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미국발 물가쇼크, 원화값 1400원 눈앞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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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물가충격에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원화가치는 ‘1달러=1400원’의 턱밑까지 다가섰다. 국내 증시도 일제히 하락했다. 꺾일 줄 모르고 기세등등한 물가를 잡기 위해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더 센 긴축을 준비할 것이라는 공포가 시장을 집어삼켰다.

1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는 전날보다 17.3원 내린(환율상승) 달러당 1390.9원에 거래를 마쳤다. 원화가치가 달러당 1390원 아래로 밀린 건 2009년 3월 30일(종가 기준·달러당 1391.5원) 이후 처음이다.

이날 원화가치는 달러당 1393원에 거래를 시작한 뒤 장중 한때 달러당 1395.5원까지 미끄러졌다.

충격에 휩싸인 건 외환시장만이 아니다. 주가도 하락을 피하지 못했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날보다 1.56% 내린 2411.42에 마감했다. 코스닥 지수도 1.74% 하락한 782.93에 장을 마쳤다. 그나마 뉴욕증시 3대 지수인 다우지수(-3.94%), 나스닥지수(-5.16%), S&P500(-4.32%)보다는 하락 폭이 작았다. 뉴욕증시 3대 지수는 2020년 6월 11일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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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이 몸살을 앓은 건 다시 고개를 든 물가 때문이다. 13일(현지시간) 발표된 8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8.3% 올랐다. 7월(8.5%)보다 상승세가 둔화했지만, 시장 전망치(8.1%)를 웃돌았다. 특히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근원 CPI는 1년 전보다 6.3% 뛰며 전달(5.9%)보다 오히려 오름폭이 커졌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인한 휘발유 가격 하락(-10.6%)을 제외하면, 물가상승 압력은 더 거세졌다. KPMG의 다이앤 스웡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CPI는 악몽”이라고 평가했다.

게다가 물가상승 압력을 낮춰 온 국제유가가 겨울에 다시 반등할 가능성도 있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지난 11일 유럽연합(EU)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 등이 유가 급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상태다.

물가와 임금 사이의 상호작용이 강화되며 고물가 상황이 고착화했다는 우려도 커진다. 기업이 임금 상승으로 늘어난 비용을 소비자 가격에 전가하면 물가는 꾸준히 오르게 된다. 특히 미국의 경우 탄탄한 고용시장이 임금 상승 압력을 높이고 있다.

가능성 제로였던 미국의 울트라스텝, 이젠 가능성 38%

제롬 파월 Fed 의장이 지난 8일 “추세보다 낮은 성장률을 일정 기간 유지해 노동시장의 균형을 되찾고 임금상승률이 물가상승률 목표치(2%)와 일치하는 수준으로 다시 내려가는 것이 Fed가 달성하려는 것”이라고 이야기한 이유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정점 통과(피크아웃)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던 물가가 쉽게 잡히지 않으면서 Fed의 긴축 속도는 더 빨라질 전망이다. 오는 20~21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선택지에는 울트라 스텝(기준금리 1%포인트 인상)까지 추가됐다. 시카고상업거래소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울트라 스텝 가능성은 지난 12일 0%에서 CPI 수치가 나온 지난 13일 38%까지 높아졌다.

노무라증권은 9월 FOMC의 금리 인상 폭 전망치를 0.75%포인트에서 1.0%포인트로 수정했다. 보고서는 “시장은 미국의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 얼마나 고착화했는지, 이를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Fed의 대응 규모를 과소평가했다”고 지적했다. 노무라증권은 내년 2월까지 미 기준금리가 연 4.5~4.75%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기준금리(연 2.25~2.5%)보다 2.25%포인트 높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도 “나라면 (통화정책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9월 FOMC에서 기준금리 1.0%포인트 인상을 선택할 것”이라며 “기준금리를 4% 근처까지 올리지 않고서는 인플레를 관리할 수 없고, 그런 면에서 금리를 천천히 올리는 것보다 빠르게 올리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문제는 커지는 세계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이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경제와 물가를 자극하지 않는 중립금리 수준에 올라와 있다. 여기서 금리를 더 올린다는 건 본격적인 긴축에 발을 내디딘다는 의미다.

게다가 이달부터는 Fed의 양적 긴축(QT) 규모가 950억 달러로 늘어난다. 8월까지 진행되던 QT의 2배 규모다. 만기가 도래한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에 재투자하지 않고 시장에 풀린 돈을 거둬들인다. 금리 인상에 움츠러든 금융시장이 더 위축될 수 있다. 세계 최대 채권운용사인 핌코의 티파니 와일딩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이 계속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 금리차 커지면 원화값 하락 가속

긴축의 가속화는 치솟는 달러 가치에 불을 붙이고 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1973년=100)는 13일(현지시간) 108.23에서 CPI 발표 후 109.96까지 치솟았다. 수퍼 달러 질주 속에 각국의 통화가치는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있다. 이날 엔화 가치는 달러당 144엔 선까지 밀리며, 일본 정부의 시장 개입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이미 자유낙하 중인 원화가치는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1달러=1450원’까지 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서정훈 하나은행 연구원은 “강달러 외에도 무역수지 적자, 한국은행이 Fed의 금리 인상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란 전망 등 원화 약세를 뒷받침하는 요인이 많다”며 “원화값이 달러당 1400원 밑으로 밀릴 수 있고, 최악의 경우 달러당 1450원까지 떨어질 가능성도 열어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의 고민도 커졌다. 한은이 올해 2번(10월, 11월) 남은 통화정책방향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올릴 가능성은 커졌다. 문제는 인상 속도다. 한은은 그동안 물가 등이 전망 경로를 벗어나지 않는 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올리겠다고 밝혀 왔다.

한국 기업 부채비율, 6년 만에 최고치

하지만 한·미 간 금리 차가 큰 폭으로 벌어지면 원화값 하락은 가속화할 수 있다. 원화가치가 떨어지면 수입 물가가 오르게 되고, 이는 국내 물가상승 압력으로 이어진다. 원화가치 하락과 그에 따른 물가상승이 이어지면 빅스텝(0.5%포인트 인상)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긴축의 강도와 속도를 높이면 커지는 가계와 기업의 빚 부담과 경기 침체 가능성을 피할 수 없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기준 가계빚은 1869조4000억원이다. 지난 7월 말 기준 가계대출 중 변동금리 비중(잔액 기준)이 78.4%에 이르는 상황에서 금리 인상에 따른 가계의 부담이 급증할 수밖에 없다.

기업의 상황도 좋지 않다. 한은이 이날 발표한 ‘2분기 기업경영분석 결과’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부채비율은 전 분기 88.1%에서 91.2%로 높아졌다. 2016년 3분기(91.8%) 이후 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원재료 가격 상승으로 매입 채무 등 영업 부채가 증가한 영향이다. 원화가치 하락에 고물가·고금리까지 이어지며 기업의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특성상 미국과 유럽 경제의 경착륙 충격은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한은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이 1년 안에 경기 침체에 빠질 확률은 각각 15%와 32%였다. 8월 금통위 의사록에서 한 금통위원은 “미국 경제의 향후 성장 전망이 불투명한 현시점에서 과도한 기준금리 인상은 국내 경제의 하방리스크를 확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원화가치 하락에 대응하기 위해 한은이 금리 인상 폭을 키울 경우 경기가 더 가라앉을 수 있다”며 “원자재 등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높고, 외채가 많은 업종이나 기업에서는 유동성 위기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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