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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마약물 공식 깬 ‘수리남’…“절절한 한국 아버지 얘기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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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윤종빈 감독. [사진 넷플릭스]

윤종빈 감독. [사진 넷플릭스]

“니 새끼 생각은 안 할래? 적어도 니 새끼는 남한테 아수운 소리 안 하고 폼나게 살아야 된다 아이가.”

2012년 개봉한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에 나오는 최익현(최민식)의 대사지만, 9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의 강인구(하정우)의 입에서 나온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두 사람 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아내와 자식은 물론 남은 동생들까지 책임져야 하는 ‘K가장’이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지극히 보편적인 정서지만 이를 적절히 버무리면서, 콜롬비아·멕시코 마약 카르텔 이야기를 그린 ‘나르코스’ 등 기존 넷플릭스 마약물과 차별화를 꾀하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공개 5일 만에 스트리밍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에서 TV쇼 부문 전 세계 3위에 오르는 등 인기몰이 중이다.

15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윤종빈(43) 감독은 “실화가 가지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수리남’은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 수리남에서 마약 밀매조직을 운영했던 조봉행과 그를 잡기 위한 국정원 작전에 투입된 민간인 K씨의 실화에서 출발했다. 제작사(퍼펙트스톰필름)로부터 녹취록을 건네받은 윤 감독은 K씨를 세 차례 만나면서 강인구라는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경찰 간부 출신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 ‘범죄와의 전쟁’. [사진 CJ ENM]

경찰 간부 출신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 ‘범죄와의 전쟁’. [사진 CJ ENM]

“평범한 민간인이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국정원 작전에 투입됐다는 게 가장 납득이 안 됐어요. 대체 어떻게 살아왔으면 그럴 수 있을까 싶었는데 K씨를 만나보니 바로 알겠더라고요. 특수부대 출신처럼 강인한 외모에 강한 정신의 소유자이기도 하고, 어린 동생들 대학 보내고 시집 장가보내며 평생을 책임감으로 살아온 분이었어요.” 그는 “오히려 너무 영화적이어서 뺀 에피소드도 많다”며 “마약 대부 밑으로 들어가기 위해 일부러 머리를 빡빡 밀고 중국 갱들과 싸우고 다녔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너무 ‘디파티드’나 ‘무간도’에서 본 것 같은 클리셰 아니냐”고 말했다.

시리즈 초반 전사를 쌓는 데 공을 들인 것도 그 때문이다. “불필요할 수도 있는 전사를 덕지덕지 넣은 이유는 조금 처지더라도 그래야 강인구라는 인물의 행동을 납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깡패에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돈 깎으려고 협상을 하는 사람이니까 끝까지 임무를 수행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선수금은 받았고, 잔금이라는 동력이 있으니까요.”

이번에는 마약왕 조봉행의 실화를 바탕으로 ‘수리남’을 만들었다. [사진 넷플릭스]

이번에는 마약왕 조봉행의 실화를 바탕으로 ‘수리남’을 만들었다. [사진 넷플릭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조봉행 사건이나 수리남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수리남 정부는 자국을 마약 국가로 묘사한 것에 대해 제작사에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는 등 관련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윤 감독은 “거기에 대해서는 노코멘트 하겠다”고 밝혔다. “첫 대사가 ‘수리남이라는 나라를 아는가’여서 다른 제목은 떠오르는 게 없었고, 실화가 있기 때문에 가상의 국가로 설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수리남’의 영어 제목은 ‘나르코-세인츠(Narco-Saints·마약-성직자)’다.

실화에서 단서를 얻어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윤 감독의 장기이기도 하다. 장편 영화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2005)는 군대 경험담에서 출발했고, ‘공작’(2018)은 대북 공작원 흑금성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범죄와의 전쟁’ 역시 경찰 간부 출신인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개봉 당시 시사회에서 “대학교 1학년 때 돌아가신 아버지와 거의 소통이 없는 부자지간이어서 집에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닌 밖에서의 모습을 상상하며 시나리오를 썼다”고 밝히기도 했다. “‘범죄와의 전쟁’과 ‘수리남’은 같은 아버지 이야기지만 정반대예요. 전자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나쁜 짓을 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라면, ‘수리남’은 반대로 아버지이기 때문에 유혹적인 제안에도 선을 넘지 않죠.”

‘수리남’으로 시리즈에 처음 도전한 그는 시즌 2 제작 가능성에 대해 “‘수리남’이 4년 걸렸는데 시즌 2까지 하면 8년이나 내 인생을 바쳐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답했다. “개인적으로 장르물보다는 미니멀한 영화를 좋아하고 좀 더 사람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할 때면 제작사 반응이 시큰둥하더라고요. OTT가 다양해지면서 관객들이 극장에서 보고 싶어하는 건 좀 더 스펙타클한 영화가 된 것 같기도 하고… 판타지나 SF처럼 전혀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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