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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 좋은데, 성적 떨어지는 중3…어릴 때 ‘이것’ 놓쳤다

중앙일보

입력 2022.09.15 06:00

업데이트 2022.09.15 13:44

중학교 3학년 딸을 키우는 양육자입니다. 딸 한나(가명)는 공부에 흥미가 없어요. 무엇을 잘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하소연합니다. 한때는 웹툰작가가 되겠다며 그림을 열심히 그렸어요. 베이스 기타 소리가 매력 있다며 2년 동안 배우기도 했고요. 지금은 다 관뒀습니다. 흥미가 없어졌대요.
초등 5학년 즈음 사춘기가 시작된 것 같아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학업에 관한 방황은 계속되고 있고요. 수학 외에 다른 학원은 다 싫다고 합니다. 인터넷 강의도 3년째 돈만 내고 시험 기간이 아니면 듣지도 않아요.
초등 저학년 때까진 책 읽기와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원어민 교사와 거리낌 없이 소통할 정도로 영어를 잘했어요. 특히, 말하기랑 읽기 능력이 뛰어났죠. 문해력이 좋은 편이었어요. 반면 쓰기는 잘 못했는데, 연필 쥐는 힘이 약해서 쓰는 걸 더 싫어했던 것 같아요. 영어 학원에 보냈는데, 말하기와 쓰기의 능력 편차가 심해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두어달 다니다가 그만 두고, 인터넷 강의로 돌렸습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근래 아이와 진로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누고 있거든요. 아이는 하고 싶은 게 없다며 스스로를 비하합니다. 제가 보기에도 눈에 띄게 잘하는 게 없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얼마 전 고등학교 1학년이 푸는 국어와 영어 문제집을 보여줬어요. 지문 길이나 단어 수준을 감당하기 어려웠는지, 독서실 다니면서 기초부터 다져야겠다고 하더라고요.
가정이나 친구 관계에 문제가 있진 않아요. 발이 넓은 편은 아니지만, 친한 친구들과는 고민도 나누고 잘 지내거든요. 위로 언니와 오빠가 있는데, 한나가 늦둥이라 사랑도 많이 주고요. 사춘기가 지나면 마음 다잡고 공부할까요? 진로를 찾을 수 있게 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나가 어렸을 때 인지 신경 발달에 문제를 겪고 있다는 신호가 있었는데, 눈치채지 못하셨군요. 

신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오미란(가명)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습에 있어 아이가 어려움을 겪고 있고, 신호도 분명했는데 이를 알아채지 못해 전반적인 학습 장애(learning disorder)로 커졌다는 얘기인데요. 

한나는 어렸을 때 말하기와 읽기는 잘했지만, 쓰기에 약했죠. 본인의 생각이나 느낌을 말로 하는 건 잘하지만, 글로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있다고 해요. 이렇게 한 기능이 유독 떨어진다면 인지 신경 발달에 문제를 겪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게 신의진 교수의 진단입니다. 소아정신과를 찾아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거죠.

신 교수는 “어렸을 때는 특정 기능이 좀 처지더라도 훈련하면 금세 좋아진다”면서도“제때 해결하지 않고 그대로 뒀다간 학습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요. 발달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초등 1학년과 4학년, 중등 1학년 때 종합심리검사를 받으라고 권하는 이유입니다.

오미란씨와 신의진 교수의 상담은 지난 5일 줌을 통해 30분 동안 진행됐습니다. hello! Parents는 오미란씨의 동의를 얻어 상담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아이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하기 힘들어한다고요? 놓쳤던 신호는 없는지 생각해보세요. 또 학업을 문제없이 해나가기 위한 ‘기본 체력’은 무엇인지, 한나 같은 아이가 학습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 이번 콘텐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학습 능력 떨어지는 중3, 발단은 어릴 때 

신) 아이 학습에 대한 고민이 있으시다고요.

