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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드라마광과 아르헨 축구광…성향 다른 두 교황의 매력 대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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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5호 18면

연극 ‘두 교황’에서 베네딕토 역을 맡은 신구(왼쪽)와 프란치스코 역의 정동환. [사진 에이콤]

연극 ‘두 교황’에서 베네딕토 역을 맡은 신구(왼쪽)와 프란치스코 역의 정동환. [사진 에이콤]

연극 ‘두 교황’은 몹시 낯선 무대다. 주로 대형 뮤지컬이 공연되는 1000석 규모 극장에 배우는 달랑 다섯명이다. 두 사람의 대화 장면이 대부분이지만, 커다란 무대가 꽉 찬다. 성베드로성당, 바티칸 광장, 시스틴대성당 등 극도로 화려한 공간들이 고해상도 LED 스크린을 활용한 스케일 있는 무대전환을 통해 실감나게 재현되기 때문이다.

앤소니 홉킨스, 조나단 프라이스가 주연한 동명의 넷플릭스 영화가 먼저 떠오르는데, 뮤지컬 ‘명성황후’‘영웅’을 만든 에이콤이 무대화했다. 윤호진 예술감독은 “영화를 보면서 대본이 희곡이구나 싶었는데 정말 연극 원작이 있더라”면서 “무대의 스펙터클로 더 큰 울림과 힐링을 주고 싶었다. 영국 오리지널은 소극장 버전이지만, 어떤 장소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가 중요하기에 관객 상상력에만 맡길 순 없었다”고 설명했다.

세기의 사건이었던 베네딕토 16세의 사임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취임이라는 실화가 바탕이지만, 완전히 정반대 성향을 가진 두 교황 사이의 간극을 상상력으로 채운 픽션이다. 록그룹 퀸에 관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로 유명한 앤서니 매커튼의 희곡답게 치밀한 인물묘사가 돋보인다.

관전포인트는 피아노로 클래식을 연주하면서도 드라마 ‘경찰견 렉스’를 거르지 않는 독일인 베네딕토(신구·서인석·서상원)와 아바의 ‘댄싱퀸’에 맞춰 춤을 추며 축구경기에 목을 매는 아르헨티나인 프란치스코(정동환·남명렬)의 매력 대결이다. ‘교황’이라는 신성에서 인간미를 끌어내는 노배우들의 연기 대결이기도 하다. 뭔가를 가지려는 게 아니라 내려놓으려는 싸움이라 재미있는데, 각자의 무기는 고해성사다. 프란치스코는 교황의 자리를 고사하려고, 베네딕토는 물러나려고 죄를 고백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교회의 타락을 돌아보며 진정한 신앙의 의미를 묻는 종교적인 연극일까. 매력 대결의 승자가 고집스런 얼굴의 베네딕토라는 점에 주목할 때, 무대는 기독교 신앙이라는 좁은 틀을 넘어선다. “높은 담장 안 성좌에 앉았을 땐 더 이상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았지만 추기경의 열린 마음과 인간적인 모습에서 주님 목소리를 들었다”는 그의 고백이 교황청의 담장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두 교황 사이의 진실은 영원히 물음표일 수밖에 없지만, 그 빈 칸을 두 사람의 서툴지만 훈훈한 왈츠로 채운 무대에서 어렴풋이 깨닫는다. 세상은 변할 수밖에 없지만, 변화를 원하는 사람과 변화를 원치 않는 사람이 조화롭게 스텝을 맞출 때 아름다운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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