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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10m 걷기도 무서울만큼 살벌했다"…수리남 비하인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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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수리남'에서 배우 하정우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남미의 작은 국가 수리남으로 떠났다가 현지를 장악한 한국인 마약 대부의 작업에 휘말려 옥살이를 하게 되는 민간 사업자 강인구를 연기했다.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수리남'에서 배우 하정우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남미의 작은 국가 수리남으로 떠났다가 현지를 장악한 한국인 마약 대부의 작업에 휘말려 옥살이를 하게 되는 민간 사업자 강인구를 연기했다. 사진 넷플릭스

“이 자리를 통해 많은 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배우 하정우는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프로포폴 불법 투약으로 벌금형을 받고 활동을 멈춘 뒤 2년여만의 복귀작 ‘수리남’(넷플릭스)으로 지난 13일 언론을 만난 자리에서였다. 이에 앞서 지난 7일 있었던 제작발표회에서는 관련 언급 없이 지나갔으나, 이날은 먼저 사과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직접 만나 뵙고 인사드리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며 “그간 일부러 숨거나 피한 건 아니지만, 해명은 곧 변명이 되는 것 같아 쏟아지는 소나기를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어 “데뷔 이후 처음으로 배우 하정우를 떠나 김성훈(본명)이란 사람으로 시간을 보내며 많은 생각을 했다”며 “배우로서 살아오면서 놓친 것은 무엇이었을까, 잘못했던 것, 누군가에게 상처 줬던 것은 무엇이 있을까 진하게 돌아보는 시간이었다”라고 덧붙였다.

배우 하정우는 2020년 2월 개봉한 영화 '클로젯' 이후 프로포폴 불법 투약 문제가 불거져 2년 반 동안 활동을 중단했다. 그는 지난 2년에 대해 "배우로서 살아오면서 놓친 게 무엇이었을까 돌아보는 시간이었다"며 "계속 걷고, 성경 필사를 하며 지냈다"고 말했다. 사진 넷플릭스

배우 하정우는 2020년 2월 개봉한 영화 '클로젯' 이후 프로포폴 불법 투약 문제가 불거져 2년 반 동안 활동을 중단했다. 그는 지난 2년에 대해 "배우로서 살아오면서 놓친 게 무엇이었을까 돌아보는 시간이었다"며 "계속 걷고, 성경 필사를 하며 지냈다"고 말했다. 사진 넷플릭스

하정우가 2020년 영화 ‘클로젯’ 이후 2년 반 만에 출연한 신작 ‘수리남’은 그가 여러 작품을 함께 한 윤종빈 감독에게 직접 연출을 제안한 이야기로,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실제 수리남에서 활동했던 마약왕 조봉행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하정우는 수리남에 홍어 비즈니스를 하러 갔다가 마약상 전요환(황정민)의 작업에 이용돼 누명을 쓰고 옥살이까지 하게 되지만, 국정원 작전에 투입돼 살아남으려 분투하는 민간인 강인구를 연기했다.

하정우는 “8년 전쯤 아는 PD로부터 이런 이야기가 담긴 15쪽짜리 제안을 받았는데, 남미 국가에 한인이 들어가서 마약 비즈니스를 한다는 설정 자체가 너무나 참신하게 느껴졌다”며 “윤 감독과는 영화 아이디어를 두고 하루에도 12번씩 편하게 얘기하는 사이라 이 이야기를 건네줬는데, 처음엔 ‘영화로 만들기엔 너무 방대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해 몇 년씩 표류하다가 시리즈물로 나오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넷플릭스 '수리남'에서 하정우가 연기한 강인구는 민간 사업가인데도 국정원 작전에 투입돼 엄청난 전투력과 지략을 발휘한다. 하정우는 "조금 비현실적으로 표현돼 개인적으로 아쉽지만, 극이 전개되는 속도와 리듬을 고려하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수리남'에서 하정우가 연기한 강인구는 민간 사업가인데도 국정원 작전에 투입돼 엄청난 전투력과 지략을 발휘한다. 하정우는 "조금 비현실적으로 표현돼 개인적으로 아쉽지만, 극이 전개되는 속도와 리듬을 고려하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사진 넷플릭스

스스로도 ‘롤러코스터’(2013) ‘허삼관’(2015) 두 편의 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을 했을 만큼 제작 쪽으로도 관심이 큰 하정우는 “오래 전부터 어느 나라든 주요 도시의 코리아타운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큰 흥미를 느꼈고, 직접 트리트먼트까지 쓴 적도 있다고 했다. “저는 호기심이 많고, 창·제작 욕구가 센 편이라 늘 이런 이야깃거리에 관심이 가는 것 같아요. 특히 코리아타운 사람들은 각자 해외로 넘어간 시대에 멈춰서 살아가며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특수성이 있다는 게 너무 흥미롭더라고요. 의류 사업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뤄낸 친한 형이 있는데, 아직도 2000년대 음악을 듣는 등 모든 게 그때 멈춰져있는 게 너무 웃겼어요.”(웃음)

그가 흥미를 갖는 해외 동포들처럼 ‘수리남’ 속 강인구 역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머나먼 수리남으로 떠났다가 고초를 겪게 되는 인물이다. 작품 속에는 중남미를 배경으로 컵라면, 인삼주, 믹스커피 등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들이 등장하고, 강인구는 그 시절 우리네 가장들이 으레 그랬듯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감과 부성애 하나로 온갖 험난한 상황들을 헤쳐 나간다.

