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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저질러도 노조 계획이면 개인책임 없다"…노란봉투법 보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파업 노동자에게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를 제한하는 내용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인 이른바 ‘노란봉투법’을 두고 경영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폭력 또는 파괴 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라면, 불법 파업이라 해도 손실 책임을 묻는 것을 제한하는 것이 이 법안의 핵심이다. 기업들이 파업 노동자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손배소ㆍ가압류를 악용하는 사례를 막자는 취지다.

지난 8월18일 하이트진로에서 고공농성을 펼치고 있는 화물노동자들. 뉴스1

지난 8월18일 하이트진로에서 고공농성을 펼치고 있는 화물노동자들. 뉴스1

하지만 경영계에서는 “법치주의 근간을 흔드는 법안”이라는 반대 목소리가 높다. 노조의 합법적 단체 행위에 대해서는 민ㆍ형사상 책임을 면하게 하는 법(노조법 3조)이 이미 있는데, 이젠 불법 행위까지 면죄부를 준다는 점에서다. 최근 노조의 불법 쟁의는 갈수록 과격해지고 있는데, 법안이 통과되면 불법 점거나 시설물 훼손 등 피해가 속출할 수 있다는 게 경영계에서 나오는 주장이다.

16일 한국경영자총협회와 국회에 따르면 현 제21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는 6개의 노란봉투법 관련 법안이 계류돼 있다. 법안을 지지하는 측은 노조의 폭력ㆍ파괴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법안을 뜯어보면 노조의 폭력ㆍ파괴 행위에 대해서도 다양한 면책 조항을 뒀다.

강병원 의원 안과 임종성 의원 안에는 폭력ㆍ파괴행위의 경우에도 손해 발생이 노동조합에 의해 계획된 경우에는 노동조합 임원ㆍ조합원, 그 밖에 근로자에 대한 손배ㆍ가압류를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강은미 의원 안, 이수진 의원 안, 양경숙 의원 안에는 폭력ㆍ파괴행위의 경우에도 손해 발생이 노동조합의 의사결정에 의한 경우에는 조합원에 대한 손배ㆍ가압류를 금지한다.

‘노조에 의해 계획된 경우’ 또는 ‘노조의 의사결정에 의한 경우’라면 노조원 개인이 폭력ㆍ파괴행위를 저질러도 그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을 묻지 못하게 한 것이다.

자료: 한국경영자총협회

자료: 한국경영자총협회

지난달 발의된 강민정 의원 안은 노조가 폭력ㆍ파괴행위를 저질러도 사용자가 원인을 제공했다고 인정되면, 감면청구에 따라 법원이 손해배상액을 감면할 수 있게 했다. 회사가 폭력 유발행위를 했다면 회사도 어느정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다. ‘원인 제공’에 대한 광범위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놓아 노조의 권한을 넓히고, 반대로 기업의 방어권을 축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은 전해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만나 노란봉투법 입법을 중단해야 한다는 경영계의 의견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손경식 회장은 “불법행위자가 피해를 배상하는 것이 법의 기본 원칙인데, 개정안이 통과되면 불법행위자만 보호하는 결과를 초래해 경제의 근간을 훼손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노동법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정상적ㆍ합리적 노사관계가 유지되기 힘들 것이라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많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조가 쟁의행위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듯이 기업도 재산권을 보호받고, 방해 없이 영업 활동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며 “노사의 대등성과 균형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합리하다”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이어 “그래도 입법을 하려면, 책임 부담 주체와 손해배상의 산정 방식 등에 대해 더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영국이 손해배상 상한을 일부 두고 있을 뿐, 전세계적으로 노ㆍ사간 손배소를 제한하는 입법례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이어 “‘불법’이라고 규정지은 사안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하는 것은 자기모순적”이라며 “노란봉투법의 취지는 이해가 가지만, 입법적으로는 구현이 어려운 법체계”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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