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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 위주 미식 혁명…“사과로 장미꽃 만드니 식감 좋더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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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5호 19면

채식 요리 대가 알랭 파사르 셰프

작은 정원으로 꾸민 ‘알랭 파사르 at 루이 비통’ 팝업 레스토랑 실내 전경과 알랭 파사르 셰프. 최영재 기자

작은 정원으로 꾸민 ‘알랭 파사르 at 루이 비통’ 팝업 레스토랑 실내 전경과 알랭 파사르 셰프. 최영재 기자

오늘부터 10월 29일까지 루이 비통 메종 서울에서 팝업 레스토랑 ‘알랭 파사르 at 루이 비통’이 운영된다. 지난 5월 ‘한식과 프렌치 푸드의 만남’을 선보였던 레스토랑 프로젝트의 연장선으로, 이번 주제는 ‘자연’이다. 건물 4층이 작은 정원으로 꾸며졌고, 초록색 사이에 브랜드 철학인 ‘여행 예술’을 기반으로 제작된 ‘오브제 노마드(Objets Nomades)’ 컬렉션 조명과 가구들을 배치해 생동감을 더했다.

함께하는 알랭 파사르는 미쉐린 3스타 셰프로도 유명하지만 무엇보다 ‘채식 요리’의 대가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지금은 전 세계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들마다 채식주의자 메뉴를 기본으로 준비해두지만, 파사르 셰프는 이미 20년 전 채소가 주인공인 메뉴들을 기획해 미식계에 혁신을 일으켰다(그의 스토리는 넷플릭스 시리즈 ‘셰프의 테이블’ 시즌3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87년 문을 연 레스토랑 ‘아르페주’는 고기 요리로 유명했어요. 하지만 2000년을 전후해 광우병 파동을 겪으면서 죽은 고기 덩어리를 만지고 피를 보는 일이 싫어졌죠. 일을 멈추고 셰프로서의 미래를 고민하다 찾아낸 게 ‘채소’였어요. 비트 소금구이, 셀러리 훈제요리?! 고기에 사용했던 불을 각 채소에 맞게 사용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애호박의 가운데를 파서 라따뚜이를 채운 후 다양 한 채소를 곁들인 요리. [사진 루이비통 코리아]

애호박의 가운데를 파서 라따뚜이를 채운 후 다양 한 채소를 곁들인 요리. [사진 루이비통 코리아]

채식 요리로의 전환은 정말 큰 도전이었다.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이 고기요리를 안 하겠다는 건 프랑스 미식문화에 대한 모욕이자 범죄”라는 비난을 들어야했고, 미쉐린 스타를 잃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파사르 셰프는 고집을 꺾지 않았고, 결국 ‘아르페주’는 2000년 미쉐린 가이드가 발표됐을 때 3스타를 지켰고, 그 영광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파사르 셰프가 ‘미식 혁명’을 이끌어냈다 칭송받는 이유는 요즘의 채식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건강’ ‘친환경’ 등의 가치를 넘어 채소를 대하는 시각 자체를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저명한 화가도 무의 끝 쪽에 물든 자주색을, 아직 덜 익은 토마토의 상큼한 노란색을 완벽하게 표현하지 못해요. 자연만이 만들 수 있는 위대한 색이죠. 색깔은 모든 창작의 중심축이에요. 처음 접하는 식재료라 맛을 몰라도 접시 위 색을 조화시키면 틀릴 일이 없죠.” 여기에 그만의 호기심과 도전의식이 가미됐다. “매일 같은 요리를 하고 싶진 않았어요. 사과를 4등분해서 만드는 사과파이는 지겹잖아요.(웃음) 사과를 얇게 돌려 깎은 후 하나씩 돌돌 말아 장미꽃을 만들었더니 식감도 훨씬 아삭하고 보기도 좋더라고요.” 그의 시그니처 메뉴 ‘장미꽃다발파이’ 개발 스토리다.

그는 제철 식재료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계절은 자연의 약속이에요. 봄이 되면 아스파라거스, 여름에는 토마토, 가을에는 각종 버섯과 밤, 겨울에는 트러플(송로버섯)과 파를 선물하죠. 제철 식재료를 만질 때마다 나는 전혀 다른 직업을 경험해요. 버섯을 요리할 때는 조각가, 여린 녹색 채소잎을 다듬을 때는 무용가, 토마토를 씻을 때는 음악가, 접시에 음식을 담는 순간에는 화가가 된 기분을 느끼죠.”(웃음)

파사르 셰프가 사과를 얇고 길게 깎아 개발한 시그니처 메뉴 ‘장미꽃다발파이’. [사진 루이비통 코리아]

파사르 셰프가 사과를 얇고 길게 깎아 개발한 시그니처 메뉴 ‘장미꽃다발파이’. [사진 루이비통 코리아]

그는 한국의 대표적인 채식 요리 ‘사찰음식’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요리사의 손이 닿았음을 계속 지워나가는 음식인 것 같아요. 한두 번 정도의 터치만으로 모든 조리과정을 끝내잖아요. 화장기를 지우고 자연스러움을 선택한, 아주 순수하고 정교한 음식이죠.”

레스토랑 오픈 2주 전 입국해 시장과 농장을 찾아다니며 직접 재료를 골랐다고 한다. 채소는 기후나 토양에 따라 맛·질감·색이 달라진다. 그는 한국 채소들에 만족했을까? “여러 가지 좋은 재료들을 찾아냈는데, 내가 직접 키운 우리 농장 토마토처럼 입안에서 살살 녹는 토마토는 찾을 수 없더라고요.”(웃음)

‘알랭 파사르 at 루이 비통’ 9코스 중에는 생선과 조개, 한우를 이용한 메뉴도 있다. “‘아르페주’에서도 10% 정도의 육식 메뉴는 유지하고 있어요. 오랫동안 나의 고기요리를 좋아해준 단골 고객들을 실망시킬 수 없어 찾아낸 균형감이죠. 한국 사람들도 고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준비해봤어요.” 단, 접시 위 모습은 기존 메뉴와 전혀 다르다. 늘 조연으로 밀려나 있던 채소를 접시 위 주연으로 등장시키고, 대신 생선과 육류에는 조연을 맡겼다.

“채소도 사람처럼 행복해야 자기가 가진 가장 멋진 형태와 색감을 뽐낼 수 있어요.(웃음) 접시를 행복한 채소로 채우고 그 풍성한 색감과 형태를 즐겨보세요. 좋은 갤러리를 산책할 때처럼 식사시간이 즐거워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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