배우 하정우와 황정민은 의외로 '수리남'에서 처음 호흡을 맞췄다. 사진 넷플릭스

배우 하정우와 황정민은 의외로 '수리남'에서 처음 호흡을 맞췄다. 사진 넷플릭스

'수리남'은 마약 대부 전요환(황정민)과 그를 검거하기 위한 국정원 작전에 투입된 민간인 강인구(하정우)의 팽팽한 심리전이 주요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사진 넷플릭스

'수리남'은 마약 대부 전요환(황정민)과 그를 검거하기 위한 국정원 작전에 투입된 민간인 강인구(하정우)의 팽팽한 심리전이 주요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사진 넷플릭스

하정우는 부성애 표현에 대해 “저는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기 때문에 겉핥기 식일 수밖에 없어서 직접 애를 낳고 키워본 윤 감독에게 100% 기댔다”며 “인구의 부성애를 시청자가 느꼈다면, 감옥에서도 아이들 성적표를 신경쓰는 등의 디테일한 대사가 쌓여서 설득력을 이룬 게 아닐까 싶다”고 윤 감독에게 공을 돌렸다.

다만 그는 강인구가 민간인이라고는 믿기 힘든 담대함과 전투력을 보인 데 대해서는 “10부작이었다면 인구의 심리나 내면의 갈등이 충분히 설명될 수 있었겠지만, 압축되다보니 한계가 있지 않았나 싶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특히 마지막회 자동차 추격신을 두고 “저 역시 ‘전직 형사도, 특수부대원도 아니었던 일반 수산업자가 이렇게까지 한다고?’ 하는 생각에 연기하면서 의문에 부딪히기도 했다”며 “하지만 영화가 리듬감 있게 흘러가게 하려는, 일종의 영화적 캐릭터 허용이었던 것 같다”고 부연했다.

중앙대 동문인 윤 감독과 그의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2005)부터 오랜 시간 함께 작업해온 하정우는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것들 함께 이뤄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며 “작품 면면을 보면서 ‘잘 성장하고 있는 감독이구나’라고 느끼고 있고, 그 길목에 함께 있는 게 너무나 감사하다”고 했다. 다만 “누구보다도 저를 많이 찍어본 사람이라 인공적인 연기가 나오면 ‘어색한데? 이상한데?’라는 지적을 해서 너무 어렵다. 윤 감독과 일하면 그런 고충이 크다”고 웃으며 덧붙였다.

극 초반 강인구(하정우)가 전요환(황정민)의 작업에 이용돼 마약 밀수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갇혔던 장면은 도미니카공화국 현지에 있는 실제 교도소에서 200여명의 재소자를 동원해 촬영한 것이다. 하정우는 "처음 걸어 들어가는 장면에서 양쪽에서 환호성과 욕이 들리는데 진짜 살벌했다. 기운 자체가 달라 10m 걸어가기가 무서웠다"고 말했다. 사진 넷플릭스

극 초반 강인구(하정우)가 전요환(황정민)의 작업에 이용돼 마약 밀수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갇혔던 장면은 도미니카공화국 현지에 있는 실제 교도소에서 200여명의 재소자를 동원해 촬영한 것이다. 하정우는 "처음 걸어 들어가는 장면에서 양쪽에서 환호성과 욕이 들리는데 진짜 살벌했다. 기운 자체가 달라 10m 걸어가기가 무서웠다"고 말했다. 사진 넷플릭스

'수리남'에 등장하는 남미의 풍광은 도미니카공화국과 국내 제주도, 전주, 안성 등에서 촬영됐다. 사진 넷플릭스

'수리남'에 등장하는 남미의 풍광은 도미니카공화국과 국내 제주도, 전주, 안성 등에서 촬영됐다. 사진 넷플릭스

‘수리남’을 찍는 과정은 특히 도미니카공화국에서의 해외 촬영이 만만찮았다. 예컨대 강인구가 해외 감옥에 갇히는 장면은 실제 현지 교도소의 재소자 200명을 동원해 찍은 것이어서 “10m 걸어가기가 무서울 정도로 살벌했다”고 회상했다. 또 6회에 등장하는 수중 액션신은 예방주사를 맞고, 기생충 약까지 먹은 뒤 수질이 좋지 않은 도미니카의 물속에서 3일에 걸쳐 찍었다. 하정우는 “한번 물속에 빠지면 피 분장을 다시 하고 들어가야 해서 육체적으로 정말 고생했다. 그 촬영이 끝났을 때 정말 도미니카를 탈출하는 기분이었다”고 돌이켰다.

하정우는 인터뷰 당일 미국 에미상 6관왕 소식이 전해진 ‘오징어 게임’을 향한 부러움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수리남’이 올해 추석 연휴에 공개됐듯 ‘오징어 게임’은 지난해 추석 기간에 공개돼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켰다. 하정우는 “‘오겜’ 소재 만큼 ‘수리남’이 글로벌한 소재인가 싶지만, 만약 그런 영광을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오늘 아침에 속보로 전해진 수상 사진을 보면서 우리 ‘수리남’ 팀 얼굴을 오려서 넣어봤다”며 웃어 보였다.

“마냥 부럽기도 하고, 넷플릭스를 통해 찍은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확장되고 만날 수 있다는 게 참 놀라운 세상인 것 같아요. 아시아인이 중남미 국가에 가서 비즈니스를 하고 악행을 저지른다는 이 독특한 이야기도 재미있게 봐주신다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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