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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촉함 만드는 '이것'이 비법…계란말이로 100년 자리 지켰다 [백년가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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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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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힘, 믿으십니까. 백년을 목표로 달려가는 가게, 혹은 이미 백년을 넘어서 역사를 쌓은 곳들은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을까요. 일본 동네 곳곳에 숨어있는 ‘백년 가게’를 찾아가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상인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첫 이야기는 츠키지의 명물, 계란말이집 쇼로(松露)의 이야깁니다.

2년 뒤면 백년을 맞이하는 계란말이집 쇼로. 아침 6시면 문을 연다. 가게 안쪽 작업대에서 '나가사키 군'으로 불리는 젋은 직원이 계란말이를 만들고 있다. 올해로 12년, 베테랑이다. 김현예 특파원

2년 뒤면 백년을 맞이하는 계란말이집 쇼로. 아침 6시면 문을 연다. 가게 안쪽 작업대에서 '나가사키 군'으로 불리는 젋은 직원이 계란말이를 만들고 있다. 올해로 12년, 베테랑이다. 김현예 특파원

꼬박 5시간이다. 한 손엔 두툼하고 기다란 나무젓가락을, 또 한 손에는 무쇠로 만든 프라이팬을 들고 불 앞에서 춤추듯 리드미컬한 동작을 반복한다. 계란말이다. 국자로 달걀물을 떠내거나 어른 손바닥 크기도 넘는 두툼하고 샛노란 계란말이를 손목을 튕겨 뒤집을 땐, 동작이 깔끔하기 짝이 없어 탄성마저 나온다. 매일 하루도 쉬지 않고 5시간, 12년을 계란말이를 해온 젊은 직원의 굳은살 박힌 손은 불에 덴 듯 벌겋게 달아올라 있다. 무려 12년, 청춘을 불 앞에서 불태우고 있는 직원은 마지막 프라이팬을 내려놓고서야 웃었다.

지난 1일 오전 11시반이 지나서야 불 앞에서 해방(?)된 쇼로의 베테랑 직원. 12년을 매일같이 계란말이를 하다보니 손바닥이 벌겋게 달아올라있다. 사진 김현예 특파원

지난 1일 오전 11시반이 지나서야 불 앞에서 해방(?)된 쇼로의 베테랑 직원. 12년을 매일같이 계란말이를 하다보니 손바닥이 벌겋게 달아올라있다. 사진 김현예 특파원

하루 달걀 2만여 개  

지난 1일 일본 도쿄(東京), 츠키지(築地) 시장에 있는 계란말이 전문점 쇼로(松露)를 찾았다. 한글로 풀면 ‘솔잎에 맺힌 이슬’이란 의민데, 계란말이를 선뜻 떠올리기 어려운 이름이다. 그 배경엔 이유가 있다. 사이토 겐이치로(斎藤賢一郎·45) 4대 사장의 설명이다.

그의 4대조인 할아버지 사이토 오토마츠(齋藤乙松)는 나이 11살에 초밥을 배우러 당시로선 도쿄에서 유명한 초밥집 ‘쇼로’에 들어갔다. 쇼로는 니혼바시 근처에 있는 유명한 초밥집이었다. 혹독한 수업을 견디고 초밥을 쥘 수 있게 된 오토마츠는 평이 좋았다. 츠키지에 초밥 가게를 차리기로 했는데, 친정 같은 쇼로에서 가게 이름을 분점처럼 그대로 사용해도 된다는 허락(暖簾分け)을 해줬다. 1924년이었다.

지난 1일 오전 11시 츠키시 시장에 있는 계란말이 전문점 쇼로 앞. 여느 시장처럼 상인들은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어서 오세요'라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쇼로 가게 앞에서 손님들이 계란말이를 사고 있다. 사진 김현예 특파원

지난 1일 오전 11시 츠키시 시장에 있는 계란말이 전문점 쇼로 앞. 여느 시장처럼 상인들은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어서 오세요'라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쇼로 가게 앞에서 손님들이 계란말이를 사고 있다. 사진 김현예 특파원

입소문을 탈 정도로 맛집 소리를 들었지만, 위기가 닥쳤다. 당시 일본은 물자가 부족했다. 먹거리 역시 그랬다. 초밥 재료를 구하기조차 쉽지 않아 경찰 눈을 피해 ‘뒷거래’를 해야 할 정도였다. 보다 못한 아내는 묘수를 냈다. 가게 앞에 매대를 열고, 초밥용 계란말이를 하기 시작했다. 매대 크기는 약 120㎝. 갓 만든 계란말이의 고소한 향은 손님을 끌기 시작했다. 맛까지 좋다고 소문이 나면서 계란말이는 초밥을 제치고 어느새 주업이 됐다. 계란말이 전문점 쇼로의 탄생이었다. 정작 초대 사장이 초밥을 쥐는 법을 배웠던 본점 쇼로는 이후 사라졌고, 살아남은 분점 쇼로는 이제 근 백 년을 바라보는 역사 있는 계란말이집이 됐다.

