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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 쓰면 전쟁 승리한다? 한미동맹 과소평가한 北의 오판 [Focus 인사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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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전에 없던 ‘전략적 명료성’을 추구하고 있다. 추석을 앞둔 9월 8일,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시정연설과 핵무력정책에 관한 법을 공개했다. 김정은의 입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 비핵화에 반하는 의지와 핵사용 구상에 대해 국내외에 명확한 뜻을 드러냈다.

시정연설에서는 제재가 100년간지속한다 하더라도 사회주의 전면적 발전을 추구하고야 말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드러냈다. 이를 위해 절대로 비핵화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핵은 ‘국체’이고, 핵보유국의 지위는 ‘불가역적인 것’이 될 것이라 했다. 북한이 받는 제재가 핵무기 때문인데도, 핵이라는 법적 무기를 보유함으로써 보건ㆍ경제 등 다른 사업 전반에서의 전면적 발전을 위한 역사적 진군과 투쟁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폈다.

 8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7차 2일차 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는 김정은 당 총비서. 이 자리에서 핵무력 정책과 관련한 법령이 채택됐다. 노동신문=뉴스1

8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7차 2일차 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는 김정은 당 총비서. 이 자리에서 핵무력 정책과 관련한 법령이 채택됐다.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불과 4개월 전 무렵인 지난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창건 90돌 열병식 연설을 통해 핵의 ‘사용’ 가능성과 그 조건에 대해 직접 언급한 바 있다. 당시 “어떤 세력이든 북한의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 할 경우”라는 핵사용 조건에 대해 전문가들은 그 의미를 구체적으로 해석하고자 했다. 북한은 이러한 관심에 답하듯, 이번 핵무력정책에 관한 법에서 사용의 원칙과 사용할 경우를 구체화했다.

북한은 핵무기가 외부의 침략과 공격에 대처한 최후의 수단임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고 밝혔다. 또한 “비핵국가들이 다른 핵무기보유국과 야합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이나 공격행위에 가담하지 않는한” 핵무기로 위협하거나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해석하자면, 한국이나 일본이 미국과 함께 북한에 위협을 가하면 핵무기로 위협하거나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원칙으로 명문화한 것이다.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 천궁-II의 발사대. 3축 체계의 한 축인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의 핵심 전력이다. 한화디펜스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 천궁-II의 발사대. 3축 체계의 한 축인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의 핵심 전력이다. 한화디펜스

핵을 사용할 경우에 대해서는 북한의 “국가지도부”와 “국가핵무력지휘기구”, “중요 전략적 대상”들에 대한 핵 또는 비핵 공격이 감행되거나 임박했을 경우를 포함했다, 이는 한국 국방부가 발전시켜온 이른바 3축 체계의 킬체인(Kill Chain)과 응징보복(KMPR)의 타격 대상들이다. 또한 “국가핵무력에 대한 지휘통제체계가 적대세력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하는 경우”를 언급하면서, 설령 핵지휘통제체계가 공격을 받았다 하더라도 “핵타격이자동적으로 즉시 단행”될 수 있다고 밝혀두었다.

또한 북한은 유사시 전쟁의 확대와 장기화를 막고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적 필요로 핵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전쟁 초기나 중기에 핵무기를 사용하여 북한이 승리하는 쪽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처럼 핵무기 사용으로 상대의 전쟁 의지를 없애고 장기전을 막을 수 있다는 판단은 지난 4월 5일 김여정 부부장의 언급에서도 드러나 있었다. 북한이 핵을 사용한다면, 한미가 보복하지 않거나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법령에 여전히 모호한 부분을 남겨두기는 했다. 기타 국가의 존립과 인민의 생명안전에 파국적인 위기를 초래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에도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핵정책의 명료성이 크게 높아졌다. 굳이 그렇게까지 공개할 필요가 없는데 구체적으로 부연 설명하면서까지, 북한은 북한 입장에서 핵사용을 고려할만한 위협 상황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이처럼 전반적으로 핵정책의 명료성을 높인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억제 효과를 높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핵보유국들은 계산된 전략적 모호성을 추구하고 있고, 북한도 그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료성을 추구할 때는, 오인과 오판에 의한 전쟁의 위험성이 커질 때, 즉, 상대가 나의 의지와 능력을 명백히 과소평가 혹은 과대평가한다고 믿을 때이다. 북한의 경우는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의지와 능력을 과소평가한다고 판단해 이 같은 명료성을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억제 효과를 높이고자 했던 북한의 의도와 달리, 한국에선 북한 핵미사일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욱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불가피한 안보 딜레마 속에서, 현재 거론하고 있는 전술핵 재배치, 나토식핵공유, 자체 핵무장 등 정책적 대안은 분명히 중장기적으로 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선적으로는 북한이 과연 이 같은 의지에 부합한 탐지ㆍ지휘통제, 발사 능력을 갖고 있는지 냉정하게 검토하면서, 한미동맹의 의지와 능력을 보다 명료하게 밝히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북한이야말로 한미동맹의 의지와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ㆍ미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에서 양국은 북한의 7차 핵실험 준비·핵무기 보유 법제화 등으로 한반도 정세가 엄중한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공유하면서 전술핵 등 북한의 어떠한 공격에 대해서도 압도적, 결정적으로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 한ㆍ미 동맹은 어떤 상황에도 대비하고 있음을 재확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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