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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韓 한계기업 OECD 6위…고금리·고환율에 벼랑 끝 몰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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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기업 이미지. [중앙포토]

한계기업 이미지. [중앙포토]

국내 유일의 태양광 잉곳·웨이퍼(태양전지 제조용 소재) 제조사 웅진에너지는 지난달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파산했다. 중국 소재 업체들의 추격으로 적자가 누적된 상태에서 금융 비용 부담을 감당하지 못한 탓이다. 웅진에너지의 파산으로 국내 태양광 업계도 충격에 빠졌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유일한 잉곳·웨이퍼 제조사가 파산하면서 앞으로 중국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중국 업체의 시장 장악과 늘어난 이자 부담에 한계에 부닥치는 기업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근 글로벌 통화 긴축과 급격한 금리 인상에 빚이 많은 기업의 비용 부담도 크게 늘고 있다. 특히 벌어들인 돈으로는 이자도 감당하기 어려운 한계기업들은 벼랑 끝으로 몰리는 형국이다. 한국의 한계기업의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여섯 번째로 높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어지는 금리 인상 기조에 한계선상 기업들의 도미노 붕괴가 나타날 경우 금융기관 부실과 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韓 한계기업 비중, 日의 5.8배  

15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전국경제인연합회의 'OECD 국가 한계기업 비중 분석(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한계기업 비중은 18.5%로 OECD 소속 25개국 평균(15.2%)보다 3.3%포인트 높았다. 전경련이 OECD 가입국 중 100개 이상의 기업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25개국을 추린 뒤, 각국의 자산총액 500억원 이상 한계기업 비중을 조사한 결과다. 한계기업이란 영업이익으로 원금은커녕 이자도 못 갚는(이자보상배율 1 미만) 상황이 최근 3년 이상 지속한 곳을 의미한다. 상환 능력을 초과한 빚을 떠안은 곳이다 보니 고금리 환경에 특히 취약하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비교 대상 국가 중 한계기업 비중이 한국보다 큰 국가는 캐나다(32.8%), 미국(29%), 호주(19.8%), 네덜란드(19.5%), 이탈리아(18.6%) 등 5개국에 불과했다. 한계기업 비중이 가장 낮은 일본(3.2%)과 비교하면 5.8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정주 전경련 기업정책팀장은 "한국 기업은 사업 자금 조달 수단 중 타인자본(부채)의 활용도가 높기 때문에 생산성이 떨어져 영업이익이 줄면 한계 기업 비중이 늘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상장사 10곳 중 1곳 이상 한계기업 

재무 요건을 통과해 상장한 기업 10곳 중 1곳 이상이 한계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가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의뢰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코스피·코스닥 상장기업(비금융회사 기준) 중 한계기업 비중은 올해 상반기 13.2%에 달했다. 특히 코스피 시장에서 재무 위험이 증가한 회사가 많았다. 코스피 상장사 중 1년 내 갚아야 할 단기 부채가 1년 내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자산보다 많아(유동비율 100% 미만) 유동성이 취약한 기업은 올 상반기 161곳으로 2.5% 늘었다. 상대적으로 과도한 부채를 떠안은 기업(부채비율 200% 이상)도 2.5% 증가했다.

"경쟁력 약화, 비용 부담 증가, 금리 인상 겹쳐" 

전문가들은 2017년(15.2%) 이후 한계기업이 비중이 꾸준히 늘어난 근본적인 원인으로 수출 제조업 경쟁력 약화를 꼽는다. 선진국이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으로 기술 수준을 키우고, 중국이 2015년부터 '제조 2025'를 표방하며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국내 제조업 경쟁력이 급격히 쇠약해졌다는 설명이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제조업 쪽에서 한계기업이 늘면 전체 경제성장률과 산업 경쟁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우량 기업이 많았던 수출 부문에까지 한계기업이 느는 상황은 크게 우려할만한 지점"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올해 들어 시작된 '고금리 충격'도 기업 전반의 부실 위험을 키우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기준금리를 지난해 말(1%) 대비 2% 인상할 경우 기업의 추가적인 이자 부담은 15조 7000억원 증가한다. 이는 한국은행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은행은 올해 2분기 국내 기업의 평균 부채비율은 91.2%로 5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대학 명예교수는 "국내 기업들은 법인세 인상,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 등에 위험 요인이 잠복해 있던 상태였다"며 "그나마 저금리로 버티던 기업들이 고금리뿐 아니라 원화값 하락으로 인한 외화 부채 증가까지 겹겹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이들 한계기업이 '경제위기의 뇌관'이 되는 걸 막기 위한 종합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한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과 함께 선제적 구조조정 등 '당근과 채찍'이 모두 동원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의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연구개발 투자를 늘릴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하는 한편, 최저임금 업종 동일 적용·근로시간 단축 등 고용 부담을 늘린 제도를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만우 교수는 "과도한 세금 부담을 낮추는 것과 함께 한계기업 회생과 구조조정을 위한 위해 정치권에서도 공동 기구를 구축하는 등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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