할까”라는 노랫말처럼 20대에 안녕을 고하고 30대를 맞이하는 자리로 최적이어서였을까. 2008년 중학교 3학년 때 데뷔한 그는 “이렇게 큰 무대는 꿈꿔본 적도 없었다. 10대 때부터 도전하고 달려왔던 길에 이 무대가 마지막 도착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데뷔 14주년 기념일에 딱 맞춰 콘서트까지 할 수 있는 저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오늘을 기억하며 더 겸손한 마음으로 14년 더 가보겠다”는 포부도 잊지 않았다.

“데뷔 14주년 맞춰 공연…운 좋은 사람”

금빛 장식으로 수놓아진 블랙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오른 아이유. 디즈니 공주 같은 스타일링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사진 EDAM엔터테인먼트

금빛 장식으로 수놓아진 블랙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오른 아이유. 디즈니 공주 같은 스타일링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사진 EDAM엔터테인먼트

최대 10만명까지 입장이 가능한 주경기장은 한국 가수들 사이에서 ‘꿈의 무대’로 통한다. 조용필ㆍH.O.T.ㆍ싸이ㆍ방탄소년단(BTS) 등 한 시대를 대표하는 톱스타에게만 허락되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해외 뮤지션으로 범위를 넓혀도 여성 가수가 홀로 주경기장을 채운 것은 2012년 미국 팝스타 레이디 가가 공연이 유일하다.

아이유는 17~18일 양일간 열린 ‘더 골든 아워(The Golden Hour): 오렌지 태양 아래’로 8만 8000여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2018년 여성 솔로 가수 최초로 케이스포돔(체조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하는 등 티켓 파워를 자랑해온 아이유는 이번에도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티켓 예매 대기자만 약 40만명에 달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아이유는 3시간 30분 동안 20여곡을 부르며 한 편의 뮤지컬 같은 무대를 선보였다. 지난해 1월 발표된 5집 선공개 곡 ‘셀러브리티(Celebrity)’ 포스터로 디즈니 공주 같은 비주얼을 뽐낸 그는 이번 공연에서도 화려한 드레스 라인업을 자랑했다. BTS 슈가와 공동 프로듀싱한 ‘에잇’의 노랫말 “오렌지 태양 아래”를 부르며 포문을 열자 관객들의 함성이 쏟아졌다. 2019년 11월 ‘러브, 포엠’ 이후 코로나19로 3년간 공연을 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꾸준히 히트곡을 낸 ‘음원퀸’답게 명곡에 맞는 명 연출을 이어나갔다.

‘이 지금’ ‘하루 끝’처럼 신나는 노래에는 수십 명의 댄서와 함께 무대에 올라 춤을 추고, ‘무릎’ ‘겨울잠’ 같이 잔잔한 곡은 오케스트라를 동원해 풍성하게 채웠다. 퍼포먼스가 뛰어난 아이돌 그룹이나 탄탄한 사운드를 자랑하는 밴드와는 다른 방식으로 잠실벌을 달군 것이다.

디즈니 공주가 꾸미는 한 편의 뮤지컬

붉은 보름달 모양의 열기구를 타고 '스트로베리 문'을 부르고 있는 아이유. 사진 EDAM엔터테인먼트

붉은 보름달 모양의 열기구를 타고 '스트로베리 문'을 부르고 있는 아이유. 사진 EDAM엔터테인먼트

아이유가 탄 열기구가 2~3층을 향해 다가가자 관객들의 함성이 쏟아졌다. 사진 EDAM엔터테인먼트

아이유가 탄 열기구가 2~3층을 향해 다가가자 관객들의 함성이 쏟아졌다. 사진 EDAM엔터테인먼트

그중에서도 압권은 ‘스트로베리 문(strawberry moon)’ 무대였다. 미국 인디언들이 딸기가 붉게 익어가는 6월의 보름달을 일컫는 별명에서 따온 노래 제목처럼 아이유가 붉은 달을 닮은 열기구를 타고 공연장 위로 날아오르자 관객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공연장을 한 바퀴 돈 그는 “2~3층 관객들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고 싶어서 달을 띄워봤다”며 “16일에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리허설을 제대로 못 해서 걱정했는데 하길 너무 잘했다”며 뿌듯해했다. 그야말로 마법에 빠진 순간이었다.

