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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전례없는 확장억제…"北미사일 막을 '발사의 왼편' 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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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핵ㆍ미사일에 맞서 기존의 핵ㆍ재래식ㆍ미사일 방어에 더해 우주ㆍ사이버ㆍ전자전을 동원하면서, 동시에 군사적 수단 말고도 외교ㆍ정보ㆍ경제적 수단을 포함하는 통합ㆍ입체적 확장억제 전략을 펴기로 했다. 북한이 지난 8일 ‘핵 포기 불가’와 ‘선제 핵 공격’을 법으로 못박고, 7차 핵실험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양국은 전례 없이 압도적이며 결정적으로 대응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조현동 외교부 1차관과 신범철 국방부 차관, 보니 젠킨스 미 국무부 군비통제ㆍ국제안보차관과 콜린 칼 국방부 정책차관이 16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연 한ㆍ미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회의에서다.

미국 버지니아주 포트 미드의 국가안보국(NSA), 미군 사이버사령부와 중앙안보단과 같은 부지에 있다. 세곳의 장은 미 사이버사령관(대장)이 맡는다. 미 사이버사령부는 2014년부터 '발사의 왼편'에 대해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AP=연합뉴스

미국 버지니아주 포트 미드의 국가안보국(NSA), 미군 사이버사령부와 중앙안보단과 같은 부지에 있다. 세곳의 장은 미 사이버사령관(대장)이 맡는다. 미 사이버사령부는 2014년부터 '발사의 왼편'에 대해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AP=연합뉴스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는 미국이 필요할 경우 핵 억제력을 동맹국이나 협력국을 제공하는 방위공약을 뜻한다. 확장억제가 통하려면 미국이 자국의 피해를 감수하고도 확장억제 수단을 쓰겠다는 의지가 분명해야 한다. EDSCG는 확장억제에 대한 미국의 의지를 확인하면서, 한국의 의견을 반영하는 고위급 회의체다.

북한이 핵ㆍ미사일 고도화의 발동을 건 2016년 12월 처음 열렸다. 그러나 2018년 1월 2차 EDSCG에선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당시 문재인 정부가 북한을 의식해 소극적으로 임했기 때문이었다. 익명의 정부 소식통은 “2018년 한국은 입을 다물었고, 미국은 팔짱만 꼈다”고 전했다.

4년 8개월 만에 재가동한 3차 EDSCG에서 한ㆍ미는 “한ㆍ미는 북한의 어떠한 핵 공격도 압도적이며 결정적인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공동성명)고 강조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압도적’과 ‘결정적’에 대해 “북한에게 섣부른 행동을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미국이 한국에 대한 안보공약을 강경한 어조로 풀어쓴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16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한 ㆍ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회의를 열고 북핵 등 현안을 논의했다. 왼쪽부터 보니 젠킨스 미 국무부 군비통제·국제안보차관, 신범철 국방부 차관, 조현동 외교부 1차관, 콜린 칼 미 국방부 정책 차관. [주미한국대사관 제공]

16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한 ㆍ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회의를 열고 북핵 등 현안을 논의했다. 왼쪽부터 보니 젠킨스 미 국무부 군비통제·국제안보차관, 신범철 국방부 차관, 조현동 외교부 1차관, 콜린 칼 미 국방부 정책 차관. [주미한국대사관 제공]

이번 EDSCG에선 한ㆍ미는 압도적이며 결정적 확장억제(대응)에 대해 두 개의 축으로 얼개를 짰다. 한 축은 통합적 전략이다. 북한의 위협을 미리 막는데 군사적 수단 이외 외교적, 정보적, 경제적 수단까지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양국은 ‘모든 가용한 수단’과 ‘국력의 모든 요소’라는 문구로 통합 확장억제를 구체화했다. 미국이 북한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해 확장억제에 대한 담보력을 높이겠다는 의미다. 전경주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확장억제를 더 실질적이고 더 효과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선 미국이 확장억제에서 한국의 지분을 늘리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해석도 있다.

