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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당 125만원' 포스코 승부수…'하루 손실 500억' 고비 넘겼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돈도 많이 준다고 하고 의미 있는 곳이니까….”
경북 포항에 사는 전기기술자 김모(60)씨는 지난 9일 뜻밖의 문자를 받았다. ‘포항제철소 공단협의회’가 보낸 문자엔 포항 제철소의 전기설비 복구 작업에 참여할 인력을 모집한다고 적혔다. 명절 연휴로 태풍 ‘힌남노’에 침수된 포항 제철소 복구 작업에 인력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니 힘을 보태달라는 내용이었다.

포항제철 공단협의회는 지난 9일 한국전기공사협회를 통해 전국의 전기 기술자들에게 구인공고 문자를 보냈다. 사진 공단협의회

포항제철 공단협의회는 지난 9일 한국전기공사협회를 통해 전국의 전기 기술자들에게 구인공고 문자를 보냈다. 사진 공단협의회

14시간 근무에 일당 125만원. 같은 시간에 대한 평상시 일당 50만원보다 2배 이상 높은 액수였다. ‘단기 고액 알바’였다. 뉴스에서 포항 제철소가 가동중단 위기를 맞았단 소식을 들은 뒤로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던 터였다. 포항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포항 제철소는 지역의 상징이자 자부심이었다고 한다.

다음날 찾은 포항제철소는 김씨처럼 구인공고를 보고 온 이들로 북적였다. 김씨를 포함한 300여명의 ‘용병’들은 이틀간 전기시설을 수리하며 구슬땀을 흘렸다. 그는“숙련공이 필요해서 그런지 작업장엔 대부분 포항에 사는 40~50대 기술자들이었다”며 “일이 고돼서 연이어 할 순 없었지만, 임금도 높고 도움이 됐다는 사실에 뿌듯했다”라고 말했다.

최악의 위기가 만든 ‘고액 알바’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태풍 '힌남노'로 인해 제철소 대부분 지역이 침수·정전되는 등 위기를 맞았지만 민·관·군 총력 복구 지원으로 큰 고비를 넘겼다고 14일 밝혔다. 사진은 직원들이 3 후판 공장에 현대중공업이 지원한 소방펌프를 투입 준비하는 모습. 사진 포스코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태풍 '힌남노'로 인해 제철소 대부분 지역이 침수·정전되는 등 위기를 맞았지만 민·관·군 총력 복구 지원으로 큰 고비를 넘겼다고 14일 밝혔다. 사진은 직원들이 3 후판 공장에 현대중공업이 지원한 소방펌프를 투입 준비하는 모습. 사진 포스코

추석 연휴 전기 기술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125만원 알바’는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에 직면한 포스코의 고육책이다. 지난 6일 제11호 태풍 힌남노는 경북지역을 강타하면서 포항 제철소에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이날 포항에 시간당 최대 110㎜의 폭우가 내리면서 포항제철소 동쪽에 닿아있는 냉천이 범람했고 제철소 일부가 침수됐다. 쇳물을 만드는 고로(高爐) 3기의 가동이 중단됐고 제강·연주·압연라인 일부도 물에 잠겼다. 모든 고로가 중단된 건 포항 제철소에서 처음 쉿물을 뽑아낸 1973년 이후 처음이었다.

포스코가 제11호 태풍 '힌남노'로 침수 피해를 당해 가동이 중단된 포항제철소 고로(용광로) 3기의 가동이 모두 재개됐다고 13일 밝혔다.   또 일부 제강공장의 정상 가동으로 철강 반제품 생산도 시작됐다. 사진은 포항제철소 2연주공장 철강반제품인 슬라브 생산 모습. 사진 포스코

포스코가 제11호 태풍 '힌남노'로 침수 피해를 당해 가동이 중단된 포항제철소 고로(용광로) 3기의 가동이 모두 재개됐다고 13일 밝혔다. 또 일부 제강공장의 정상 가동으로 철강 반제품 생산도 시작됐다. 사진은 포항제철소 2연주공장 철강반제품인 슬라브 생산 모습. 사진 포스코

철강제품은 철광석을 쇳물로 만드는 ‘제선’, 쇳물에서 불순물을 제거해 강철로 만드는 ‘제강’, 액체 상태의 철을 고체화하는 ‘연주’, 열과 압력을 가해 철을 가공하는 ‘압연’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수해로 전반적인 작업이 중단되면서 하루 500억원(지난해 실적 기준)의 손실을 보고 있다는 게 포스코의 추산이다.

한시라도 빨리 배수 작업을 한 뒤 전력을 공급하지 않으면 추후 공정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았다. 특히 고로는 5일 이내에 재가동하지 않으면 쇳물이 굳어 고로 자체를 뜯어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복구 골든타임’이 설정됐지만, 침수 범위가 넓은 데 반해 추석 연휴 탓에 인력은 부족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포항제철소의 전기공사를 맡아온 전문업체들이 모인 포항제철 공단협의회(공단협의회)가 아이디어를 냈다. 한국전기공사협회를 통해 전국의 전기 기술자와 업체들에 구인공고를 내는 방안이었다. 명절 근무자 임금보다 높은 125만원을 일당으로 내걸었다. 현장 사정을 잘 아는 한 업계 관계자는 “연휴에 공휴일 근무를 하면 휴무 할증 등을 포함해 일당으로 최대 100만원까지 받기도 한다. 상황이 급하다 보니 거기에 25만원 정도 더 주기로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기시설물을 다룬 경험이 많은 숙련공 위주로 뽑았는데 과거 포항제철소에서 근무한 기술자들도 일부 지원했다고 한다. 이들은 각 공장에 있는 모터, 차단기 등 전기 시설물을 정비하고 수리하는 일을 지원했다. 공단협의회 관계자는 “예전에 일했던 분들이 이쪽 시스템을 잘 아니까 수리 작업에 큰 도움이 됐다”며 “이들에 대한 임금은 10월 중 지급된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큰 고비를 일단 넘겼다는 분위기다. 지난 10일과 12일 고로 3기가 재가동을 시작했고, 철강 반제품 생산이 재개됐다. 포스코는 이르면 다음 주 모든 공장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침수 피해가 큰 압연라인 정상화엔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은 전날 브리핑에서 “열연 2공장 같은 경우 최대 6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보고 있고, 스테인리스 등 다른 부분도 추가 확인이 필요하지만, 정상화에 상당 기간 걸릴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풍으로 인한 침수 사태로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지난 6일부터 제품 생산이 중단됐었다. 전날까지 3개 고로(용광로)는 모두 가동이 재개됐지만 가장 큰 피해를 본 압연(열과 압력을 가해 철을 가공하는 작업) 라인은 아직 복구 중이다.연합뉴스

태풍으로 인한 침수 사태로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지난 6일부터 제품 생산이 중단됐었다. 전날까지 3개 고로(용광로)는 모두 가동이 재개됐지만 가장 큰 피해를 본 압연(열과 압력을 가해 철을 가공하는 작업) 라인은 아직 복구 중이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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