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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전 태아 심장박동 먼저 들어라"…헝가리 시행령 논란

중앙일보

입력

2022년 7월 6일 미국 LA의 한 낙태 클리닉에서 임신부가 초음파 검사를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2022년 7월 6일 미국 LA의 한 낙태 클리닉에서 임신부가 초음파 검사를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앞으로 헝가리에서 낙태를 원하는 여성은 태아의 심장박동 소리를 먼저 들어야 한다고 영국 더 타임스가 1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핀테르 산도르 헝가리 내무부 장관은 최근 '낙태 전 태아 심박음 청취 의무화' 시행령을 공표했다.

지난 12일 핀테르 장관은 "헝가리 국민 약 3분의 2가 아이의 인생이 첫 심장박동과 함께 시작된다고 생각한다"며 "현대 의료장비는 임신 초기부터 심장박동을 감지할 수 있으며, 임신부는 더 종합적인 정보를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헝가리는 임신 12주까지 낙태가 허용된다. 그 이후 시기에는 심각한 건강 문제가 우려될 때만 낙태가 가능하다.

이 시행령에 따라 앞으로 헝가리에서 낙태하려면 임신부가 '태아의 생명 기능을 보여주는 요소(심장박동)를 분명히 확인했다'는 내용이 담긴 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

보수 성향 국회의원들은 이 제도를 '생명의 기회'라고 표현하며 반겼지만, 인권단체들은 이 제도가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해 이미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여성들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며 반발했다.

헝가리의 한 여성단체는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의 출생률 올리기 프로젝트"라며 "오르반 총리가 자신을 기독교적 가치와 전통적인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대변인처럼 포장했지만, 낙태를 대부분 불법화하는 폴란드의 사례를 따르는데 그쳤다"고 비판했다.

더타임스는 극우 성향인 오르반 총리가 사실상 낙태가 불법인 폴란드, 독일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헝가리의 낙태 관련 법안을 강화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낙태를 태아의 심장박동과 연관 짓는 법률은 최근 여러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낙태를 사실상 합법화한 로 대 웨이드(Roe v. Wad) 판결이 지난 6월 뒤집힌 이후 태아의 심장박동이 처음 감지되는 지점부터 대부분의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을 여러 주에서 발효했다.

태아의 심장 활동은 임신 6주차부터 감지될 수 있다고 하지만 의사들은 '태아의 심장박동'이라는 용어 자체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시기 태아에게는 아직 심장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장 박동'처럼 들리는 것은 초음파 기계가 태아의 전기 펄스를 소리로 바꿔 들려주는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한편 오르반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롤모델로 삼는 '리틀 푸틴'으로 통하며 지난 4월 총선에서 승리해 4연임에 성공했다.

그는 1998년 35세의 나이로 총리가 돼 유럽 최연소 총리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2002년 사회민주당에 정권을 내줬다가 2010년 재집권한 뒤 이번 총선까지 승리하면서 유럽연합(EU) 국가 중 최장기 집권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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