오) 중학교 3학년이면 보통 다른 아이들은 공부하거나 자기의 재능을 키우는 데 매진하잖아요. 그런데 한나는 아직 이런 부분에 대해 동기부여가 안 돼 있는 상황인 것 같아 걱정입니다. 부모 입장에선 아이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 어머니가 어떤 고민을 하시는지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질문을 하나 해도 될까요?

오) 어떤 질문인가요?

신) 중3인 아이가 학업에 문제가 생기지 않으려면 어떤 능력이 갖춰져 있어야 할까요?

오) 기본기가 아닐까요? 기본기만 있다면 아이가 언제든 마음먹었을 때 실력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신) 기본기가 뭘까요?

오) 문해력이라고 생각해요.

신) 문해력도 중요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인지 신경이 제대로 발달해야 무리 없이 공부할 수 있어요.

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하기 좀 어려워요, 교수님.

신)학습은 머리로 하는 거잖아요. 뇌의 기능이 잘 발달해야 학업에 어려움이 없는 겁니다. 그런데 한나에게서 인지 신경 기능이 떨어진다는 신호가 어렸을 때부터 있었어요. 어떤 신호였을까요?

오) 한나한테 그런 문제가 있었다고요?

신) 저한테도 얘기해주셨어요. 아이가 글쓰기 어려워한다고 하신 거, 기억하시죠? 쓰기가 학업 관련해 정말 중요한 기능이에요.

아이가 수학 학원만 다녔던 까닭 

오) 쓰기를 어려워하는 게 인지 신경 기능이 떨어진다는 신호였다는 말씀인가요?

신) 아이가 언어 능력이 좋은 편이었잖아요. 언어를 이해하고 말하는 능력은 뛰어난 아이 같아요. 하지만 그에 비해 왜 글 쓰는 건 어려워하는지 생각해보셨어야 하는 거죠.

오) 저는 그 부분이 좀 늦되는가 보다 생각했어요.

신) 전반적인 발달이 모두 떨어지면 지적 장애를 의심해봐야 하지만, 한나는 아니었잖아요. 다 잘하는데 특정 영역만 못 한다면 눈여겨봐야 해요.한나는 언어 발달은 빠른데, 유난히 글쓰기가 떨어졌어요. 그 이유를 일찍 밝혀서 도왔으면 지금쯤 공부를 잘하고 있을 거예요.

오) 그런데 교수님, 쓰기가 원래 좀 어렵잖아요. 어른도 말은 잘하지만, 글은 잘 못 쓰는 사람도 있고요. 글쓰기 능력이 좀 처진다고 그렇게까지 볼 수 있는 걸까요?

신) 아이의 말하기·듣기 실력과 쓰기 실력의 편차가 크다고 하셨죠?

오) 네, 학원에 가보면 말하기·듣기는 최상위 레벨인데, 쓰기는 하위 레벨이었어요.

신) 그 정도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셨을 법한 상황입니다.

오) 듣고 보니, 납득이 가네요. 왜 저는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요?

신) 아이 교육에 열의가 있으신 것 같은데, 기본적인 인지 신경 발달에 어려움을 겪는 걸 왜 눈치채지 못하셨는지 의아하네요. 아이가 생각을 글로 풀지 못한다는 건 큰 의미가 있어요. 단순히 연필을 쥐는 힘이 약한 것도 있는데요. 말은 잘하는데, 글로 정리하지 못하는 건 일종의 학습 장애를 겪는 겁니다. 

오)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입니다.

신)아이가 다른 과목은 인터넷 강의도 안 듣는데, 수학 학원은 간다고 했잖아요. 글로 생각을 표현하는 게 어려운데, 수학은 그런 능력을 덜 필요로 하는 과목이잖아요. 여기서도 전형적인 글쓰기 장애(expressible writing disorder) 증상이 드러나죠.

인지 신경 골고루 발달해야 공부 잘해 

오) 그렇게 심각한 건가요?

