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호의 시선

‘세계의 문제’ 강달러, 버텨야 산다

중앙일보

입력 2022.09.16 00:48

업데이트 2022.09.1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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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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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는 우리 화폐지만 당신들 문제야(It’s our currency, but your problem).”

1971년 미국 닉슨 행정부의 재무장관 존 코널리가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수출하고 있다고 불평하는 유럽 재무장관들 앞에서 했다는 유명한 말이다. 미국은 1944년 달러를 금에, 각국 통화는 달러가치에 고정하는 브레턴우즈 체제를 만들어놓고 제 편한 대로 달러를 찍어내다 그해 금 태환 중지를 선언했다. 이른바 ‘닉슨 쇼크’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를 선택했고 ‘쇼크’는 미국 밖 다른 나라들이 감내해야 했다.

요즘 국내외 언론에 존 코널리 발언이 다시 인용되곤 한다. 세계 각국의 달러 고민이 그만큼 커졌다는 방증이다. 달러는 미국 화폐지만 다시 ‘세계의 문제’로 떠올랐다. 연준(Fed) 이사를 지낸 프레드릭 미시킨 컬럼비아대 교수는 그제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에서 1980년대 초 폴 볼커 Fed 의장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볼커는 ‘인플레이터 파이터’로 이름이 났지만 긴축을 하다가 여론에 밀려 잠시 쉬어가는 바람에 인플레이션 초기 진압에 실패했고 결국 나중에 금리를 더 큰 폭으로 올려야 했다. 주저하다가는 물가를 잡기 위해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하니, 힘들어도 지금 금리를 충분히 올려 인플레 기대심리를 잡는 게 최우선이라는 조언이다.

최근 원화 약세는 경상수지 반영
위기 때는 외부의 시각이 중요
강달러 ‘미국의 문제’ 돼야 해결

각국은 수입물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이 수입되는 걸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최근 금리를 사상 처음으로 0.75%포인트 인상했다. 일본은 그제 엔화 약세를 막기 위해 구두개입을 단행했다. 1998년 이후 처음으로 달러를 매도하는 시장 개입을 하려고 밑자락을 까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신흥국들의 외환보유액이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이라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섣불리 시장에 개입했다가 스리랑카는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을 했다. 다른 아시아 신흥국도 안심할 수 없다.

우리 국민의 환율 민감도가 높아졌다. 외환·금융위기 때나 봤던 원·달러 환율 1400원대 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1400이라는 숫자에 놀라 과민 반응할 필요는 없다. 달러 가뭄이 없고 우리만 힘든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과거 위기와는 다르다는 정부 설명은 잘 알겠다. 하지만 최근 한두 달의 원화 약세는 강달러 탓만 있는 게 아니다. 경상수지 적자 가능성을 비롯한 한국의 개별적인 문제가 반영됐다고 본다. 위기 징후가 있을 때는 대외거래 지갑(경상수지)과 재정 곳간(재정수지)이 든든해야 한다.

한국은행이 고민할 게 많아졌다. 금리를 덜 올려 내외금리차가 커지면 자본 탈출이 걱정이고, 더 올리자니 우리 가계부채가 너무 많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금리 인상에 대한 여론의 반발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1980년대 초 미국이 금리를 급격하게 올릴 때는 농민들의 트랙터가 연준 건물을 봉쇄했고 자동차 딜러는 차 열쇠를 모아 관(棺)에 넣어 연준에 보냈다. 양당 정치인 모두 금리를 도로 내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금통위 앞엔 그런 거친 시위가 없다. 평소 강조한 대로 좌고우면하지 말고 데이터만 보면서 결정하기 바란다.

위기는 때때로 합리적인 인과관계를 무시하고 전염된다.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을 지낸 고(故) 김익주 전 국제금융센터 원장이 2013년 ‘국제금융시장 앞에 겸손해야 하는 이유’라는 글에서 쓴 내용이다. 그는 “언제 어떻게 엉뚱하게 불똥이 튈지 모른다”고 했다. 며칠 전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직원을 모아놓고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짱돌’ 조심하자고 했는데, 같은 맥락일 것이다.

금융위기 때 FT의 ‘가라앉는 느낌(Sinking feeling)’이라는 한국 비판 기사로 정부가 곤욕을 치렀다. 외환위기 직전에는 ‘대우그룹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일본 노무라증권), ‘아시아를 떠나라’(모건스탠리), ‘지금 당장 한국을 떠나라’(홍콩 페레그린증권) 등 외국계 금융사 보고서가 안 그래도 허약한 시장에 충격을 줬다. 억울한 점도 있을 것이다. 다만 위기 때일수록 외부의 시각이 중요하고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이 나쁘면 어떤 반론도 잘 먹히지 않는다는 교훈은 잊지 말자. 거시지표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강달러는 내년 1분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좋고 Fed의 금리 인상도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미국 대기업의 수출이 줄고 내수가 본격적으로 고금리 영향을 받기 시작하면 강달러가 드디어 ‘미국의 문제’가 될 것이다. 그때까지 잘 버텨야 한다. 불똥과 짱돌 조심하면서.

환율상승 어디까지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15일 오후 명동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원/달러 환율 종가가 나오고 있다. 2.8원 오른 1,393.7원. 원/달러 환율은 전날 13년 5개월여 만에 1,390원대를 돌파했다.   코스피는 9.59p(0.40%) 내린 2,401.83, 코스닥은 1.55p(0.20%) 내린 781.38로 장을 마쳤다. 2022.9.15   xyz@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환율상승 어디까지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15일 오후 명동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원/달러 환율 종가가 나오고 있다. 2.8원 오른 1,393.7원. 원/달러 환율은 전날 13년 5개월여 만에 1,390원대를 돌파했다. 코스피는 9.59p(0.40%) 내린 2,401.83, 코스닥은 1.55p(0.20%) 내린 781.38로 장을 마쳤다. 2022.9.15 xyz@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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