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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에서 변신해가는 배우, 그게 이정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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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배창호 감독 데뷔 40주년을 맞아 29일 재개봉하는 영화 ‘젊은 남자’(1994)에는 신인 시절 배우 이정재의 모습과 함께 당구장 등 X세대 문화가 담겼다. [사진 스튜디오보난자]

배창호 감독 데뷔 40주년을 맞아 29일 재개봉하는 영화 ‘젊은 남자’(1994)에는 신인 시절 배우 이정재의 모습과 함께 당구장 등 X세대 문화가 담겼다. [사진 스튜디오보난자]

“캐스팅하려고 몇몇 배우를 만났는데, 이정재는 자기표현을 할 줄 알고 집중력이 있달까. 반항적인 것 같으면서도 귀여운 구석이 있고 스타일이 좋았죠. 말 없는 것도 좋고요.”

배창호(69) 감독은 이정재(51)의 28년 전 모습을 의욕 넘치는 신인으로 돌이켰다. 배우 이정재의 스크린 데뷔작 ‘젊은 남자’(1994)가 배 감독 데뷔 40주년을 맞아 오는 29일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한다. ‘오징어 게임’으로 한국을 넘어 글로벌 스타가 된 이정재가 가장 애착 가는 작품으로 늘 꼽는 게 ‘젊은 남자’다. 그의 에미상 남우주연상 수상(한국 시간 기준) 이튿날인 14일 배 감독을 만났다.

‘젊은 남자’는 배 감독이 1994년 제작사 ‘배창호프로덕션’ 설립과 함께 감독 인생의 전환점을 꾀하며 만든 창립작. ‘X세대’로 불리던 신세대 관객들의 변화에 눈높이를 맞췄다. 당시 연기 경력이 1년밖에 안 된 스물셋 이정재를 주연으로 발탁했다. 기성 톱스타를 원하는 투자사를 직접 설득해서다.

“이정재, X세대 이미지에 딱 맞았다”

배창호 감독 데뷔 40주년을 맞아 29일 재개봉하는 영화 ‘젊은 남자’(1994)에는 신인 시절 배우 이정재의 모습과 함께 당구장 등 X세대 문화가 담겼다. [사진 스튜디오보난자]

배창호 감독 데뷔 40주년을 맞아 29일 재개봉하는 영화 ‘젊은 남자’(1994)에는 신인 시절 배우 이정재의 모습과 함께 당구장 등 X세대 문화가 담겼다. [사진 스튜디오보난자]

배 감독은 “표현 욕구, 성취욕이 강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X세대 이미지에 이정재가 딱 맞았다”고 설명했다. “촬영 중간에 이정재가 ‘감독님 소문 듣기론 배우들한테 지적을 많이 하신다는데 저한테는 왜 한마디도 안 하십니까. 혹시 불만이 있으십니까’ 하더군요. ‘아냐, 잘하고 있어. 지금처럼 하라’ 그랬죠. 촬영 중 고생이 많았는데 아주 잘해서 흡족해하고 있었거든요. 연기 경험이 적어 대사는 좀 서툴러도 센스가 있었죠.”

영화는 삼류 모델 한(이정재)이 세 여성과 얽히며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그렸다. 한은 또래 재이(신은경)와 자유분방한 연애를 즐기지만, 외제 차를 모는 연상의 승혜(이응경)에게 한눈에 반한다. 한은 성공을 위해 소속 에이전시 매니저 손 실장(김보연)과 육체적 관계까지 맺지만, 손 실장은 전속계약을 빌미로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는다.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청춘들을 착취하는 연예계 시스템을 고발한 대목이다.

배 감독은 종로, 대학로, 압구정 로데오 거리 같은 실제 서울 거리를 무대로 나이트클럽·당구장·삐삐 등 X세대 문화를 포착했다. 스물셋 이정재의 매력이 상영시간 116분을 꽉 채운다. 한의 개성 강한 패션, 반지 등 장신구는 이정재가 의상감독과 의논해 마련했다. “이 친구가 의상 협찬도 직접 받아왔다”고 배 감독은 칭찬했다.

딱 한 번 꾸지람도 했단다. 극 중 한이 술에 취해 고층빌딩 난간을 혼자 걷는 장면에서다. “그냥 뛰어내리기로 한 장면을 이 친구가 몸을 기울여서 쓰러지는 것처럼 하다가 툭 뛰어내렸어요. 스태프들이 비명을 지를 정도로 놀랐죠. 본인은 더 잘하려고 계산해서 했겠지만, ‘약속한 걸 해야지, 왜 놀라게 했냐’고 유일하게 혼을 냈죠.”

지난 15일 압구정CGV에서 열린 ‘배창호 감독 데뷔 40주년 특별전’ 개막식. 왼쪽부터 배우 김희라·김보연, 배 감독. [연합뉴스]

지난 15일 압구정CGV에서 열린 ‘배창호 감독 데뷔 40주년 특별전’ 개막식. 왼쪽부터 배우 김희라·김보연, 배 감독. [연합뉴스]

‘젊은 남자’는 1994년 8월 촬영을 시작해 같은 해 12월 17일에 서둘러 개봉했다. 배 감독은 “이정재가 그때 군대에 가야 해서 ‘젊은 남자’를 개봉하고 사인회만 하고 입대했다. 드라마 ‘모래시계’(1995)를 서둘러 찍던 때라 우리 촬영 스케줄도 굉장히 힘들었다”고 돌이켰다. “배우들을 보면 그 기운이 있다. 대중스타로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당대에 주목받으려면 운이 맞아야 하는데 이정재는 꽤 맞았다”고 했다.

반응이 뜨거워 전 국민의 ‘귀가시계’가 됐던 ‘모래시계’는 이정재를 대체불가 스타로 만든 출세작이었다. 과묵한 보디가드 이정재가 상대역 고현정을 지키려다 숨을 거두는 장면은 시청률이 사상 처음으로 60%를 넘기도 했다.

배 감독은 이후 ‘흑수선’(2001)까지 이정재와 영화 2편을 함께했다. 이정재에 대해 “한 톤으로 얘기하기 어렵다”며 “자기 개성을 밀고 나가는 배우가 있다면, 무채색에서 변신해가는 배우가 있는데 이정재는 후자”라고 했다.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헌트’에 대해 “재밌게 봤다. 어려운 작업인데 잘해냈다. 대중적으로 흥미있게 잘 만들었더라”고 말했다. 인간적으로도 “상당히 의리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도 그 친구를 아꼈고 그 친구도 나를 좋아했다”며 “명절에 선물 그만 보내라고 할 정도였다”고 소개했다. “이번 ‘젊은 남자’ 개봉 때문에 문자를 보냈더니 영국에서 촬영이 잡혀있다더군요. 그게 ‘스타워즈’ 시리즈였죠.”

‘꼬방동네 사람들’ ‘고래사냥’ 등 상영

배 감독은 28일까지 특별전을 연다. 개막작인 배 감독의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1982)부터 ‘고래사냥’(1984), ‘깊고 푸른 밤’(1985),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젊은 남자’, ‘러브 스토리’(1996) ‘정’(2000) 등 대표작을 상영하고, 김보연·최불암·황신혜, 가수 김수철 등과 배 감독이 관객과의 대화도 진행한다. 이정재는 특별전 축하 영상에서 “필모에서 꼭 하나만 꼽자면 ‘젊은 남자’”라며 “데뷔작 때 배 감독님이 너무 많은 좋은 설명과 함께 아버지처럼 푸근하게 저를 보듬어주셔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 감독님 덕분에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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