신) 저는 심각하게 봅니다. 공부를 제외하면 별다른 문제가 없는 아이라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큽니다. 기본적으로 갖춘 게 많은 아이인데, 특정한 영역의 발달이 제때 이뤄지지 못해서 공부에 대한 의지마저 꺾여버린 거니까요. 그동안 본인 심정은 오죽했겠어요. 그래도 잘 버텨온 걸 보면 전 오히려 한나가 착하고 대견해요. 만약 초등학교 1~2학년 때만 병원에 왔어도 상황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훈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거라서요.

오) 그러게요. 왜 그런 생각을 진작 못 했을까요? 제가 너무 밉네요.

신) 다 지나간 일입니다. 어머님을 탓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전문가가 아니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할 수 있어요. 다만 전문가로서 원인을 찾아드리고 싶은 겁니다. 한나는 인지 신경이 고르게 발달하지 못한 게 문제거든요.

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빨리 병원에 가야죠. 소아정신과 중에서도 특히 학습 장애를 잘 다루는 곳이 있어요. 그런 곳을 찾아가세요. 거기서 인지 신경·학습 능력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정확히 어느 기능이 떨어지는지 알아내야 치료도 가능합니다.

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신)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아이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겁니다. 검사한 뒤 아이에게 알려주세요. “네가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이 부분이 어렸을 때부터 약했대. 바로 그 부분이 보강이 안 돼서 공부를 어렵다고 느끼는 거래. 그러니까 그 기능을 훈련해서 끌어올리면 공부하기 훨씬 수월할 거야”라고 말이죠.

오) 몰랐던 사실을 지금이라도 알게 돼 정말 다행입니다.

신) 아이도 자신이 어떤 문제에 처했는지 이해하면, ‘내 머리가 나쁜 게 아니었구나’ 하며 안도할 겁니다.

오) 그럴 것 같아요. 한나가 혼자 많이 답답해했거든요.

신) 아이가 공부할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에요. 스스로 뭘 잘할 수 있는지 고민도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처지는 글쓰기 능력 때문에 다른 능력까지 발휘가 안 된 거죠.

오) 그렇군요. 정말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아이 정신 건강, ‘1·4·7’로 챙겨야 

신) 한나 위로 언니랑 오빠도 있다고 하셨잖아요. 아이들에게 종합심리검사를 받게 하신 적은 없나요?

오) 네, 그런 걸 받아보지 않았어요.

신) 제가 항상 하는 말이 있거든요. 아이가 나이에 맞게 잘 크고 있는지 알아보려면 ‘1·4·7’을 기억하라고요.

오) 1·4·7이요?

신)초등학교 1학년과 4학년, 중학교 1학년(7학년) 때 아이에게 종합심리검사를 받게 하라는 겁니다. 아이의 마음이나 발달은 눈에 잘 안 보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주기적으로 들여다보는 게 좋습니다. 

오) 1·4·7인 이유가 있나요?

신)초1 땐 학교에 들어간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준비가 됐나 점검해볼 수 있고요. 초4는 우리 인생에서 인지 능력이 가장 정확하게 평가되는 시기입니다.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엔 사춘기가 오잖아요. 부모가 모르는 아이의 비밀이 상당히 많을 수 있어서 심리검사가 필요합니다.

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한나가 받도록 해야겠습니다.

신) 이 검사를 통해 아이에 대해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거든요. 뇌의 인지 신경과 기능이 제대로 발달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어요. 북유럽 일부 나라는 이런 검사나 심리 치료를 국가 차원에서 무료로 해주기도 해요. 과학적 분석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 건강을 관리해주는 거죠. 이런 게 미래형 교육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나도 꼭 검사받아서 인지 신경의 불균형을 극복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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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진 교수의 총평 및 솔루션
① 어렸을 때 인지 신경이 골고루, 잘 발달해야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도 잘할 수 있어요. 영유아기 다른 건 문제 없는데 유독 한 기능이 떨어진다면 인지 신경 불균형을 의심해보세요.
②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눈여겨 봐야 합니다.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 놓쳤다간 나중에 다른 기능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③ 아이의 정신 건강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쉽게 알아채기 힘들잖아요. 그래서 초등학교 1학년과 4학년, 중학교 1학년 때 종합심리검사를 받는 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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