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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불화 기법으로 현대사회 풍자, 해외 컬렉터 사로잡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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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김훈규의 그림엔 동서양, 과거와 현재, 환상과 현실이 뒤섞여 있다. [사진 High Art]

김훈규의 그림엔 동서양, 과거와 현재, 환상과 현실이 뒤섞여 있다. [사진 High Art]

지난 6일 폐막된 프리즈 서울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갤러리가 있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온 화랑 ‘하이 아트(High Art)’였다. 부스엔 단 두 작가의 작품이 걸렸는데, 대부분의 작품이 ‘Hun Kyu Kim’ 작가의 것이었다. 갤러리 관계자는 “화가 이름은 김훈규”라며 “부스에 전시한 9점이 모두 판매됐다. 지금도 그의 작품을 기다리는 대기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김훈규(36)의 그림엔 토끼, 돼지, 호랑이, 원숭이, 물고기 등 의인화된 동물 캐릭터가 와글와글하다. 색채도 현란하다. 언뜻 귀여워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마주하기 불편한 요지경 세상이 보인다. 한곳에선 미친 듯이 쇼핑에 몰두하고, 또다른 곳에선 탱크가 전진하는 풍경, 나란히 앉아 각자 휴대폰에 정신 팔린 동물들이 딱 요즘 우리네 모습인 듯하다.

김훈규, Fitting Room No.7, 비단에 채색, 4540, 2022. [사진 High Art]

김훈규, Fitting Room No.7, 비단에 채색, 4540, 2022. [사진 High Art]

지난해 5월 파이낸셜 타임스와 뉴욕타임스는 아트바젤 홍콩에서 주목할 만한 작가로 그를 소개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총을 휘두르는 개, 휴대폰을 물어뜯는 용 등이 등장하는 김훈규의 그림은 재미있고 긴장감이 넘친다”고 평했다. 서울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영국왕립예술학교(RCA)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김씨는 현재 런던에서 작업하고 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김씨는 “전통적인 기법으로 비단에 채색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있다. 특히 지금 그리는 그림은 고려불화 기법이랑 거의 90% 이상 일치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작가와의 일문일답.

왜 고려불화 기법인가.
“불화의 섬세한 선과 화려한 색채가 주는 힘이 남다르다. 국내 단색화가들이 조선시대의 절제된 아름다움에서 한국의 정체성을 찾았다면, 나는 고려의 불화가 지닌 아름다움을 화면에 구현해보고 싶다.”
어떤 이야기를 담은 건가.
“지금 내 화두는 ‘시점(視點)’이다. 미술사적인 용어이기도 한데 나는 이것을 정치·사회적 맥락으로도 표현해보고 싶다. 국가마다, 사람마다, 각기 처한 위치마다 상황을 보는 관점이 모두 달라지지 않나. 내 화면엔 각기 다른 시점에서 본 상황이 다층적으로 등장한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지는 이야기를 한 화면에 표현하는 방식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계층 구조의 심화, 역사와 이데올로기 등 우리 사회에서 불편해하고 터부시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밌고 달콤하게 내 방식으로 건드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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