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세계로 향하는 한국 농식품] [기고] 농부의 손길과 발걸음 대신할 ‘밭농업 기계화’에 거는 기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4면

어린 시절, 밥그릇을 싹싹 긁어먹지 않으면 부모님께 “이 쌀 한 톨 만들려면 농부들이 얼마나 고생하는 줄 알아?”라는 꾸중을 들은 경험이 있다. 농작물 수확을 위한 농업인들의 노력을 소중하게 생각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벼를 수확하려면 농부의 손길이 88번이나 필요하다는 의미의 ‘쌀 미(米)’ 자나 농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옛말은 농사에 얼마나 많은 품이 드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농촌 인구는 2000년 403만 명에서 2020년 231만 명으로 감소했으며, 고령화 심화로 65세 이상 고령 농업인의 비율이 2020년 42.3%에 달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외국인 근로자 입국이 제한되면서 농촌지역의 인력 부족은 더 심해지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0년 후에는 농기계 없이 제때 농작업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이렇듯 일손이 부족해지면서 농기계 없이는 농사를 짓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농촌지역의 인력 부족을 해소하는 한편, 농업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으로 1980년대부터 주곡인 벼농사의 모내기, 병해충 방제, 수확 등 모든 생산 과정을 기계화하기 위한 농기계를 개발해 왔다. 2020년 벼농사 기계화율은 98.6%로 거의 모든 농작업이 기계로 이뤄지고 있다. 이제는 이앙기·콤바인이 없는 벼농사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2010년대부터 중점적으로 기계화가 추진된 마늘·양파 등 밭작물은 기계화율이 2010년 50.1%에서 2020년 61.9%로 높아지긴 했으나, 아직도 많은 농작업을 인력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인력이 많이 드는 파종, 아주심기, 수확 작업이 다른 과정보다 기계화가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 2010년부터 농촌진흥청은 마늘·양파·무·배추 등 주요 밭작물 10개 품종을 대상으로 종자를 심고 수확하기까지 모든 작업을 기계로 할 수 있는 밭작물 생산 전(全) 과정 기계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여기에는 농기계뿐만 아니라 기계화에 적합한 품종 개발을 비롯해 재배양식 개발까지 포함된다.

마늘을 예로 들면, 파종을 위해 통마늘을 쪽으로 분리하는 ‘쪽 분리기’, 두둑을 만들고 비닐을 덮는 ‘휴립 피복기’, 분리된 마늘쪽을 심어주는 ‘파종기’, 수확할 때 마늘 줄기를 잘라주는 ‘줄기 절단기’, 마늘을 수확해 담아주는 ‘수집형 수확기’를 개발해 인력을 대신한 것이다. 이 기계를 현장에 적용했더니 인력 작업보다 노동력은 67%, 생산 비용은 47%가 줄었다.

이제는 밭농업 기계화를 넘어 데이터 기반의 농작업을 지원하는 스마트농업으로 변화하기 위한 연구도 추진 중이다. 밭농업 스마트화는 농업인의 의사 결정을 지원하고 밭작물의 생육과 수확량 등을 파악한 후 맞춤 처방해 비료·농약 등 투입자원은 최소화하면서 농산물 생산성은 높여줄 것이다.

농가 소득은 늘고 농촌은 쾌적하고 일하기 좋은 환경으로 바뀔 것이며, 농업인의 삶은 더욱 윤택해질 것이다. 물론 새로 농촌으로 유입되는 경험 부족한 귀농인들이 더 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해 귀농인 진입장벽을 낮추고, 안정적인 정착을 돕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농촌진흥청은 2026년 밭농업 기계화율 77%를 목표로 기계화 연구를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농부의 손길과 발걸음을 대신할 새로운 기술들의 등장을 기대하여도 좋다.

김상남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