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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준봉의 직격인터뷰

"정치인들 제 욕심에 눈 멀어 벽을 더듬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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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신준봉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중근 소설 『하얼빈』 출간한 소설가 김훈

신준봉 문화디렉터

신준봉 문화디렉터

광복절을 낀 여름 독서시장의 최강자는 일흔넷 소설가 김훈의 『하얼빈』이었다. 지난달 초 출간 직후부터 한 달 넘게 베스트셀러 정상을 지키고 있다.(교보문고 기준) 선 굵은 소설에 목말랐던 독자들이 다시 한번 그의 문장을 탐한 결과다. 한국인의 마음을 건드리는 안중근 서사라는 점, 문장가 김훈이 학창시절부터 별러 왔던 소재라는 점이 복합 작용했다.

김훈의 안중근은 그의 이전 역사소설과 결이 살짝 다르다. 거대한 세계악에 맞선 개인의 실존적 고독, 김씨는 자신의 이런 클리셰를 반복하기보다 우리가 그간 안중근에서 놓쳤던 부분을 파고들었다. 약동하는 젊음의 안중근, 퍼스널(사적인)한 안중근이다. 특히 소설 후반 절반가량을 이토 히로부미 암살 이후의 검찰 신문 과정, 법정 공방에 할애했다. 제국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던 이 땅의 위정자, 근대화와 야만 사이에서 자기모순에 빠졌던 일본 제국주의 설계자들의 몽매도 건드린다.

나라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 안중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김씨는 대면 인터뷰는 극구 사양했다. 대신 충실한 서면 답변을 보내왔다.

지난 대선 때 정치의 시궁창 같은 밑바닥 목격…리더십 몰락에 절망
전쟁공포·기후위기·인구절벽·양극화 분열로 한국은 지금 존망 위기
많은 사람 가기 꺼리는 길 나서야 리더, 젊은 세대 정치인 등장해야
한·일 관계, 한국이 세계 속에서 이룬 위상에 걸맞는 태도로 다뤄야

출간 직후 한 달 넘게 베스트셀러 1위

소설가 김훈이 소설 『하얼빈』에서 복원한 안중근은 기존 영웅 서사와 차이 난다. 김훈은 작가의 말에서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소설로 써보려는 것은 내 고단한 청춘의 소망이었다”고 했다. 그 소망대로 대의를 위해 몸을 던지는 안중근의 결단에 집중했다. 중앙포토

소설가 김훈이 소설 『하얼빈』에서 복원한 안중근은 기존 영웅 서사와 차이 난다. 김훈은 작가의 말에서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소설로 써보려는 것은 내 고단한 청춘의 소망이었다”고 했다. 그 소망대로 대의를 위해 몸을 던지는 안중근의 결단에 집중했다. 중앙포토

서점가의 반응이 뜨겁다.
“책 판매량을 미리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출판사에서는 기대감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사구조를 압축해서 빠르게 전개한 점이 읽기에 좋았다는 말을 들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좋은 소설로 추천한 데 대해, 한 방송에 출연해 두렵다고 했는데.
“똑같은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미 다 말했는데 왜 자꾸 묻는지를 되묻고 싶다. 나는 내 작품이 왜 좋은지 이야기하는 말이 모두 두렵다.”
자료 조사를 많이 했을 것 같은데 실제 안중근은 어떤 사람이었나.
“안중근의 자서전 『안응칠 역사(歷史)』를 읽어보면, 안중근은 매우 다혈질적이고 활동적이며 감동하기를 잘하는 청년이다. 그가 삶의 현장에서 자신을 개발해나가는 모습은 혁명가의 자질과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소설에 이토의 덩치가 작아 명중을 걱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115~116쪽) 어떤 근거 기록이 있나.
“총을 쏘아서 맞혀야 하는 사람의 실무적인 고민을 드러낸 것이다. 이 실무적 고민은 혁명가의 고민이기도 하다. 방법적이고 실천적인 고민은 혁명가에게나 생활인에게나 소중하다. 총알이 맞아야 혁명이고 생활이고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기록을 보고 쓴 것은 아니다.”
이토는 어느 정도의 인물이었나.
“그의 조국 일본을 봉건에서 근대로 전환한 엘리트 중 선두 그룹에 속해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그는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가해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의 틀 안에서 많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므로 그가 하얼빈에서 안중근과 만난 운명은 필연적이었다. 이토의 형성기, 전성기, 안중근의 형성기를 모두 소설에 쓰지 못했다. 우선 내 건강에 자신이 없었고, 소설이 너무 길어져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시대사나 인물 평전은 나의 목표가 아니다.”