또 다른 축은 입체적 전략이다. 확장억제의 군사적 수단으론 핵우산 이외 스텔스 전투기와 같은 재래식 무기,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와 같은 미사일 방어능력도 있다. 여기에 우주ㆍ사이버ㆍ전자전과 같은 ‘진전된 비핵 능력’을 추가하기로 했다. 또 다른 익명의 정부 소식통은 “한국은 이전 정부에서부터 진전된 비핵 능력을 요구했지만, 미국이 딱 부러지게 답한 적 없다”고 귀띔했다.

신범철 국방부차관이15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에 위치한 앤드루스 합동기지를 방문하여 미측 확정억제 담당 인사들과 B-52 전략폭격기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국방부 제공

신범철 국방부차관이15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에 위치한 앤드루스 합동기지를 방문하여 미측 확정억제 담당 인사들과 B-52 전략폭격기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국방부 제공

신범철 국방부 차관은 EDSCG 회의 후 미국 사이버사령부를 찾아 한ㆍ미 연합 사이버 작전 방안을 논의한 일정이 주목할 만하다. 사이버사령부는 사이버 전쟁을 벌이면서 네트워크를 방어하는 사령부다. 이곳의 사령관(대장)이 국가안보국(NSA) 국장과 중앙안보단(CSS) 단장을 같이 맡는다.

미국이 ‘발사의 왼편(Left of Launch)’을 한국에 보장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발사의 왼편은 발사의 이전 단계인(왼편) 발사준비’ 에서 미사일 기지나 이동식 발사대(TEL)를 무력화하는 것을 뜻한다. 미사일 통제 시스템을 해킹하거나 미사일에 고출력 마이크로파(HPM)를 쏴 유도장치를 망가뜨리는 방법이 있다.

미국은 2014년부터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사전에 포착할 경우 수 초 내 무력화하는 사이버ㆍ전자전 능력을 키워왔다.

단거리 로켓탄과 박격포탄을 격추하기 위한 이스라엘의 아이언돔 방공시스템이 지난달 7일 이스라엘 남부 아스글론(Ashkelon) 상공에서 가자지구에서 발사된 로켓탄을 격추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단거리 로켓탄과 박격포탄을 격추하기 위한 이스라엘의 아이언돔 방공시스템이 지난달 7일 이스라엘 남부 아스글론(Ashkelon) 상공에서 가자지구에서 발사된 로켓탄을 격추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한ㆍ미는 지난 5월 한ㆍ미 정상회담의 합의 사항인 전략자산의 적기(適期) 전개를 공조하기로 밝혔다. 공동성명에서 양국은 지난 7월 F-35A 스텔스 전투기의 연합훈련과 이번 주 로널드 레이건 핵추진항공모함강습단의 부산 방문을 전략자산 전개의 사례로 들었다. 정부 소식통은 “다음 달부터 미국의 전략자산이 꾸준히 한국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윤석열 정부의 북핵 정책인 ‘담대한 구상’이 가진 목표에 대해 강력한 지지 입장을 다시 밝히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조율된 노력을 지속해 나가기로 약속했다.

 작전을 수행중인 미국의 핵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CVN-76). 레이건호는 이번주 부산항에 입항해 연합훈련을 할 예정이다. 일본 요코스카가 모항인 레이건함은 지난달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당시 중국의 군사적인 위협에 맞서 대만 인근 해역에서 활동해왔다. 연합뉴스

작전을 수행중인 미국의 핵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CVN-76). 레이건호는 이번주 부산항에 입항해 연합훈련을 할 예정이다. 일본 요코스카가 모항인 레이건함은 지난달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당시 중국의 군사적인 위협에 맞서 대만 인근 해역에서 활동해왔다. 연합뉴스

또 양측은 EDSCG를 정례화하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회의를 매년 개최하기로 하고, 내년 상반기 실무급 회의에서 다음 회의를 준비하기로 했다.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은 회의 후 특파원 간담회에서 “확장억제를 위한 외교ㆍ국방 공조체제를 사실상 제도화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전반적으로 올해 EDSCG에선 한ㆍ미가 문재인 정부에서 낮아진 확장억제의 수준을 정상적으로 되돌렸다는 데 성과가 있다”면서도 “한국이 북한의 도발 단계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맞춤형 확장억제 전략을 주도적으로 짠 뒤 이를 미국에 제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야 확장억제의 신뢰성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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