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스토킹범죄 엄벌” 뒷북 대책에 민심 분노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805호 01면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16일 오후 한 시민이 추모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시민들이 남긴 포스트잇에는 추모 메시지와 함께 강력한 처벌과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연합뉴스]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16일 오후 한 시민이 추모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시민들이 남긴 포스트잇에는 추모 메시지와 함께 강력한 처벌과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연합뉴스]

신당역 스토킹 살인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시민들은 스토킹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경찰,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데도 구속영장 발부에 소극적인 법원, 직원 간에 스토킹 문제가 불거졌는데도 수수방관한 서울교통공사 모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분노했다. 정부는 뒤늦게 스토킹 범죄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나섰다.

16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는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한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추모 공간에 추모 쪽지와 꽃다발, 커피 등을 놓으며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특히 ‘살아서 퇴근하고 싶다’는 쪽지 등 법원과 경찰의 미온적인 대응을 질타하는 내용이 많았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사건 당일 현장을 방문해 “국가가 피해자를 지켜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16일 스토킹 처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반의사불벌죄’로 규정돼,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는 현실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검찰도 초기부터 가해자를 접근 금지하고, 구금장소에 유치하는 등 신속한 잠정조치를 취하는 한편 구속영장을 적극 청구해 이전보다 더 엄정하게 대응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관련기사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정책만으로 스토킹을 막을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성범죄를 전문으로 다루는 이은의 변호사는 “지난해 10월 제정한 스토킹 처벌법 자체에 가해자의 인신 구속이나 동선을 차단하는 조치가 충분치 않았다”며 “사법부도 가해자의 보복 범죄 가능성을 증거 인멸 우려로 인식해 구속영장 발부 등에 반영해야 하는데 좀 안일하게 보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스토킹 범죄자들의 행위의 정도를 수치화해 ‘이 사람은 몇점 이상의 고위험자니까 긴급응급 조치가 필요하다’, ‘이 사람은 보복우려가 있으니 구속이 필요하다’는 식의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에 신고된 스토킹 건수는 2020년 4515건, 2021년 1만4509건, 올해 1~7월에도 1만6571건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반면 구속수사율은 3.6%에 불과하다.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된 지난해 10월 이후 총 7083명이 검거돼 253명이 구속됐다.

그 사이 스토킹과 보복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엔 서울 중구의 오피스텔에서 30대 여성이 전 남자친구의 스토킹을 당하다 흉기에 찔려 숨졌고, 지난 2월엔 서울 구로구에서 스토킹으로 신변 보호를 받던 40대 여성이 전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했다. 지난 6월 경기 안산에서도 60대 남성이 교제하다 헤어진 40대 여성이 만나주지 않는다며 흉기를 휘두른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코로나19 확산때 감염자가 집 밖으로 나서면 바로 방역 당국에 통보하는 휴대전화 앱을 활용했는데 왜 스토커에게는 적용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법원 스토킹 중범죄 인식 미흡으로 구속률 낮아…“구속사유에 ‘보복 우려’ 포함 하자”

16일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의 피의자 전모 씨가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16일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의 피의자 전모 씨가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스토킹 만으로 구속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법원이 스토킹을 중범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뒤를 따라간다거나, 집 앞에서 기다린다거나, 메시지를 보낸다거나, 물건을 두고 가는 행위 등이 스토킹의 대표적인 사례다. 성범죄 전담 검사 출신의 이승혜 변호사는 “스토킹이라는 게 정신적으로 심한 고통을 주지만, 아무래도 신체에 대한 직접적 위해는 거의 없다 보니 중범죄라는 인식이 적다”며 “짝사랑, 애정이라고 포장되는 경우도 있어 스토킹만으로 구속이 이뤄지는 것은 조금 어려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법원뿐 아니다. 정치권이나 기업에서도 스토킹을 가볍게 생각한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이상훈 서울시의원은 이날 시정질문에서 신당역 사건 관련해 “(가해자가) 좋아하는데 (피해 여성이) 안 받아주니 여러가지 폭력적인 대응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심리적인 문제가 생긴 직원을 충분히 지원해야 한다는 발언 과정에서 나온 실수였다지만 스토킹을 애정 표현의 일종으로 오인할 수 있는 부적절한 언급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공동대표는 “지난해 스토킹 수사가 개시됐을 때 분명 통보를 받았을텐데 가해자 직위해제에 머무르고 피해자 보호에 관심을 두지 않은 서울교통공사도 분명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공사는 신당역 살인사건이 발생한 15일 오후 늦게 각 영업소에 ‘16일 오전 10시까지 재발 방지 아이디어를 제출하라’고 급히 공지해 빈축을 샀다. 한 공사 직원은 “꼼꼼하게 되짚고 대책을 내놓아도 모자랄 판에 미봉책으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셈”이라고 반발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가해자의 혐의를 철저히 밝히지 않는 경찰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검사 출신인 오선희 변호사는 “현행법상 사건 수사 중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연락해 합의 등을 요구하는 부분에는 보복범죄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 변호사는 “스토킹 범죄에선 특히 피해자들이 보복에 대한 두려움을 상당히 느낀다”며 “경찰이 제대로 수사해 강요·협박을 발견하면 즉시 혐의를 추가해서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원은 가해자 전모씨(31)에 대해 이날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숨지는 것을 막을 기회가 적어도 세차례는 있었다. 지난해 10월 불법 촬영물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혐의로 피해자가 전씨를 고소했을 때나 올해 초 스토킹 혐의로 추가 고소했을때 구속했거나, 재판 과정에서 전씨의 위치를 추적했다면 피해자는 목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스토킹의 특성상 강력 범죄로 비화하기 쉽다. 장윤미 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가해자의 감정이 제어가 안 되는 탓에 한순간에 강력범죄로 비화되는 게 스토킹 범죄의 특성”이라며 구속 수사의 필요성에 무게를 실었다. 그는 “보통 스토킹 가해자는 전(前) 연인이거나 직장 동료이기에 인적사항을 손에 넣기 쉬워 직접 가해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게 된다”고 덧붙였다.

송란희 대표는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얼마나 심각하게 번질 수 있는 상황인지에 대한 수사·사법기관 종사자들의 감수성이 떨어지는 탓에 스토킹뿐 아니라 성폭력·가정폭력 등으로 고통받는 일이 끊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구속영장 발부의 조건을 고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형사소송법 제70조는 구속 사유로 ‘피고인이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도망할 우려가 있는 때’를 명시하고 있다. 한국경찰학회 학회지인 한국경찰학회보의 ‘피해자 신변보호 제도 개선에 대한 경찰관의 인식 연구’ 논문에 따르면 경찰은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우려’를 독자적인 구속사유에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관 3171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2652명(83.6%)이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를 독자적 구속사유로 입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피해자에 대한 보복범죄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장윤미 이사는 “이번 사건에서도 가해자가 아무리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스토킹은 강력 범죄로 번질 수 있는 뇌관이라는 것을 법원이 적극적으로 고려했어야 했다”며 “구속영장 발부할 때 증거인멸, 도주 우려 등을 평가하는 것에 덧붙여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에게 다시 위해를 가할 가능성을 추가로 평가할 수 있도록 기준 마련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