이토 암살은 강자·약자 세계관에 타격

이토 암살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나.
“안중근의 거사가 일본의 조선 합병 정책을 더욱 가속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언설이 논리적 타당성을 구축한다 하더라도 역사의 전개를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안중근의 거사는 이 세상이 강자와 약자의 이항대립으로 구성된다는 세계관에 타격을 가했다. 인간에게는 강약의 대결과 그 결과인 복속보다 더 높은 지향점이 있다는 것을 인류에게 깨우쳐주었다.”
김훈은 여전히 원고지에 연필로 소설을 쓴다. 『하얼빈』의 육필 원고. [사진 문학동네]

김훈은 여전히 원고지에 연필로 소설을 쓴다. 『하얼빈』의 육필 원고. [사진 문학동네]

안중근과 천주교의 갈등도 비중 있게 다뤘다.
“안중근이 서책을 읽고 학문적 단련을 거쳐서 사상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 안중근의 사상은 당면한 현실의 산물이다. 그의 사상은 생활의 바탕 위에 있다. 이 점이 같은 천주교 신자인 황사영(1775~1801)과 안중근(1879~1910)의 다른 점이다. 사상은 순수사유가 아니고 논리정합성이 아니다. 천주교 신앙인인 안중근은 천주교 교리도 자신의 사상 안에서 용해했다. 이것은 교회를 배반한 것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독립군 참모중장의 면모는 덜 부각된 느낌인데.
“소설을 구상할 때부터 안중근의 전체, 시대 전체를 그려낼 생각은 없었다. 나는 그런 큰 구도를 감당할 수 없다. 그러나 다 쓰고 나니,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안중근이 대원들을 이끌고 두만강을 넘어와서 의병 투쟁할 때 일본인 포로를 살려 보내는 대목은 그의 생애에서 매우 심오한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그는 인간과 세계 사이의 근본적인 모순에 부딪힌다. 이 대목을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 다만 나의 글이 거대담론으로 흐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안중근 동양평화론은 여전히 유효

안중근은 한학밖에 배운 바가 없다. 어떻게 동양평화론 같은 개념을 생각해낼 수 있었을까.
“동양평화론은 실증적 자료를 바탕으로 정교하게 짜인 학술논문이 아니고, 그 시대 상황 속에서 필연적으로 우러나온 사상이고 구상이다.”
동양평화론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나.
“이루기 어려운 이상이지만 인류에게 영원히 유효한 꿈이다. 동양을 일본의 패권 아래 복속시키는 이토의 구상과는 비교할 수 없이 진보적이었지만, 실현은 불가능해 보였다.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꿈과 사상은 인류의 역사 전개를 추동해 왔다. 인간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처럼 불온한 꿈을 편드는 것이다.”
안중근에 관해 더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한다면.
“안중근이라는 인물 자체보다 메이지유신 전체를 큰 틀에서 이해하는 시야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도 일본이 한국에서 자행한 민족 말살 정책, 잔혹한 통치 행위, 수탈 행위를 중점적으로 가르치지 말고, 일본이 근대를 맞으면서 자기 자신을 전환해가는 격동의 역사가 침략전쟁으로 이어져 가는 과정을 보다 자세하고 정확히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안중근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그런 교육이 필요하다.”
하얼빈