‘밤편지’ 무대 이후 펼쳐진 드론 쇼도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아이유를 닮은 여성부터 높은 음자리표, 시계 등 새로운 이미지가 밤하늘을 수놓을 때마다 탄성을 자아냈다. 야외에서 밤 공연을 볼 팬들을 위해 전 좌석에 방석을 비치해 기념품으로 선물하는 등 ‘역조공’ 스케일까지 남달랐다.

싱어송라이터로서 역량을 발휘해 온 그는 디테일하게 공연을 지휘해 나갔다. 남녀 듀엣곡 ‘너의 의미’ ‘금요일에 만나요’ 등 떼창을 통해 관객 성비와 참여 의지를 확인한 그는 관객에게 마이크를 넘길 때면 노래 가사 자막을 띄우며 참여를 유도했고 홀로 집중해서 불러야 할 때는 오롯이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시켰다. 리메이크 앨범에 수록된 소방차 원곡의 ‘어젯밤 이야기’부터 2011년 드라마 ‘최고의 사랑’ OST로 발매돼 10년 만에 역주행한 ‘내 손을 잡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팬들의 취향을 고루 만족시켰다.

공연 도중 인이어를 교체하며 “사실 오늘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어젯밤부터 안 좋아져서 오늘 리허설까지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심각한 것은 아닌데 1년 전부터 귀를 잘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고백했지만, 시종일관 흠잡기 어려운 무대였다. 아이유는 지난 3월 발매한 다큐멘터리 앨범 ‘조각집: 스물아홉 살의 겨울’에서 자신의 호흡음이 들리거나 귀가 막히는 느낌이 드는 이관개방증을 앓는다고 밝혔다.

“18살에 부른 ‘좋은 날’ 이제 졸업할 때”

중학교 3학년 때 데뷔해 싱어송라이터로 거듭난 아이유는 이날 무대를 끝으로 '좋은 날'과 '팔레트'는 당분간 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EDAM엔터테인먼트

중학교 3학년 때 데뷔해 싱어송라이터로 거듭난 아이유는 이날 무대를 끝으로 '좋은 날'과 '팔레트'는 당분간 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EDAM엔터테인먼트

잠실 밤하늘을 수놓은 드론 쇼. 사진 EDAM엔터테인먼트

잠실 밤하늘을 수놓은 드론 쇼. 사진 EDAM엔터테인먼트

이번 공연을 끝으로 ‘졸업’을 선언한 곡들도 있었다. ‘3단 고음’으로 지금의 아이유를 있게 만들어준 ‘좋은 날’(2010)과 빅뱅 지드래곤이 피처링으로 참여한 ‘팔레트’(2017)다. 올해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된 아이유는 “‘좋은 날’ 부를 때 열여덟살이었는데 이제 ‘오빠가 좋은 걸’ 하기에는 오빠가 많이 없어 보인다. 초등학생 등 어린 팬들도 많아졌다”며 웃었다.

이어 “워낙 터지는 곡이어서 이 곡을 부르면 퇴장을 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세트리스트가 뻔해지더라”며 “저도 ‘좋은 날’이 빠지면 부담이 되고 아쉽지만 새로운 시도가 필요할 것 같다. 이 공연을 마지막으로 앞으로 정식 공연에서는 보기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팔레트’에 대해서는 “이 곡을 만들던 스물다섯 살의 지은이에게 남겨주고 싶다. 그때가 제 인생에서 제일 좋았던 때인데 서른이 돼서 그때만큼 좋은 순간들을 맞이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물 셋’ 등 제 나이에 꼭 맞는 곡을 만들어온 싱어송라이터로서 고민과 성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가수뿐 아니라 배우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만큼 공연장을 찾은 팬들의 연령대도 다양했다.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브로커’로 칸 영화제에 초청되는 등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다. 직장인 김은영(29)씨는 “아이유와 동갑인데 제가 10대 때 공부해서 대학 가고 20대에 취업해서 사회인이 된 것처럼 아이유가 여러 방면에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 뿌듯했다”며 “졸업은 앞으로 이만한 곡을 또 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으면 하지 못하는 선택인데 향후 나올 곡들이 더 기대된다”고 말했다.
아이유가 “제 공연의 미래”라고 칭한 초등학생 팬들도 눈에 띄었다. 유하민(11) 양은 “처음엔 엄마가 좋아해서 같이 듣게 됐는데 표를 두 장밖에 못 구해서 언니랑 둘이 왔다”며 “‘좋은 날’ 3단 고음을 직접 들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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