쇼로에서 사용하는 계란은 하루 약 2만개. 별도 계약을 맺은 농가에서 40여 년째 갓 낳은 달걀을 보내준다. 사이토 사장은 매대 뒤쪽에 자리 잡은 조리실을 보여줬다. 오전 11시가 조금 지난 시간, 네댓명이 일렬로 서서 계란말이를 만들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계란말이를 만드는 과정이 ‘컨베이어 벨트’처럼 이뤄진다는 점인데, 이 방식은 쇼로가 고안해 다른 계란말이집에서도 쓰이고 있다고 한다.

계란말이를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먼저 팬에 기름을 두른다. 달궈진 팬에 계란 물을 한 국자 붓고, 젓가락을 이용해 계란 모양을 잡는 작업을 몇번씩 반복하면서 점점 두껍게 만든다. 옆으로 팬을 옮기면 옆 작업자가 뒤집거나, 나무로 눌러 계란 모양을 잡는다. 이런 과정을 반복 또 반복해, 두툼한 계란말이 하나가 완성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5분. 다 만들어진 계란말이를 옮기고 나면 작업자들은 팬에 기름을 다시 둘러 처음 작업자에게로 보내는데, 이때는 비스듬히 만들어진 레일이 깔린 작업대를 사용한다. 경사진 레일을 타고 팬은 맨 앞에 서 있는 직원에게 보내진다. 하루에 만드는 양이 어마어마하다 보니, 고안한 방식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음식

지난 1일 쇼로에서 만들어진 마지막 계란말이를 들어보이고 있는 사이토 겐이치로 사장. 하나당 계란 8개 정도가 들어간다고 했다. 갓 만든 계란말이는 황금색으로 부푼 상태라, 바로 판매하지 않고 잠시 식힌 뒤 포장해 판매를 한다. 첨가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 빨리 먹어야 하는 것이 '단점'이라고 한다. 사진 김현예 특파원

지난 1일 쇼로에서 만들어진 마지막 계란말이를 들어보이고 있는 사이토 겐이치로 사장. 하나당 계란 8개 정도가 들어간다고 했다. 갓 만든 계란말이는 황금색으로 부푼 상태라, 바로 판매하지 않고 잠시 식힌 뒤 포장해 판매를 한다. 첨가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 빨리 먹어야 하는 것이 '단점'이라고 한다. 사진 김현예 특파원

사이토 사장은 “계란말이는 가장 쉬운 음식이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음식”이라고 했다.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니, 그는 ‘엄마의 맛’ 이야기를 꺼냈다. 먹을 것 넘치는 요즘은 다른 얘기가 됐지만, 달걀말이는 일본인이나 우리에겐 특별한 음식이다. 운동회 때든, 학교 도시락이든 엄마가 싸주는 반찬의 대표 명사였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저는 부모님이 계란말이집을 하니까 운동회 때면 아예 계란말이를 한판 뭉텅이로 가져간 거지만요.” 웃음을 터트린 그는 이 ‘엄마의 맛’, 모두 아는 맛이지만, 정작 맛있게 만들기는 참 어려운 계란말이 맛을 업으로 삼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쇼로의 맛은 2대째에 자리를 잡았다. 전후, 설탕이 귀하던 과거엔 달착지근한 초밥용 계란말이가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쇼로는 달랐다. 단맛은 줄이고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달걀 특유의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초밥용이 아닌 계란말이 자체로도 즐길 수 있도록 밑국물을 많이 사용해 부드럽고 촉촉하게 만들었는데, 이 밑국물 제조는 우리로 치면 ‘며느리도 모르는’ 가게만의 비법으로 전수되고 있다.

가업을 잇는다는 것

쇼로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계란말이. 맨 마지막 단계에선 나무틀로 눌러 모양을 잡아준다. 사진 김현예 특파원

쇼로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계란말이. 맨 마지막 단계에선 나무틀로 눌러 모양을 잡아준다. 사진 김현예 특파원

츠키지엔 한때 10여 곳이 넘는 계란말이 집이 성했을 정도로 계란말이는 유명세를 탔다. (지금도 일본에서 계란말이 집 대여섯 곳이 몰려있는 곳은 츠키지 정도가 손에 꼽힌다고 한다.)

백 년을 바라보는 가업(家業)은 어떤 의미일까. 사이토 사장은 웃었다. 장남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야구를 시작해, 대학에 들어가서도 포수로 활동했다. 쇼로 가게가 있는 건물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살았을 뿐, 부모로부터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특별히 듣지 않고 자랐다. 우리로 치면 초등학교 시절, 글쓰기 시간에 ‘레스토랑을 하고 싶다’고 쓰긴 했지만, 부친을 따라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못 했다고 했다.

