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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맞서 우주·사이버전…미, 한국에 ‘발사의 왼편’ 제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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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16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3차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회의장을 방문해 조현동 외교부 1차관(왼쪽 넷째), 신범철 국방부 차관(오른쪽)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외교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16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3차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회의장을 방문해 조현동 외교부 1차관(왼쪽 넷째), 신범철 국방부 차관(오른쪽)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외교부]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 기존의 핵·재래식·미사일 방어에 더해 확장억제의 또다른 수단으로 ‘발사의 왼편(Left of Launch)’으로 대표되는 우주·사이버·전자전 협력을 공식화했다. 조현동 외교부 1차관과 신범철 국방부 차관, 보니 젠킨스 미 국무부 군비통제·국제안보차관과 콜린 칼 국방부 정책차관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16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제3차 한·미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회의에서다. 3차 회의는 2차 회의 이후 4년 8개월 만에 열렸다.

한·미는 회의 뒤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미국은 핵, 재래식, 미사일 방어 및 진전된 비핵 능력 등 모든 범주의 군사적 능력을 활용해 대한민국에서 확장억제를 제공한다는 미국의 공약을 재강조했다”고 명시했다. 신 차관은 “미국은 우주·사이버 등 진전된 비핵능력까지 포함된 모든 군사적 범주를 활용해 확장억제를 제공하기로 약속했다”며 “이는 사이버, 우주 등 새로운 분야의 한·미 간 협력 진전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발사의 왼편’은 사이버 공격, 전자기파 공격 등으로 적 지휘부, 미사일 통제 컴퓨터, 센서, 통신망 등을 교란·파괴해 미사일을 발사 전 무력화하는 계획이다. 미사일 발사 단계를 ‘발사 준비→발사→상승→하강’으로 나눌 때 ‘발사’보다 왼쪽에 있는 ‘발사 준비’ 단계에 공격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 과거 외신에 따르면 오바마 행정부는 2014년부터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사전에 포착할 경우 수 초 내 무력화하는 사이버·전자전 능력을 키워왔다. 이후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가 실패할 경우 이와 연관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돼왔으며 북한도 열차에서 미사일을 기습 발사하는 등 이에 대응해왔다.

정부 당국자는 “군사적으로 보면 소위 발사 이전에 비물리적 방식으로 차단하는 ‘발사의 왼편’ 능력이 중요하다”며 “우주, 사이버, 전자기 부분 협력이 그것과 직결되는데 한·미 모두 각자 고유 분야에서 앞선 기술이 있고 이에 대한 협력을 강화할 때 전통적인 군사 능력을 넘어 미래 첨단 과학기술 군사력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사이버사령부 찾아 연합작전도 논의

이번 주 후반 부산에 입항, 동해에서 연합훈련을 할 예정인 미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CVN-76). [중앙포토]

이번 주 후반 부산에 입항, 동해에서 연합훈련을 할 예정인 미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CVN-76). [중앙포토]

이와 관련, 신 차관은 회의 후 미국 사이버사령부를 찾아 한·미 연합 사이버작전 방안을 논의해 주목된다. 사이버사령부는 사이버 전쟁을 벌이면서 네트워크를 방어하는 사령부다. 이곳의 사령관(대장)이 미국의 주요 정보기관인 국가안보국(NSA) 국장과 중앙안보단(CSS) 단장을 같이 맡는다.

한 정부 소식통은 “그간 한국이 비핵화 협상 추진이나 전략자산 전개 의사결정 과정에의 참여 등을 요구할 때 미국은 사이버·전자기 능력에 대해 많이 얘기해왔다”며 “이번 3차 EDSCG 회의를 통해 이 부분에 대한 정보 공유 및 협력을 공식화한 것은 확장억제 강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부 소식통은 “한국은 이전 정부에서부터 진전된 비핵 능력을 요구했지만, 미국이 딱 부러지게 답한 적이 없다”고 전했다.

지난 8일 최고인민회의 전체회의에서 연설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조선중앙TV 캡처]

지난 8일 최고인민회의 전체회의에서 연설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조선중앙TV 캡처]

양국은 또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어떠한 핵 공격도 압도적이며 결정적인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밝혔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지난 8일 ‘핵 포기 불가’와 ‘선제 핵 공격’을 법으로 못 박고, 7차 핵실험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북한에 섣부른 행동을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미국의 한국에 대한 안보공약을 강한 어조로 풀어쓴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양국은 ‘모든 가용한 수단’과 ‘국력의 모든 요소’라는 문구를 공동성명에 넣어 통합 확장억제를 구체화했다. 북한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해 확장억제에 대한 담보력을 높이겠다는 의미다. 전경주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확장억제를 더 실질적이고 더 효과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평가했다.

한·미는 지난 5월 정상회담 합의 사항인 전략자산의 적기(適期) 전개를 재확인했다. 공동성명에서 양국은 지난 7월 F-35A 스텔스 전투기의 연합훈련과 이번 주 로널드 레이건 핵추진항공모함 강습단의 부산 방문을 사례로 들었다. 한 군소식통은 “다음 달부터 미국의 전략자산이 꾸준히 한국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확장억제전략 회의 매년 정례화 합의

이 밖에 양국은 EDSCG를 정례화하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회의를 매년 개최하기로 하고, 내년 상반기 실무급 회의에서 다음 회의를 준비하기로 했다. 조 차관은 “확장억제를 위한 외교·국방 공조체제를 사실상 제도화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올해 EDSCG에선 한·미가 문재인 정부에서 낮아진 확장억제의 수준을 정상적으로 되돌렸다는 데 성과가 있다”면서 “앞으로 한국이 북한의 도발 단계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맞춤형 확장억제 전략을 주도적으로 짠 뒤 이를 미국에 제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야 확장억제의 신뢰성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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