하얼빈

『하얼빈』을 읽으며 한 나라의 지도자를 생각하게 된다. 지금 화급한 문제라면.
“나는 정치 문제를 말할 식견이 없는 사람이지만, 이 사회에서 70년 넘게 살아온 늙은이로서 말하자면 지금 한국의 미래는 번영과 발전의 문제가 아니라 존망의 문제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전쟁의 공포, 기후변화, 인구 절벽, 양극화에 의한 내부 분열 그리고 정치적 리더십의 몰락 등은 존망의 위기이다. 정치한다는 사람들은 다들 제 욕심에 눈멀어서 벽을 더듬고 있다. 지금 한국사회의 시급한 문제는 불평등의 양극화를 완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일이다. 다중의 비위를 맞추어가면서 다중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은 지도자의 자질 중에서 가장 낮은 것이다. 12척은 이순신의 자랑이 아니다. 12척은 이순신의 가난이고 불운일 뿐이다. 이순신의 자랑은 12척을 따라나서기가 무서워서 달아나려는 부하들을 설득하고 따르게 해서 데리고 나가는 리더십에 있다. 많은 사람이 가기를 꺼리는 길로 많은 사람을 데리고 갈 수 있는 리더가 한국에는 없는 것 같다. 다들 박수받고 표 나오는 길로만 가고 있다.”

한·일 관계 풀려면 정치가 신뢰 얻어야

정치 왜소화, 정치 퇴행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 때 이 나라 정치의 시궁창 같은 밑바닥을 보았다. 후보자와 그 배우자, 그 추종자들의 언동은 가히 절망적이었다. 나는 젊은 세대의 새로운 힘이 정치 전면에 본격적으로 등장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한·일 관계를 푸는 묘책이 있을까.
“한국이 세계 속에서 이룩한 위상에 걸맞은 태도로 이 문제를 다루었으면 한다. 국내에서 반일감정을 증폭시키는 정치 행위는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이 문제를 발전적으로 풀어내려면 우선 국내 여론과 민심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방송 인터뷰 등에서 국가에 맞선 개인의 가치를 강조하면서도, 개인이나 기업의 자유 확대를 전적으로 지지하지는 않는다고 했는데.
“나는 개인(individual)의 영역을 국가가 훼손해서는 자유의 원리를 파괴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고, 자유의 영역을 더욱 확대해야 옳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요즘 갑자기 자유의 이념이 강조되고 있는데, 지난 세월 동안 정치 슬로건으로 변질한 자유의 이념이 자유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얼마나 많은 학살과 억압과 고문과 추방을 자행했는지를 한국 현대사는 기억하고 있다. 또 경제 이데올로기로 변한 자유의 이념이 약육강식의 이윤 추구와 무한경쟁을 방치함으로써 한 해에 800명이 넘는 산업재해 사망자들이 발생하는 일이 일상화되었고 불평등은 양극화되었다. 이념적 지향성은 중요하지 않고, 그 실제적 적용만이 인간 사회에서 중요한 일이다.”

안중근·이순신은 희망을 창출한 사람

인생을 바꾼 책으로 대학 시절 읽은 이순신 『난중일기』와 안중근 신문조서를 꼽았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대학 시절에 낭만주의 문학을 공부했는데, 『난중일기』와 안중근의 신문조서에는 아무런 ‘낭만’이 없었다. 거기에는 발가벗은 세계의 모습이 있었다. 그 두 권은 문학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 청춘을 더욱 크게 흔들었을 것이다. 이순신과 안중근은 희망 없는 세상에서 자신의 영혼 속에서 스스로 희망을 창출해낸 사람이라고 그때 나는 생각했다. 희망은 멀리서 빛나는 등대가 아니라, 내 속에서 가물거리는 호롱불이라고 나는 느꼈다. 내 속에 빛이 없다면 어디에 빛이 있겠는가.”
독서 리스트가 달랐을 것 같다.
“한평생 눈에 띄는 대로 계통 없이 읽었다. 문학보다 역사, 기록, 보고서, 르포처럼 사실에 바탕한 책을 더 즐겨서 읽었다. 내가 읽은 책들이 지금 나의 정신 속에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은 나의 생애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
『하얼빈』의 영화화 제안은 아직 없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