야구를 하던 대학교 1학년 때, 미국에서 경기가 있었다.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문득 ‘뭘 위해 야구를 하고 있지?’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 길로 그는 야구를 그만두고 계란말이 가게에 취업했다. 1997년 2월의 일이었다. 가업을 잇겠다고 대학을 포기하고 들어온 아들을 걱정한 건 어머니였다.

사이토 사장은 다른 직원들과 똑같이 조리대에 서서 계란말이를 배웠다. 꼬박 몇 년이 걸렸는데, 쇼로의 계란말이는 밑국물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굽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팬은 무겁기 짝이 없어 일을 마치면 뭔가 손에 쥘 힘도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고됐고, 손은 굳은살투성이가 됐다.

계란말이 가게를 한다고?

 지난 1일 쇼로 간판 앞에서 가게 이름을 딴 계란말이 쇼로를 들어보이고 있는 사이토 겐이치로 사장. 대학교 1학년 때까지 야구 선수로 활동을 했다. 사진 김현예 특파원

지난 1일 쇼로 간판 앞에서 가게 이름을 딴 계란말이 쇼로를 들어보이고 있는 사이토 겐이치로 사장. 대학교 1학년 때까지 야구 선수로 활동을 했다. 사진 김현예 특파원

계란말이가 그의 업이 됐지만, 현실에서 만나는 상황은 예상 밖이었다. 무슨 일을 하느냐는 질문에 ‘계란말이를 판다’고 하면 상대의 눈이 동그래지기가 일쑤였다. 츠키지에선 명물 소리를 들었고, 미쓰코시 긴자점(1975년)까지 낸 곳이었지만, 지척인 긴자(銀座)만 가도 쇼로를 알아봐 주는 이가 없었다. 이에 그는 부친과 다르게 움직였다. 3대 경영자였던 부친만 해도 유명 백화점에서 찾아와 “계란말이를 함께 팔아보자”고 제안해도 “글쎄”라며 선뜻 나서질 않았다. 반면 그는 나고야(名古屋)며 가나자와(金沢), 북쪽으론 홋카이도(北海道)까지 찾아가 영업망을 늘렸다. 7~8년 전엔 대만에도 들러 해외 판로를 개척할 정도로 열정을 불태웠다. ‘츠키지 쇼로’라는 브랜드를 내세워 새로운 도전에도 나섰다. 달걀에 한해선 자신이 있었던 터라, 1년 넘는 시간을 공들여 제품 개발에 나섰다. 가족들이 선택한 건 신선한 달걀을 사용한 푸딩이나 슈크림빵 같은 달콤한 ‘스위츠’. 지난해 본점 인근에 새롭게 가게를 열었다.

“지키면서도 도전한다”

계란말이를 만드는 데 꼭 있어야 하는 나무 젓가락. 계란물을 부은 뒤 부글부글 올라오면 이 젓가락을 사용해 뒤집어 두텁게 만든다. 이 때문에 젓가락도 길고 두툼하다. 계란말이를 만드는 직원들은 각자의 손에 맞는 젓가락이 있어 이를 사용한다고 했다. 사진 김현예 특파원

계란말이를 만드는 데 꼭 있어야 하는 나무 젓가락. 계란물을 부은 뒤 부글부글 올라오면 이 젓가락을 사용해 뒤집어 두텁게 만든다. 이 때문에 젓가락도 길고 두툼하다. 계란말이를 만드는 직원들은 각자의 손에 맞는 젓가락이 있어 이를 사용한다고 했다. 사진 김현예 특파원

납품처가 늘어나면서 공장을 세워야 할 정도로 사업은 순조롭게 굴러가지만, 걱정거리는 많다. 그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 건 바로 쇼로의 맛을 지키는 일이다.

사이토 사장은 “항상 위기감이 있다”고 했다. ‘손님이 정말 계속 와줄까, 질려하진 않을까’하는 근심부터, ‘뭔가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다. 이 모든 것이 “쇼로라는 간판이 있기 때문”인데,  그는 “쇼로의 맛을 지키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세상의 변화에 또 대응하지 않으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말을 이었다. “지키면서도 도전해야 하는 것이 쇼로를 이어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얘기다.

매일 새벽 6시에 가게 문을 열고 오후 3시면 문을 닫는 츠키지에서, 그는 어떤 마음으로 계란말이를 팔고 있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도 바뀌는 것 같다”면서 그는 코로나 이야기를 꺼냈다. 경험하지 못한 질병으로 인해 가게를 여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시간이 2~3년 이어지면서 “일하는 사람이 행복하지 않으면 좋은 상품을 만들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어려웠던 시간을 이겨내며, 가족의 소중함,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는 의미다. 꼭 하고 싶은 한 마디를 부탁하자, 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하는 말은 이랬다. “손님들이 드시는 순간은 사실 볼 수는 없지만요. 식탁에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음식이 될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해 만들고 있습니다.”

한 판에 680엔, 우리 돈 6600원에 살 수 있는 백 년을 바라보는 계란말이를, 츠키지 쇼로에선 이렇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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