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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몰린 한계기업, 경제위기 뇌관 되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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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국내 유일의 태양광 잉곳·웨이퍼(태양전지 제조용 소재) 제조사 웅진에너지는 지난달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파산했다. 중국 업체들의 추격으로 적자가 누적된 상태에서 금융 비용 부담을 감당하지 못한 탓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유일한 잉곳·웨이퍼 제조사가 파산하면서 앞으로 중국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우려했다.

최근 글로벌 경기 침체와 급격한 금리 인상에 특히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도 감당하기 어려운 한계기업들은 벼랑 끝으로 몰리는 형국이다. 한국의 한계기업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여섯 번째로 높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한계선상 기업들의 도미노 붕괴가 나타날 경우 금융기관 부실 등으로 이어지는 ‘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15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전국경제인연합회의 ‘OECD 국가 한계기업 비중 분석(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한계기업 비중은 18.5%로 OECD 소속 25개국 평균(15.2%)보다 3.3%포인트 높았다. 한계기업 비중이 가장 낮은 일본(3.2%)과 비교하면 5.8배 높았다. 한계기업이란 영업이익으로 원금은커녕 이자도 못 갚는(이자보상배율 1 미만) 상황이 최근 3년 이상 지속한 곳을 말한다.

한계기업 비중이 한국보다 큰 국가는 캐나다(32.8%), 미국(29%), 호주(19.8%), 네덜란드(19.5%), 이탈리아(18.6%) 등 5개국에 불과했다.

유정주 전경련 기업정책팀장은 “한국 기업은 사업 자금 조달 수단 중 타인자본(부채)의 활용도가 높기 때문에 영업이익이 줄면 한계 기업 비중이 늘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상장한 기업 10곳 중 1곳도 한계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가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의뢰해 분석한 데 따르면 코스피·코스닥 상장기업(비금융회사 기준) 중 한계기업 비중은 올해 상반기 13.2%에 달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코스피 상장사 중 1년 내 갚아야 할 단기 부채가 1년 내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자산보다 많아(유동비율 100% 미만) 유동성이 취약한 기업은 올 상반기 161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 늘었다. 부채비율 200% 이상 기업도 2.5%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2017년 15.2%였던 한계기업 비중이 지난해 18.5%까지 늘어난 근본적인 원인으로 수출 제조업 경쟁력 약화를 꼽는다. 선진국이 디지털 전환으로 더 앞서가고, 중국이 추격해오며 국내 제조업 경쟁력이 급격히 쇠약해졌다는 설명이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량 기업이 많았던 수출 부문에까지 한계기업이 느는 상황은 크게 우려할만한 지점”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올해 들어 시작된 ‘고금리 충격’도 기업 전반의 부실 위험을 키우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기준금리를 지난해 말(1%) 대비 2%포인트 인상할 경우 기업의 추가적인 이자 부담은 15조 7000억원 늘어난다. 한국은행은 올해 2분기 국내 기업의 평균 부채비율은 91.2%로 5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대학 명예교수는 “국내 기업들은 법인세 인상,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 등으로 위험 요인이 잠복해 있던 상태였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고금리뿐 아니라 원화 값 하락으로 인한 외화 부채 증가까지 겹겹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이들 한계기업이 ‘경제위기의 뇌관’이 되는 걸 막기 위한 종합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한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과 함께 선제적 구조조정 등 ‘당근과 채찍’이 모두 동원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의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릴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만우 교수는 “한계기업 회생과 구조조정을 위한 공동 기구를 구축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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