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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빙하시대] 산부인과 사라지고, 명절 대목에도 장난감 거리 썰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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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5호 10면

SPECIAL REPORT 

저출산으로 아이들이 줄어들며 완구·분유·교복 등의 산업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지난 8일 오후 한산한 모습의 서울 창신동 완구거리. 원동욱 기자

저출산으로 아이들이 줄어들며 완구·분유·교복 등의 산업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지난 8일 오후 한산한 모습의 서울 창신동 완구거리. 원동욱 기자

“그럼 저희는 이제 모교가 없어지는 거잖아요.”

서울 도봉구 도봉산길 27 도봉고등학교. 이제는 사라질 이름이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도봉고는 현 2학년 학생들이 졸업하는 2024년에 문을 닫는다. 2004년 개교 이후 정확히 20년 만이다. 내년도부터 신입생을 받지 않을 예정이며, 현 1학년 학생 30여명은 이미 인근 학교들로 재배치됐다. 학령인구 감소로 서울에서 일반계 고등학교가 문을 닫는 최초의 사례다. 도봉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정지원(가명·18)군은 “지금이라도 전학을 가야하나”라며 멋쩍게 웃었다. 텅 빈 운동장이 유난히 더 쓸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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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가 폐교되는 이유는 급격한 학생 수 감소다. 도봉고 한 해 신입생은 2006년 249명에서 2016년 123명, 지난해 67명으로 꾸준히 줄었다. 비단 도봉고만의 문제는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학령인구(6~21세)는 꾸준히 감소해 2070년에 328만명으로 줄어든다. 이는 2020년 789만명의 절반 수준이다. 2020년에서 2025년 사이에만 초등학생 수가 14.2%, 대학생은 23.8% 줄어든다. 계속되는 저출산에 학령인구 감소가 본격화하면서 서울에서도 도봉고처럼 통폐합되는 학교는 계속 나올 것으로 예측된다.

“이만하면 오래 버텼지. 나도 손주가 없는데 누굴 탓 하겠어.”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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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창신동 완구거리. 1960년대 동대문역 앞에서 출발해 197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국내 최대 문구·완구 전문 시장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시중보다 20~30% 저렴한 가격에 어린이날이나 연휴 전에는 사람이 붐볐다. 추석 연휴 전 오후 완구거리는 특화 거리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한산했다. 이곳에서 문구·완구점을 운영하는 60대 정연석씨는 “아이들이 있어야 장난감도 사고 문구도 살텐데 애들이 없어, 애들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정씨는 “나만해도 감히 아들한테 손주 낳으라는 말을 못한다”며 “다 우리 같은 어른들이 살기 어려운 세상을 만들어서 그런거지”라며 혀를 찼다.

20년 가까이 이곳에서 장사하고 있다는 다른 상인 김형철(54)씨는 “잘 될 때랑 비교하면 매출은 절반도 안된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인형·장난감 관련 제조업체의 생산액은 2003년 3705억원에서 2019년 2806억원으로 감소했다. 사업체 수도 이 기간 219개에서 69개로 줄었다. 가장 큰 원인은 출산율 저하다. 1985년 66만명이던 신생아 수는 2020년 27만명으로 70%가량 감소했다. 국내 장난감 업계 관계자는 “애초에 아이들의 절대적 수가 줄어들고 원가는 올라가니 타산을 맞출 수가 없다”며 “그나마 남은 업체도 싼 중국 제품이나 해외 명품 브랜드에 다 밀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완구뿐 아니라 분유, 교복 등 영유아·학생 대상 사업의 대부분이 위기다. 의료계도 예외는 없다. 출산과 어린이치료를 담당하는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는 존폐위기에 빠졌다. 소아청소년과는 지난해 의원급에서 일반의(435개소)를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수인 120개소가 폐업했다. 개업은 93개소에 불과했다. 산부인과도 상황은 비슷하다. 국내 분만 병원은 2007년 1027곳에서 지난해 6월 474곳으로 줄었다. 울릉도의 경우 산부인과 전문의가 없어 지난해 11월부터 포항의료원 의사가 매달 한 번씩 방문해 진료한다. 지방에는 산부인과 의원이 없어 산모와 태아가 위험해지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서울 마포구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하는 이모 원장은 “80~90년대만 해도 산부인과는 인기과였다”며 “지금은 전문의 수가 그 절반으로 쪼그라들었다”고 말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회장은 “산부인과 의사들 평균나이가 환갑에 가깝고, 지방에서는 대학병원에 가도 아이를 낳기 어려운 곳들이 많다”며 “이미 의료붕괴가 진행 중”이라고 우려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2070년 한국의 노인 인구 비율은 46.4%로 추정된다. 초고령화로 역동성은 떨어지고, 자원배분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세대간·지역간·계층간 양극화는 심해진다. 통계청에 의하면 한국은 25년 안에 일본을 넘어서 세계 최고령국가가 된다. 이에 따라 노인들을 부양하는 ‘총부양비’도 증가한다. 한국의 생산연령인구 100명당 부양인구(유소년인구+고령인구)의 비율인 ‘총부양비’는 2022년 40.8명에서 2070년 116.8명으로 늘어난다. 2070년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총부양비는 생바르텔레미(119.5명)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과거 일본과 비교 해봐도 우려스러울 정도로 빠르다.  우리나라는 2000년 고령화사회로 진입한 이후 18년만인 2018년 고령사회가 됐다. 25년 걸린 일본보다 7년 이상 빠르다. 일본에서는 이미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2020년 일본 정부의 총예산 102조엔 가운데 ‘사회보장 관계비’가 36조엔(34.9%)에 달한다. 사회보장 관계비의 세부 내역 안에서는 ‘연금·의료·간병 등 고령자를 위한 3대 급부 항목’이 28조엔을 차지한다.

국가의 지원과 별개로 노후 생활을 가족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강한 일본, 한국의 경우 저출산은 사회적 안전망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진미정 서울대학교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횡적인 관계(형제자매)는 사라지고 부모 자녀 관계만 남게 되면서 자녀 세대들의 돌봄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며 “부모세대와 자녀세대 모두에게 저출산으로 인한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경제적인 어려움을 넘어 지방 대부분 지역은 슬럼화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30년 후에는 전국의 모든 청년들이 수도권에 모여도 지금 살고있는 청년수보다 적을 것이다”며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경쟁이 심해지면서 지방에서는 더 많은 청년들이 떠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지역은 단순히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경제 활력도 줄고 중산층이 붕괴한다”며 “빈곤, 낮은 교육 수준, 치안, 보건 문제 등 모든 좋지 않은 모습들이 결합한 거대한 슬럼이 형성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저출산으로 다가올 우리사회가 갈등으로 점철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상림 연구위원은 “출산율감소로 인해 집단 간의 경쟁을 넘어서 ‘다운사이징’ 돼야하는 그룹들 가령 초등교사, 유치원 선생님 등 특정 집단을 도태시키는 것이 일상이 될 것”이라며 “경제적으로 어려워져 ‘조금 덜 먹고 덜 쓰자’라는 차원을 넘어 사회적 연대가 해체 직전까지 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 연구위원은 “이미 지금도 지방 주유소들이 문을 닫으면서 도시가스가 안들어가는 시골 주민들은 난방 난민들이 되고 있다”며 “이 상태로 가다간 더 취약한 사람들이 더욱 피해를 보는 현상이 계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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